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현재 전하고 있는 예가 매우 드문 조선 전기 백자묘지인 ‘윤산군이탁백자음각를 오는 1월 1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13호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화정박물관(종로구 평창동 소재)이 소장하고 있는 이 묘지는 서울시가 2010년에 실시한 ‘명문이 있는 백자’ 일괄공모를 통해 발굴된 것으로 문화재위원 조사와 3차에 거친 문화재위원회의 도자사 및 사료적 가치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거쳐 선정됐다,
묘지는 세로 23cm, 가로 18cm, 두께 2cm의 직사각형 순백자로 총 3매이다. 음각으로 해서체의 묘지명을 새겨 넣었다.
내용은 묘주인 윤산군 이탁(1462~1547)의 이력과 품행, 몰년과 장례 등에 관한 것이고, 글은 입암 민제인이 윤산군 이탁이 세상을 떠난 가정26년, 즉1547년 4월에 지었다. 뒷면에는 ‘一’, ‘二’, ‘三’의 숫자를 음각으로 새겨 묘지의 순서를 표시했다.
윤산군 이탁은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 이구(1419~1469)의 9명의 아들 중 8번째 아들로 자는 자광이다. 지금까지 그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과 ‘선원계보기략’등에 전할뿐 자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고 단편적인 사실만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런나 이번 문화재 지정조사와 심의, 묘지명의 원문 번역을 통해 그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그의 이력과 성품, 품행, 가족사항, 장례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묘지명에 의하면 윤산군 이탁은 7살이 되던 1468년에 보신대부의 품계를 받아 윤산부정이 되었고, 1476년(성종 7년)에 창선대부, 1499년(연산군 5년)에 명선대부, 1541년(중종 36년)에 정의대부와 윤산군에 봉해졌으며, 1543년(중중 38년)에는 중의대부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중반정 후에는 신수근과 가까운 친척이라는 이유로 김해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8월 풀려나기도 했다.
윤산군은 평소 조용하고 침착한 성품으로 술을 즐기지 않았고, 꽃을 좋아하는 반면 활쏘기에 능하였던 면모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부사정 신석녕의 딸과 혼인하여 두 아들을 두고, 측실에서 다섯 아들을 두어 모두 일곱 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86세까지 천수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