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동양그룹이 개인투자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판매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위원회의 조령모개(朝令暮改)식 규정 변경이 작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는 증권사 신탁재산에 계열사 주식과 채권을 10%로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가 폐지해 동양증권이 그룹 계열사의 회사채와 CP를 대거 편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후 문제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자 뒤늦게 이를 다시 규제하는 내용으로 규정을 바꿨다. 하지만 이마저도 동양그룹의 요청으로 당초보다 시행을 늦춰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2005년 증권사가 신탁업을 겸할 수 있도록 금융투자업 규정을 개정했다. 증권사들의 수익기반을 확대한다는 이유에서 였다. 신탁업은 증권사 등 금융사가 고객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대상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2005년 당시에는 증권사가 신탁재산에 편입할 수 있는 계열회사 주식과 채권은 10% 이내로 제한됐다.
하지만 2008년이 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영주 의원에 따르면 금융위는 2008년 8월 '금융투자업 규정'을 제정하면서 계열회사 지원 목적의 계열회사 증권 취득을 금지한 규정을 삭제했다.
당시 금융위는 자본시장법 시행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던 당시 “투자일임업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내세워 신탁재산에 계열사 주식과 채권 편입을 전면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동양그룹이 동양증권을 통해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신탁재산에 편입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굳게 닫혔던 빗장이 일시에 풀리면서 동양증권은 1조6000억원에 달하는 그룹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개인투자자에게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
정책당국의 규정 개정은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의 소극적인 대처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금융위의 규정개정 직후인 지난 2008년 9월 동양증권에 대한 종합감사를 통해 당시 투기등급이던 동양파이낸셜 등 4개 계열회사의 CP 7265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적발했다.
이는 개정 전 신탁업감독규정에 의하면 엄연한 불법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가 규정을 개정한 만큼 금감원은 이를 처벌할 수단이 없었다. 절묘하게(?) 발생한 간발의 차가 5년 휜 2013년 9월 동양사태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김 의원은 “금융위의 규정개정으로 동양증권이 계열사 CP기업어음와 회사채를 신탁재산에 편입해 고객에게 판매해도 처벌할 규정이 없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금융위가 이런 불법을 발견하고도 제재 조항을 다시 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 의원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2009년 2월 재개정 없이 금융투자업 규정을 원안 그대로 시행했다. 이후 동양증권의 계열회사 CP보유는 '문책경고'라는 가벼운 처벌로 유야무야 된다.
일이 커진 뒤 보여준 금융위의 대응도 석연치 않은 구석을 남기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해 계열사 간 거래 집중을 규제하도록 금융투자업 규정을 다시 개정하는 방안을 마련해 올해 4월24일일 공포했다.
문제는 개정안의 시행시기가 '공포 뒤 3개월'이 아닌 '6개월'로 정해졌다는 점. 개정 규정이 터질 문제는 모두 터진 후인 10월 24일부터 적용되면서 동양그룹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는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더구나 개정안 시행이 동양그룹의 요청 때문에 늦어졌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 향후 사실규명 여부가 주목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이 동양그룹의 요청으로 최초의 3개월 후 시행이 아닌 6개월 후 시행으로 결정됐음을 암시하는 동양그룹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동양그룹은 ‘금융투자업규정개정(안)에 따른 현황 및 대응방안’이라는 문서를 통해 금융위에 “금융투자업 규정이 개정 시행되면 (주)동양의 회사채 상환이 불가능해지고,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의 신탁을 통한 CP 발행이 어려워진다”면서“대주주의 자구 노력과 구조조정 성과를 검증 판단한 후 시행 시기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의원은 “금융투자업 규정은 최초의 3개월 후 시행이 아닌 6개월 후 시행으로 4월 24일에 공포됐다”면서 “결국 7월 24일 이후 동양증권을 통해 부실계열사 CP나 회사채를 사들인 투자자는 입지 않을 수 있던 손해를 보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