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지난해 회사 출범 11년 만에 국내 시장 사상 최대 판매실적을 올리며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지만 이번 결정으로 날개가 꺾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이 소속된 GM해외영업본부(GMIP)는 최근 쉐보레 유럽 시장 철수를 명목으로 한국GM에 6억2100만 달러(약 6644억원)의 비용을 손실 처리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GM이 진행 중인 글로벌 브랜드 구조조정에 따라 유럽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한국GM이 떠안게 된 셈이다. 한국GM은 쉐보레 유럽판매법인 15곳을 운영해왔다.
한국GM으로서는 6600여 억원의 손실이 발생, 자금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GM, 잇딴 자금 압박 '수난사'…실적 악화의 단초
한국GM은 그동안 잇딴 자금난에 시달려왔다. 1999년 대우자동차 시절 모기업 대우의 경영 악화로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2년 뒤 GM에 인수되며 사명이 GM대우로 바뀌었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 GM의 인수로 자금난은 일단락 되는 듯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또 한 차례 휘청였다.
그해 GM대우는 선물환 등 파생상품 거래에서 1조 4686억원에 달하는 큰 환손실을 입었고, 이듬해 차입금 1조 2000억원의 상환시점을 앞두고 있어 현금난이 가중되고 있었다.
GM은 2009년 4월 레이 영 미국 GM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부사장의 입을 통해 "산업은행과 한국 정부가 먼저 지원하지 않는다면 본사로서는 지원할 방안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GM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GM이 GM대우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으나 그 해 9월 GM의 태도가 돌변했다. GM은 2009년 9월 운영자금 약 4911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 가까스로 자금난에 숨통을 틔웠다.
이후로도 한국GM은 재무건전성 악화에 따른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GM에 인수된 GM대우는 출범 이후 경영 정상화에 박차를 가했지만 적자 행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2007년 들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윈스톰(캡티바의 전신)와 경승용차종이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모으면서 영업이익 3356억원으로 흑자전환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듬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결국 한국GM의 영업이익은 ▲2008년 2903억원 ▲2009년 1551억원 ▲2010년 757억원으로 3년 연속 내리막을 달렸다.
2011년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GM대우는 사명을 한국GM으로 변경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쉐보레 브랜드를 국내 시장에서 출시하며 국내 시장 판매 전략을 큰 폭으로 수정했다.
그 결과 한국GM은 2012년 1137억의 영업이익을 내며 실적이 개선됐다. 지난 2012년에는 3402억원의 영업손실을 보며 다시 적자 전환했지만 통상임금의 3년치 소급분 지급을 대비, 8000여 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적 개선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한국GM은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전년보다 3.7% 증가한 15만1040대를 판매, 2002년 회사 출범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직전 최대 판매량은 2012년에 세운 14만5702대로 2년 연속 국내 시장 판매량을 늘려가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번 유럽 판매법인 철수로 6600여 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2년 연속 적자 행진이 불가피해졌다.
◇경영정상화 '첩첩산중'…2년 내 8882억원 상환 도래
지난 2012년 기준 한국GM의 부채비율은 275.4%. 같은 해 현대차(153.6%), 기아차(156.4%), 르노삼성(84.2%), 쌍용차(131.1%)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GM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2012년 기준 3410억원. 하지만 지난해 한국GM이 2002년 대우자동차 인수 당시 산은 등 채권단에게 부여한 2조3000억원어치의 우선주 중 만기도래한 4895억9500만원을 상환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6600여 억원의 손실을 떠안게 되면 운영가능한 현금은 더 줄어들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GM은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통상임금 소송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을 방침이다. 앞서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지난 13일 쉐보레 말리부 디젤 출시행사에서 "올해 핵심과제는 임금단체협상"이라며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후폭풍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큰 폭의 영업실적을 개선시킬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고민이 크다.
한국GM은 당장 2015년부터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철수 결정으로 일감이 큰 폭을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GM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 한국GM의 수출량 65만4933대 중 유럽 수출량은 30% 정도를 차지하며, 한국GM은 유럽에 공급되는 쉐보레 브랜드 차량 중 90%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GM은 지난 2012년에 이어 지난해도 사무직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위기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더구나 2016년 이후 도래하는 우선주 상환금액은 8882억원에 달해 경영정상화를 향한 길은 첩첩산중인 셈이다.
한국GM 2대 주주(17.02%)인 산은도 한국GM의 재무건전성 악화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GM의 쉐보레 브랜드 유럽 시장 철수는 이사회 결의 사항이기 때문에 소액주주로서는 반대할 수 없다"며 "한국GM 이사회를 통해 재무구조 악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해왔고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GM측은 이번 유럽시장 철수가 장기적으로는 경영정상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GM에 따르면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1% 수준으로 매우 미미하다. 오히려 그동안 유럽 시장 마케팅, 법인 운영 비용 등으로 적자를 봐왔기 때문에 정리하는 편이 오히려 이득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한국GM이 소유한 유럽 법인은 지난 2012년 5억6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입었다.
한국GM 관계자는 "유럽 판매법인은 장기적인 안목에서보면 정리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