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축전이 과연 문제인가?
‘돌출행동’도 있었지만 민간교류 지속·확대 큰 수확
미국
부시정권 출범이후 급속하게 냉각됐던 남북관계에 물꼬를 터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8·15 민족통일대축전’ 행사가 탈세언론의 여론몰이에
얼룩져 버렸다. 조선, 중앙, 동아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은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 아래서 열린 개막식 참가 기사를 시작으로 ‘남남갈등
증폭’, ‘통일전선전술에 이용’ 등의 기사를 연일 주요하게 다룸으로써 사실상 여론재판을 주도했으며, 한나라당은 이를 “평양광란극”이라는
극단적인 용어로 규정(22일 권철현 대변인 성명 등)했다. 평양축전 과연 문제 였나?
평양광란극 없었다
평양축전은 출발이전부터 행사장인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을 놓고 논란이 거듭되다 급기야 남측 대표단의 평양방문이무산위기까지 갔었다. 남측
방문단이 출국하기 이틀전인 13일 밤이 되서야 북측은 3대헌장 기념탑 제막식의 개회, 폐회식은 독자 행사로 치르고, 작년 10월 노동당
창건기념 행사 참석 때와 마찬가지로 남측의 행사 참가는 참관 형식으로 한다는 양보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14일 오후까지도
허가해줄 수 없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추진본부와 각계의 노력이 있었고, 정부는 심적인 부담을 느끼면서도 남북 관계 유지를 우선으로 생각하여
어려운 허가 결단을 내렸다. 다만 3대헌장 기념탑 참관은 허락할 수 없다는 조건부였다.
대표단은 겨우 행사 당일 15일 오후에야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북측은 평양까지 와서 행사 참관도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왔느냐는 주장이었다. 게다가 행사장에서 만난 4천여명의 북측 참가자들은 14일부터 뙤약볕에서 남측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북측 관계자들이 개별적으로 대표들에게 사정을 말하며 참석을 권하였다. 대표단 집행부가 대응을 논의하던 도중 일부 대표들은
자연발생적으로 북측이 준비한 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향하여 막 시작된 개막식 행사를 참관하였다. 하지만 대다수 대표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개막식은 매우 짧고 싱거웠다. ‘이적행위’로 규정될 만한 정치적인 내용이 참가자들에게 강요되지 않았으며, 정치적 내용이라면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전민족적으로 대응하자”는 정도였다. 곧바로 문화공연이 펼쳐졌고, 후반부에 민요가 이어지자 남과 북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기도 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도 덜도 없는 행사였다. 결국 방북단 일부는 정부와의 약속을 깼지만 북측에 최소한의 체면을 세워준 셈이 됐고, 또한
다수를 차지하는 200여명은 개막식에 참가하지 않음으로써 남측 정부의 체면을 살려줬다. 남북 모두에게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명분을
안겨준 셈이다.
다음날 북한 노동신문은 행사 자체는 크게 보도했지만, 남측 대표 참관 사실에 대해서는 개막식이 끝나고 이루어진 행진식(퍼레이드)에 참가했다는
사실만을 한 줄 정도 보도한 반면, 남한의 수구언론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만경대 정신’의 실체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쓴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방명록 내용이 조선, 중앙 등에 대서특필되었고, 이들 언론들은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를 찬양한 것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찬양한 것”이라며 매섭게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에서는 ‘만경대 정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만경대 정신은 강 교수의 머릿속에서 나온 용어이며,
결국 그에 대한 해석도 강 교수의 머리를 빌려야 한다. 강 교수는 “파문이 인 것에 대해 유감스러우며, 주체사상이나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고 해명했다.
