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의 경계를 허문다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실과 환영 - 극사실회화의 세계’ 展
삼성미술관은 2001년
호암미술관의 첫 전시로, 1970년대 경직된 추상회화에 대한 반작용으 로 등장한 극사실 회화를 재조명하는 ‘사실과 환영 : 극사실 회화의 세계’
전을 개최한다. 극사실 회화란 문자 그대로 지극히 정밀한 세부묘사로 그림이 마치 사진이나 실물같이 보이 는 회화를 말한다.
극사실주의 회화란
극사실 회화는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로버트 벡틀, 찰스 벨, 척 클로즈, 리
차드 에스테스 등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작가들은 타성화된 추상표현주의를 거부하고, 현대
적 삶에 대한 팝아트의 현실 감각과 멀리는 사실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적 회화의 전통을 계
승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리풍경, 자동차, 상점 간판, 오토바이 같은 주변의 실
제 대상이나 정경을 촬영한 사진과 슬라이드 필름을 격자무늬나 슬라이드 투영을 통해 캔버
스에 이미지를 확대 전사하여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정밀한 그림을 만들어 냈다. 이번에
소개되는 척 클로즈의 대표작이자 대작인 ‘조(Joe)’ 등의 외국 작품들은 모두국내에 첫
선을 보이는 작품들이라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할 수 있다.
우리의 극사실주의 회화
우리 현대 미술에서 극사실회화는 70년대 우리 미술의 주류를 형성했던 모노크롬 회화에 대
한 반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때에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작가들은 지나치게 현실과
유리된 추상회화에 저항하면서 주변의 환경과 일상 현실의 대상에 대한 충실한, 그러나 기
존의 아카데믹한 사실주의와는 차별화된 극사실주의의 형상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추세는
급속도로 확산되어 1978년에 이르러 산발적이었던 에너지가 집결된 여러 차례의 전시가 집
중적으로 열리기도 했다. 이러한 전시회 등을 통해 작가들은 평면지향의 추상화에 저항하며
동시에 기존의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회화와 차별화된 ‘새로운 사실회화’를 들고 나왔다.
고영훈의 ‘돌’, 이석주의 ‘벽돌벽’, 김영창의 ‘모래사장’, 지석철의 ‘소파쿠션’, 조
상현의 ‘표지판’ 등은 모두 실물과 착각할 만큼 정교한 일루젼을 창출했다. 이들의 작업
의 1970년대 한국 화단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었으며 이후 80년대 형상성 회복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된다.
우리와 미국 작품의 차이
한국과 미국의
극사실주의 회화는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극사 실주의 회화는 소비산업화된 60∼70년대의 도시 이미지들을 전달하려
노력한 반면 우리의 작품들은 도시환경의 맥락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양상은 우리의 작가들이 경제 개발과 산업화라는 사회적 가치와는 무관한
감성으로 작업에 임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미 국의 작가들은 작업에 임해 실제 사진을 매우 절대적인 요소로 삼았던 것에 비해 우리의
작 가들은 대상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정도의 참조물로밖에 사진을 이용하지 않았다. 화면의 구성에 있어서도 미국의 극사실주의 작품들은 기존의
회화적 특징과 별반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 반면 우리작가의 작품들은 전통적 방법을 지양하여 배경이나 상황을 배제하고 원근 을 제거하는 등
대상에 대한 즉물적 묘사를 중시했다. 그러한 기저에는 모노크롬 회화에 저 항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모더니즘적 감성이 흡수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의 극사실회화는 추상의 타성화에 대한 저항이라는 발생 배경과 치밀하게 세부를 묘사
하는 기법면에서 미국의 그것과 중요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우리 현대 미술
의 보다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발현한 간과할 수 없는 차이들이 가미되어 한국적 극사실회화
만의 특성을 정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림에서 사라진 형상을 다시 복귀시키고자 했던
우리의 젊은 작가들은 극사실 기법에 기성 작가들의 모더니즘적 감각을 접목시켜 과거의 사
실주의 회화와는 다른 또다른 전통을 수립한 것이다.
또한 한국의 극사실회화는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반에 활발히 진행되어 오던 개념미술과 오
브제 미술 등 탈모더니즘적인 논리까지 흡수하여 70년대 우리 미술의 구도를 다변화시켰고,
나아가 80년대의 탈모던적 형상미술과의 일종의 과도기적인 혹은 완충의 역할을 함께 했다
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과 미국의 극사실회화를 함께 감상함으로써 모방이나 독창성의 논의
이전에 두 나라의 예술적 특성과 우리 미술상황에서의 독자적인 차별성을 시각적으로 확인
하고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전시명: 사실과 환영 - 극사실회화의 세계
전시장소: 호암갤러리
전시기간: 4월 29일(일) 까지/오전10시∼오후6시(매주 월요일 휴관)
문의: 02) 750-7838
장진원 기자 jwjang@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