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7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주)명정보기술 이명재(54세) 대표를 선정했다.
이명재 대표는 국내 데이터 복구 분야의 개척자로 정보보안에 대한 인식 확대 및 국가 안보 유지, 세계적 수준의 복구 기술 개발를 통한 국내외 민간, 공공 부문의 정보화를 이끌고 있는 기능인이다.
사실 이명재 대표의 어린 시절을 보면 현재의 기능인 이명재를 짐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교,중학교 때부터 1등을 놓쳐 본적이 없었습니다. 공부를 곧잘 했기 때문에 판검사 되란 이야기만 많이 들었지 기술, 기능이 뭔지 알 기회도 없었던 시절이었거든요”
1957년, 충북 괴산에서 8남매의 차남으로 태어난 이 대표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잘해 집안의 자랑이었다.
그러던 중 기능 강국을 위한 전문 교육 기관 육성정책으로 금오공업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무상교육, 기숙사 제공, 일본 유학’이라는 특전을 내세웠던 그곳에 입학한다.
그러나 중학교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의 자존심 강했던 소년은 기숙사 생활과 작업복 차림의 실습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성적은 곤두박질 쳤고 기술과목 낙제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순박한 시골 소년은 현실 도피로 바둑과 문학에 심취한다.
기술, 기능보다 특별한 뭔가를 갈망했던 그는 기술자격증을 따는 것도 거부, 공고를 졸업하고도 기술자격증이 없는 특이한 이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졸업 후 그는 기능인으로서의 운명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일본 유학 특전 대신 졸업생 전원 하사관 임용으로 정책이 바뀌면서 레이더 정비 하사관으로 5년간 군복무를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최첨단 병기를 정비․수리하는 업무를 주도적으로 맡게 된다.
“대대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죠. 공고에서 알게 모르게 배운 이론과 실습들을 현장에서 응용하면서 기능인의 첫 발을 수월하게 내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때는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어느새 기능은 제 몸 속에 조금씩 배어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1983년 컴퓨터 하드디스크 헤드 생산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던 미국계 다국적 회사 AMK에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한다.
당시 AMK는 청주에 7,000명 규모의 생산 공장을 갖추고 있었고 이 대표는 그곳에서 3년간 근무하며 통상 생산직 직원은 열람할 일이 없는, 엔지니어들이 주로 취급하는 회사 내부 매뉴얼 관련 자료를 직접 손으로 베껴 쓰며 컴퓨터 하드디스크 관련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고장이 나면 바로 일본으로 수리를 보냈던 AMK 회장의 컴퓨터를 그가 고치게 되었고 이후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그는 생산만 전담하던 회사에 마그네틱 헤드 수리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제안하고 컴퓨터 하드 디스크 수리 및 기술 영업의 총괄 책임자로 업무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그러던 중 또한번 행운의 여신이 찾아오는데...
“창업이나 사업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다국적 기업인 AMK가 인건비가 높아지자 한국시장 철수를 결정했고 저는 회사에서 쌓은 기술과 영업망, 고객까지 그대로 갖고 나오게 됐죠. 그 때 창업한 회사가 현재의 (주)명정보기술입니다.”
‘디지털’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그 때, 데이터 복구시장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분야였고 축적된 노하우도 전무한 상태. 이 대표는 데이터 복구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미국을 수차례 방문했고 데이터 복구 전문가가 있다고 하면 며칠씩이나 붙어 앉아 배웠다.
그 결과, 그가 이끈 (주)명정보기술은 국가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큰 활약을 하게 된다.
2010년 링스헬기 추락 사고시, 헬기에 내장된 하드디스크를 복원해 원인 규명에 기여했고 천안함 침몰 사건 때도 진가를 발휘했다.
“45일간 바다 속 염분에, 그것도 뻘 속에 잠겨 있던 천안함의 하드 디스크를 복원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일이었기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10일 밤낮을 쉬지 않고 작업한 결과, 복원을 해 냈습니다”
현재 (주)명정보기술은 연매출 268억에, 수출액 310만불, 종업원 250명이 일하고 있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현재 플래시 메모리를 이용한 IDE 및 SCSI 방식의 데이터 저장장치 등 8건의 특허(이명재 대표 발명 5건)를 보유하고 있고 차세대 저장 장치로 각광받고 있는 SSD를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 지난 2004년 업계 최초로 상용화를 해서 제품을 출시했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2006년에 진출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앞선 셈이다.
그 밖에 지난 2001년부터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를 비롯, 대검찰청, 국가정보원 등 공안기관에 데이터 복구 기술 이전과 보수 교육을 실시하며 수사능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온트랙, 유럽의 이바스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재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이란 등에 데이터 복구 기술 수출에도 앞장서고 있다.
긍정적 사고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의지력, 적극적인 생활 태도를 인생의 모토로 삼는 이 대표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장애인 고용 확대 및 지역 내 소외 이웃에 지속적으로 컴퓨터 지원을 하면서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중이고 ‘데이터 복구 사례집’도 출간해 무료 배포하며 정보화 지식 전파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