“예컨대 백두산에 올라 구체적인 의미부여 없이도 ‘백두산 정기’나 ‘정신’을 말하는 것처럼, 만경대를 방문해 ‘만경대 정신’이라 표현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일제에서 해방된 뒤 독립유공자 자녀들에게 교육 혜택을 주었던 ‘만경대혁명유자녀학원’을 떠올린 것은 사실이며,
이는 김일성주의나 주체사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만경대파문에 대하여 작가 황석영 씨는 “현실은 남쪽에 있고 몸만 간 것인데 계획된 정치행사를 따라가다 돌출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렇지만 언론에 의한 과도한 증폭이 문제다. 상가집엘 가도 술 취한 횡포꾼이 있게 마련 아닌가? 남한 사회의 다양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이것을 좌우대결로 몰아가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회혼란 수구언론이 조장
민주노동당은 22일 “광란의 수구세력, 그 광기에 춤추는 정권”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우리가 문제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간 남한의
정권실세와 주류세력이 북한 정권과 그 지도자를 찬양했던 것이 부지기수인데, 왜 이제 와서 이런 광란의 냉전극이 펼쳐지느냐이다”라면서 “전두환
정권 시절 장세동의 김일성 찬양발언은 무엇이며, 한 유력언론이 고 김일성 주석의 ‘보천보 전투’를 기념해 선물로 보낸 순금 신문원판은 무엇이며,
그동안 재벌회장들이 북한 지도자들에게 보냈던 무수한 선물은 또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권력위의 권력’으로 군림해 왔던 신문권력에게 사상 초유의 세무조사와 이에 따른 탈세탈루 사실의 적발, 언론사주의 구속 등은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으며, 이들에게는 수세적인 입장을 뒤집을 반전의 기회가 절대 필요했다.
그 때 걸려든 것이 민족공동행사 방북단이었으며, 이들은 방북단으로부터 ‘개막식 참석’이라는 먹잇감을 문 이래 ‘남남 갈등’, ‘대남 통일전선전술’,
‘만경대정신=주체사상’이라는 일련의 비상식적 ‘침소봉대’ 기사로 연일 신문지상을 뒤덮음으로써 ‘반전’을 꾀했고, 이는 상당 부분 먹혀든
것으로 판단된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8월 언론사사장단 방북 당시의 합의내용을 다시 들춰보라”고 충고를 던진다. 당시 언론사 사장단은 ‘통일과 민족단합에
도움이 되는 언론활동 전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저해하는 비방중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5개항에 합의한 바 있다. 과연 이번
방북단과 관련한 일련의 보도가 ‘통일과 민족단합에 도움이 되는 언론활동’인지 의심해 보라는 것이다.
사실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앞 개·폐막식 행사 참가 논란과 ‘만경대 방명록 파문’에 묻혀서 그렇지 이번 행사는 민간교류의 지속·확대
측면에서 보면 나름대로 풍성하다.
민간교류 확대돼 통일의 밑거름
학술
분야에서도 일제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한 공동학술회의 등을 협의하고 있다. 이미 일제 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남북 민간 단체의 공동 전시회가
열렸고 공동결의문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남북의 공동 보조는 고이즈미 내각이 보이는 망발에 대한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종교
분야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의 신도들이 모여 공동 예배를 가졌다. 이전까지 남측의 목사나 신부가 방문, 예배,
미사를 한 적은 있어도 성직자와 신도들이 모여 공동 예배, 미사를 가진 것은 처음이다. 불교는 묘향산 관광길에 보현사를 방문, 공동 예불을
드렸다. 이 밖에 유교, 천도교, 대종교, 단군교 등 민족종교들도 상호 만남을 통해 구체적인 교류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요한 사업으로
개천절 공동행사가 합의 단계에 이르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예총이 협력 사업에 합의를 보고 있다.
또한 8월 21일 발표한 공동보도문에 명기된 △내년 8·15 서울행사 북쪽 대표단 참가 △일제 강점기의 만행 폭로와 사죄·보상을 위한 다양한
공동행사 △독도영유권을 지키기 위한 학술토론회 개최 등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당국 대화가 중단되고 있지만 민간 사이에 이루어진 이만한
성과는 남북대화에 큰 밑거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태를 두고 `남남갈등’이 증폭됐다는 주장도 있다. 분명 파장이 컸지만 이것이 우리의 통일에 대한 현주소이다. 서로 생각이 다름을
확인한 만큼 새롭게 통일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8·15평양축전 남측 대표단 단장을 맡았던 김종수
신부는 “4700만 국민 전체가 이렇게 통일논의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며,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 걱정이었는데, 국민적 관심 속에
올바른 통일논의의 계기가 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고병현 기자 bhgoh@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