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국내 카드결제망 시스템을 맡고 있는 밴(VAN, 결제대행업체) 업체가 화재 등 재난에 대해 무방비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대형 밴 사업자인 나이스정보통신 여의도 전산센터에 정전이 발생해 오전 9시께부터 3시간여동안 카드결제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해당 밴사의 단말기를 사용하는 가맹점에서는 카드결제가 이뤄지지 않아 가맹점주와 고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나이스정보통신은 매출액 기준으로 밴 업계 2위 업체로 15.2%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이날 사고의 경우 전원을 다시 공급하면 시스템이 다시 작동하는 단순 사고였지만 화재 등으로 시스템 자체에 장애가 생기면 카드결제가 아예 불가능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카드사를 비롯한 금융사는 재해나 테러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외부에 재해복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비상 상황에서도 결제가 가능하다.
삼성카드의 경우에도 삼성SDS 전산센터에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재해복구시스템이 바로 가동돼 고객들의 오프라인 결제는 즉각 복구된 바 있다.
하지만 나이스정보통신과 같은 밴 사업자는 금융사가 아닌 통신망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 같은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밴 업계를 감독 책임을 맡은 방송통신위원회도 이 같은 사항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밴 사업자가 사업을 하겠다고 신청할 경우 일정 자격이 되면 지정(허가)하게 된다"며 "정전 등으로 인해 업무가 마비됐을 때에도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라는 내용은 규정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사고가 발생한 나이스정보통신도 외부에 따로 전산센터를 두고 있지 않다. 점유율 2위 업체가 이 정도면 다른 중소형 밴 사업자의 상황은 더욱 열악할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밴 업체에 화재가 발생하면 그 회사 단말기를 사용하는 가맹점은 시스템이 복구될 때까지 카드결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현금 결제를 요구해야 한다.
특히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 같은 대형가맹점은 여러 밴사와 계약을 맺고 있어 비상시에 대체수단이 있지만, 하나의 밴사와 계약을 맺은 대부분의 가맹점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이처럼 밴사가 소비자들의 금융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감안해 금융당국은 밴사업자를 금융관련법규의 통제 아래 두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밴사는 전자금융법이나 여신전문금융업법에 저촉을 받지 않아 감독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밴사를 직접 관리토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