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까지 570만명이 보며 올 여름 국산영화 최대흥행작으로 자리잡은 액션 사극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42) 감독은 2년 가까이 자료를 수집하고 장소를 헌팅했다. 이어 정교한 집필로 탄탄한 시나리오를 탄생시켰고, 뚝심과 의지로 블록버스터를 완성했다.
분명한 히트작이지만, 누구나 칭찬하는 영화는 아니다. 비판도 있고, 표절 시비도 나왔다. 김 감독은 불편해하는 대신 관심 겸 유명세로 수용하고 있다.
먼저, 연인이 아닌 남매 설정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거의 모든 영화에서는 악의 무리에 납치된 애인, 여자친구, 아내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히어로가 등장한다. 그런데 ‘최종병기 활’에서는 오빠 ‘남이(박해일)’가 청의 정예부대 니루에게 납치된 여동생 ‘자인(문채원)’을 구하기 위해 적진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최종병기 활’ 역시 기획 단계에서는 남이와 자인을 애인 관계로 만들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영화의 근간이 되는 ‘추격’을 놓칠 수밖에 없어 남매로 정하게 됐다.
“애인 관계는 뭔가 관계가 발전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추격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추격의 속도감, 긴장감이 뚝 떨어지게 되고 자인은 결국 민폐녀가 돼버리므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남매지간이 더욱 드라마틱할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불쌍하게 끌려간 누이를 구하러 가는 오라비의 이야기…, 뭔가 느낌이 있지 않나? 가족이라는 관계는 드라마를 일부러 강하게 만들지 않더라도 보는 사람들에게 더 강한 임팩트를 주고 뜨거운 감동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자인의 연인으로 다른 남자를 한 명 더 넣을 수 있어서 얘기를 더 흥미롭게 형성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빠와 남편이 의기투합해 자인을 구하러 가면 멋질 것 같았다.”
이어, 인조반정 당시 폐주 광해의 충신이었다는 이유로 부친이 참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남이와 자인이 몸을 피한 곳은 개경에 사는 부친의 죽마고우 ‘김무선(이경영)’의 집이다. 그곳에서 10여 년을 숨어살며 자인과 김무선의 아들 ‘서군(김무열)’은 연정을 키웠고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군이 바로 그 날 개경으로 쳐내려왔다.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잔치를 벌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 있다.
김 감독은 “역사를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은 압록강에서 한양까지 7일 만에 당도했다. 청군의 기마전, 전격전 앞에 조선군은 봉화 올릴 틈도 없이 당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인조가 강화도로 피란을 못가고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백두산 호랑이의 출현이다. ‘주신타(류승룡)’가 이끄는 니루들에게 쫓긴 남이가 숲으로 도망치는데 마침 그곳은 호랑이 서식지였다. 남이는 그곳에서 일부러 소리를 질러 호랑이를 꾀어내고 호랑이는 니루들을 공격해 남이를 구하게 된다. 영화 속 호랑이는 실제로는 백두산 호랑이가 아니라 태국의 벵갈 호랑이다. (3분의2는 태국에서 촬영해 온 실제 호랑이가 움직이는 모습, 나머지는 호랑이와 니루들이 싸우는 장면으로 CG를 활용했다)
이 장면을 두고 ‘영화가 왜 갑자기 괴수영화로 탈바꿈하느냐?’,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등의 지적이 나온다. 김 감독은 “관객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밀고 나갔다.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의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고 해명했다.
현실적인 이유는 남이는 혼자, 니루는 여럿인 상황에서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호랑이가 니루들을 해치워주는 것이다. “주신타와 니루는 약한 자들이 아니다. 남이가 아무리 신궁이라도 해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한 번 도와주면 고맙지 않나?”
이상적인 이유는 백두산 호랑이의 상징성이다. “민족의 영물인 백두산 호랑이가 만주인들에게 쫓겨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조선인을 돕는다면 의미가 크리라는 판단이었다.”
이 호랑이 관련 의문은 또 있다. 사람보다 2배∼3배 큰 호랑이가 실존하느냐는 것이다. 김 감독은 “원래는 그것보다 훨씬 크게 준비했었다. 하지만 제작 단계에서는 크기를 줄였다”며 “당시 기록들을 보면 사람 2배∼3배 크기의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호랑이와 마주치면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니루의 2배 정도밖에 안 되는데 왜 그렇게 크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고 되물었다.
끝으로, 가장 민감한 질문이다. 남아메리카 잉카제국을 배경으로 한 멜 깁슨의 액션 블록버스터 ‘아포칼립토(2006)’와 닮은 구석이 많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다.
“예상했던 일이다. 사실 ‘아포칼립토’는 나도 좋아하는 영화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 영화엔 호랑이가 등장하고 ‘아포칼립토’에는 재규어가 등장한다는 것 외엔 전혀 다르다. 당초 호랑이 장면을 넣을 때 주변에서 많이 반대했다. 표절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랑이가 백두산 자락을 배경으로 추격전이 펼쳐지는데 등장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고 관철시켰다.”
내친 김에 김 감독은 자신이 영향을 받은 영화들도 열거했다. “‘아포칼립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추격전의 원형으로 영화를 구상했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 주연의 ‘라스트 모히칸(1992)’,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도망자(1993)’에서도 많은 것을 느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의 저격 코드 역시 내게 강한 자극을 줬다. 할리우드 서부극, 일본 사무라이 영화들도 좋은 경험이었다.”
그러나 표절 의혹에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이야기의 원형은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서 필요하다. ‘최종병기 활’에는 이처럼 추격전과 저격이라는 낮익음과 활과 병자호란이라는 낯설음이 함께 자리한다. 바로 그것이 영화의흥행 요소가 돼주고 있다.”
조상들이 가장 수난을 겪었던 그 시점에 선조들이 지닌 불굴의 정신이나 고귀한 정신에 초점을 맞추는 ‘역사 3부작’을 구상해온 김 감독은 ‘최종병기 활’로 병자호란을 재조명했다. 다음 번에는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 이야기, 그 다음에는 임진왜란 전투를 소재로 작품들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추석 연휴 ‘최종병기 활’이 관객 600만명을 돌파하면, 그의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한결 높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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