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그룹 자회사인 로템 의왕공장을 일방적으로 폐쇄할 계획인 것으로 밝혀져 근로자들이 회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특히, 현대·기아차그룹은 고속전철 사업이 끝남과 동시에 의왕공장을 폐쇄키로 결정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작업해온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수주물량 창원으로 배정
경기도 의왕시 삼동 462-18번지에 소재한 로템 의왕공장은 지난 1937년 설립된 조선기계 제작소가 전신으로 국내 철도산업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우와 현대 한진 등으로 주식이 나뉘어져 운영돼 왔으나, 이후 대우사태로 현대·기아차그룹이 1,560억 원에 대우지분을 인수하며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이후 정부의 고속철도사업을 추진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이면서 최근 3년 여간 1,000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내는 등 건실한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4년 9월을 기준으로 고속철도사업이 마무리되면서 그룹의 강력한 구조조정 방침에 밀려 근로자들이 회사에서 내몰리고 있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지난 2001년 단독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1,500여명에 달하는 직원 가운데 이미 500여명에게 사표를 받거나 그룹사내 타 회사로 전출, 퇴직 등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수주한 공사물량의 대부분을 창원공장에서 맡도록 해 의왕공장의 가동률이 20%에 불과한 실정이다. 반면, 창원은 95%에 육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주물량을 창원공장 중심으로 배정해 의왕공장폐쇄를 부추기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해 로템이 수주한 전체 물량은 1,043량이었다. 창원공장이 경부선과 대전 광주 등의 지하철과 해외 전동차 등 619량인 반면 의왕공장이 전동차와 개조차, 동차를 포함 424대에 불과했다. 수치로 보기에는 약 30%가량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창원공장의 대부분 공사는 공장내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비해 의왕공장이 맡고 있는 물량은 공장이 아닌 철도차량 기지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 관계자는 “의왕공장에는 철도차량 제작을 위한 최고의 설비가 갖춰져 있음에도 작업을 해당기지에서 하도록 하는 행위는 ‘텅 빈 공장’을 만들어 근로자들에게 불안을 야기시켜 공장 폐쇄를 유도하려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원자재 조차 납품을 못하게 하고 있어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하다는게 노조측의 주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의왕공장에서 아일랜드 동차 120량에 대한 계획이 잡혀 있는데 원자재가 없어 만들기가 불가능 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 “로템은 군수 관련 방산산업과 철도 플랜트의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의왕공장은 철도에 한정된 반면 창원은 3가지를 모두 하고 있어 통폐합이 이뤄질 경우 의왕공장을 폐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그룹서 폐쇄 결정’
그러나 현대·기아차그룹은 로템 의왕공장을 폐쇄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파장이 커지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0월 초 그룹 임원회의를 개최해 의왕공장 폐쇄를 결정한 이후, 경영진을 교체하는 등 통폐합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지난해 10월 7일 그룹 내 기획통으로 알려진 정순원 전 현대·기아자동차 총괄본부장을 로템의 대표이사로 내려 보낸 데 이어 5일 뒤 그룹 내 구조조정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는 김평기 (주)위아 대표이사를 재차 인사 발령했다. 이어 외환위기 당시 현대자동차 그룹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던 장호균 씨까지 로템 전무이사로 자리 잡으면서 본격적인 공장통폐합을 추진했다는 주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정순원 부회장이 로템으로 올 당시 구조조정을 지시받았으나, 근로자들이 열의가 높아 불가능한 것으로 회사에 보고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 때문에 현대 측에서는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김평기 대표이사를 내려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 측은 김 대표이사가 자회사 9개 정도를 구조조정 한 인물이긴 하지만,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외환위기 당시 현대차의 구조조정을 추진한 장호균 씨까지 가세토록 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 6월 사측이 전출 등과 관련된 직원 동의서를 강제로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한영철 공장장을 항의 방문한 자리에서 한 공장장은 ‘이미 지난해 10월4일 그룹 임원회의에서 의공공장 폐쇄가 결정났다’고 발언했다”고 밝혀 고속철도 사업을 끝으로 로템 의왕공장의 운명은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로템, “10월 결정은 구조조정 계획”
이 같은 뒷받침 하는 것이 올해 5월13일 금융감독원에 로템이 제출한 분기보고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로템은 올해 생산능력 확충을 위해 올해부터 오는 2007년까지 488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가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추가 투자를 결정한 부분은 회사 측이 주장하는 4월 공장 통폐합 확정 주장에 의구심을 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수주 물량도 원활치 않은 상태에서 생산능력을 확충한다는것은 자칫 무분별한 투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논란에 불을 당기고 있다.
