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지난해 취임과 동시에 한국을 동북아시대의 물류기지와 허브로서 그 가치를 더욱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는 인천공항의 가치상승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채권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과 ‘세계 경제의 블랙홀’이라고 불리며 급상승하고 있는 중국을 사이에 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싱가포르과의 FTA(자유무역협정)을 계기로 아세안을 포함한 동아시아시대로 그 규모와 가치가 더욱 높아가고 있다.
동북아 물류중심 ‘차곡차곡’
정부가 동북아시대를 겨냥해 핵심적으로 추진된 정책은 해상물류 중계사업과 세계적 관광국으로서의 발전과 국제물류 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인천공항의 확대 등이다.
해상물류 중계사업은 선진 기술을 갖고 있는 일본에서 유입되는 핵심물품을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내보내고, 원자재에 대해서는 반대개념으로 추진돼왔다. 해상물류 중계사업의 핵심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 광양항이다. 이러한 광양항에 포스코와 일본의 미쓰이 물산이 합적법인인 포스코터미널(주)이 동북아시장을 겨냥한 해상물류중계 사업을 본격 추진하면서 그 속도가 한 층 빨라지고 있다. 포스코터미널은 광양제철 부두와 야드를 입차해 설립 첫해인 2003년 석탄과 철광석, 망간광 등 194만톤을 세계 각지에서 반입, 173만5,000톤을 반출했다. 이 기간동안 얻은 매출액과 수익은 73억원과 9억원에 이른다. 지난해는 매출이 244억원으로 급증한데 힘입어 순이익도 21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포스코터미널은 2013년까지 연간 680만톤의 벌크화물을 반입할 수 있는 대규모 CTS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1차로 300억원을 투입, 3만6,000여평의 CTS야드와 공해방지시설을 오는 10월에 완공키로 했다. 또 내년부터는 7만3,000여평을 추가로 확보하는 2차 공사에 들어간다. CTS야드가 건설되면 인도네지아와 알래스카, 호주 등으로부터 선적한 연간 400만톤 규모의 석탄과 철광석 원료탄을 공급하게 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해상과 육상을 통해 각종 화력발전소에 석탄을 공급하게 된다. 최근 급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은 에너지원인 철광석과 원료탄을, 일본은 합금철을 주로 반출할 계획이어서 물류기지로서의 위용을 갖게 된다는 게 포스코터미널 측의 설명이다.
인천공항도 오는 2020년까지 5조원을 투입 동북아 국제물류 중심도시로서의 입지를 강화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특히 동북아 물류중심도시로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물류시설을 확충이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연계돼 있는 서울외관순환도로와 제2외관순환도를 남북 2축으로하고 인천국제공항·경인·제2경인·제3경인고속도로를 동서 4축으로 해 원활한 물류수송이 가능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개발제한구역 조성가능지 17개소 6.08㎢는 임대주택 등 서민용 공공주택사업, 교육·문화·노인복지 등 사회복지사업, 대규모 물류센터·유통단지 등으로 개발을 추진한다.
여기에 제주도의 ‘세계 평화의 섬’ 지정과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한·일간 해저터널도 동북아시대를 알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제2의 EU 뜨나
이러한 동북아시대를 대비한 정부정책이 최근 한·중·일간 더욱 치열해지면서 아세안을 포함한 동아시아로 확대되고 있다. 아세안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높은 동북아 3국에게 많은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3국 또한 미국과 유럽을 주 소비층으로 생각해왔던 각종 제품에 대한 전진기지이자 매력적인 시장으로 아세안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지난해 말 노무현 대통령이 라오스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싱가폴과 전격적으로 FTA협상을 한데서도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늦게 FTA를 선언하긴 했지만, 이들보다 2~3년 가량 빠른 2009년 관세철폐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는 동북아시대가 아세안 10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공동체로 발전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러한 의미는 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7일 프랑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동북아에 EU와 같은 개방적 공동체를 만들고, 이런 질서가 세계질서에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밝혀 동북아시대를 발판으로 한 동아시아시대로 뻗어나가겠다는 일종의 선언의 의미가 크다는 게 전반적인 견해다.
지난해 11월29일 라오스 비엔티안에 모인 아세안 정상들은 2020년까지 아세안 시장을 유럽연합(EU)방식의 단일시장으로 만든다는 ‘비엔티안 액션 프로그램(VAP)’에 서명했다. 1단계로는 2007년까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6개구의 무역관세를 철폐 통합시장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2012년에는 미얀마와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 나머지 국가에 대해서도 자동차와 섬유, 전자부문에서 관세가 없어지게 된다. 이에 대해 한·중·일 3국과 아세안은 이미 합의를 한 상태다. 한국은 또 올해부터 일본과 FTA협상에 돌입한다.
이는 동북아시아 시장의 가치가 커지면서 ‘동아시아 블록’형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의미로 관측된다. 이 자리에서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미국에 마설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지역그룹이 만들어질 것”이라 말했다. 이는 세계 블록형성에 동아시아가 한 축을 담당하게 되기를 희망하다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아세안 인구는 5억명에 육박하고 한·중·일을 합칠 경우 시장의 규모는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20억명을 넘어서게 될 전망이다. 국민총생산 또한 2003년 기준으로 7조달러에 이르고 있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11조달러와도 차이가 크지 않다. 동아시아시대의 개막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미관계와 국가별 경제력 차이 커
하지만,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전통적인 기술강국으로 자리잡은 일본과 1970년대 이후 급성장을 이룩한 한국, 세계 제조업을 모두 흡수하면서 대륙의 힘을 자랑하는 중국 등 동북아시아 3개국에 비해 아세안의 경제력은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U의 경우 블록 형성시 국가간 경제력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것과큰 괴리를 보이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또 동아시아에서 과연 미국을 배제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말 일본을 방문했던 미첼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토교 강연에서 개인적인 견해를 전제하면서 “동아시아 대회에서 미국을 배제하는 제도적 결정이나 협력(체제)을 만들어내는 데 대해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11월30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아세안과 관계를 갖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 대해 어떤 비판도 하지 않는다”고 후퇴하기는 했지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