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 전형은 없다
2001년 새롭게 태어난 <에쿠우스>
창단
40주년을 맞이한, 정통연극의 산실이자 국내 명문극단으로 자리잡은 ‘실험극장’이 오랜만에 외도에 나섰다. 2000년대 새옷으로 갈아입은
<에쿠우스>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영국의 극작가 피터 쉐퍼의 작품인 <에쿠우스>는
26마리 말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소년의 ‘엽기’적 실화를 바탕으로한 것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사회적인 억압 사이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고통받는 인물군상의 절규를 그리고 있다. 지역과 문화는 다르지만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어, 지금까지
전세계 관객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작품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60년대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공연되어지고 있는 <에쿠우스>,
이번 작품도 그 동안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새로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에쿠우스>는 관객을 숨막힐 듯한 긴장감으로 몰아가는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 동안 연극의 중심축인 ‘다이사트’와
‘헤스터’ 역은 김동훈, 신구, 이호재, 정동환, 이주실, 연운경 등 연극계의 대표적 배우들이 열연하여 왔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캐스팅은
파격적이다. 쟁쟁한 남자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다이사트’역에 우리시대 최고의 여배우 박정자 가, 여자판사였던 ‘헤스터’역은 제1회 김동훈연극상
수상자인 한명구가 맡아 원작과는 다른 ‘성’으로 연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원작의 일부분을 수정, 극적 긴장감이 높아진 것은
물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어 재공연이 갖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이번 <에쿠우스>공연은 또 하나의 실험적인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공간의 변화를 활용한 충격적 이미지 창조다.
그 동안의 소극장공연에서 탈피하여 대극장인 토월극장으로 무대를 옮겼다는 것은 연극의 상당한 변화를 가지고 왔다. 토월극장의 깊은 무대를
활용하여 역동성을 강조하고 전작에는 없었던 앨런의 의식과 다이사트의 정신세계를 의미 있게 구속하는 연극적 장치가 보강되었다.
<레이디 맥베스>를 통해 실험적 무대를 시도한 바 있는 연출가 한태숙은 무대미술가 박동우의 독특한 무대와 여섯 마리 말의 역동적인
움직임, 그리고 라이브로 진행될 소프라노의 선율과 말들의 괴성이 뒤섞여 빚어내는 충격적인 음향 등으로 더 한층 강화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에쿠우스>는 공연 때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논쟁에 휩싸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에쿠우스>는 단순히 자극적인
볼거리만을 제공하는 연극과는 격이 다른 작품이다. 상업주의에 빠진 선정성이 아닌, 사회적 억압의 대립과 갈등 속에 절규하는 인물들의 고통을
표현한 것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작품이 요구하는 대로 ‘앨런’과 ‘질’, 두 남녀가 완전한 알몸이 되어
각각의 역할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25년만에 비로소, 완전한 틀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기대하게 하는 연출가 한태숙, ‘성(性)’을 뒤바꿔 새로운 모습의 ‘다이사트’를 그려갈 배우 박정자와
‘앨런’을 맡아 호연하고 있는 젊은 배우 최광일, 여기에 가세한 믿음직한 조역들과 작품을 탄탄하게 받쳐줄 스태프진, 이들 모두가 함께 앙상블을
이뤄 낸 무대, 2001년 새롭게 태어난 <에쿠우스>는 관객들에게 더큰 감동으로 다가가고 있다.
연극 <에쿠우스>
o 2월 9일(금)~3월 4일(일)
화·수·목·금 오후 7시 30분, 토·일 3시30분·7시30분
(특별공연 수요일 3시, 월요일 공연없음)
o 장소 :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o 공연문의 : 예술의전당(02-580-1300)
고병현 기자 bhgoh@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