로템은 올해 111억원을 철도부분에 투자키로 한데 이어 내년과 2007년에도 각각 166억원과 211억 원을 생산능력 확충을 위해 시설투자 비용으로 확정해 놓은 상태다.
로템 관계자는 “지난해 500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전임 CEO가 퇴직을 했고 그 자리에 정순원 부회장과 김평기 대표이사가 오게 된 것”이라며 “새로운 경영진이 경영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을 위해서 온 것은 맞지만, 통폐합은 올 4월말 경에 확정된 것으로 공장통폐합이 전제는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올 초 488억 원의 투자 계획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금이 없어 집행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이를 근거로 한다면 금감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가 주장하고 있는 지난해 10월 통폐합 결정설에 대해서는 “지난 5월 임단협 당시 한영철 공장장이 얘기 한 것은 ‘지난해 10월 초 그룹임원회의에서 구조조정이 결정된 것’이라고 밝힌 것인데 노조 측에서 이를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평기 대표이사 비난 봇물
10월 통폐합 결정설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김평기 대표이사가 로템에 취임한 이후의 행적에 대해 비난이 일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 내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김평기 대표이사는 취임 후 의왕공장 노동조합을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으면서도 직원들의 서클활동에 수천만 원씩을 투입한 것은 통폐합을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사측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최근 노동조합 홈페이지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김평기 대표이사에 대한 비난의 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특히, 지난 5월22일 노동종합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은 충격을 주고 있다. ‘박정자(가명)’라는 명의로 올라온 글에 의하면 김 사장은 ‘회사의 사장으로 임명된 이후 일이란 허구헌날 산을 타고 주말이면 전국 방방곡곡의 마라톤 대회에 끌려 다니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한 번도 토·일요일에 놀아본 적이 없습니다’라며 하소연했다.
또 김사장은 “이 새끼들아! 현대자동차가 다 알아서 먹여주니 니들은 내 말만 잘 듣고 산이나 열심히 타고, 죽어라고 마라톤이나 하란 말이야!”라며 기업운영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전 직원에게 현장사원 3명에서 5명을 맨투맨으로 책임지고 퇴직 시키랍니다’라며 퇴직을 강요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여기에 매일 팀장 회의를 소집 ‘오늘 몇 명의 모가지 가져왔냐?’라며 직원축소에 혈안이 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노동조합 오명세 위원장은 “그와 같은 일은 사실이며, 우리 노조측에서는 창원의 팀장급이 올린 글로 보인다”면서 “맨 처음 김 사장이 부임했을 때 전 직원에게 클럽활동 하도록 회사에서 지원해줘 좋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계획된 전략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5월말까지 관리직 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현장근로자 1명에게 ‘룸싸롱’ 등에 데리고 가서 회유를 시도하는 등 그야말로 직원들을 내 쫓기 위해 가진 일을 다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도 모자라 최근에는 현대계열사에 근무하는 직원이 의왕공장에 근무하는 근로자와 친·인척 관계에 있을 경우 ‘의왕공장 직원이 안 나가면 네가 나가야 하니 알아서 해라’라는 식으로 협박까지 하고 있다”고 덧 붙였다.
로템 관계자는 “회사 경영이 어려워 경상비용 이외 아껴쓰고 있다”며 “하지만 CEO가 선호하는 마라톤과 등산 등에 대해서는 크게 줄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 가운데서도 서클활동 비용을 줄이지 않은 것은 공장통폐합으로 몰고 가려는 경영진의 계획이었다는 게 노조 측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