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없는 전쟁’ 언제까지…?
美 테러전쟁 대규모 공격서 강온양면으로 전환
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 미국 뉴욕·워싱턴 동시다발 테러 사건 이후, 미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번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의 근거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테러 발생 직후, “전술핵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테러 응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테러 발생 직후의 초강경수와는 달리 사태의 충격이 어느 정도 안정세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부시 정부의
전쟁 전개양상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 결정사항 없어
총성없는 전쟁이 3주째 계속되고 있다. 미 행정부는 테러범과 지원세력을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확실한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지는 2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이 지난 주 상·하 양원 합동연설을 통해 테러리즘을
근절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국제적 연대를 모색할 것이라 밝히며 군에 대한 경계령을 내린 것은 테러리즘을 응징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면서도, 그러나 보복 군사행동의 형태나 시기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한 신문은 부시 행정부로부터
군병력의 배치등에 관한 보고를 들은 의회 의원들도 부시 대통령이 아프간에 어떤 종류의 병력을, 언제 투입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확실히
내렸는지 여부를 아직 감잡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보 부족이 전쟁지체 원인
미국이 이처럼 군사 행동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테러 배후자로 지목되어온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온갖 기구와 국제적 협력을 통해 아프간 내에 은거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빈 라덴의 행방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자취는 오리 무중이다. 미국은 최근 빈 라덴의 행방을 찾기 위해 러시아, 파키스탄, 타지키스탄과 함께
4개국 합동정보팀의 구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빈 라덴이 아직도 아프간 내에 머물고 있으며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들 3개국의 정보요원들의 협력이 있을 경우 빈 라덴의 행방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했다. 미국은 합동정보팀
구성을 위해 이미 타지키스탄 당국과 협의를 했으며 러시아와도 며칠 내로 이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와 더불어 현재 아프간 북쪽에서 반 탈레반 활동을 벌이고 있는 북부동맹과도 빈 라덴의 행방추적을 위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월에야 공격 가능할 듯
테러 주모자 지목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그에 대한 행방이 묘연해지자, 미국의 전쟁 양상은 많은 수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9월11일의 대참사 이후 빈 라덴과 그를 비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대한 공격 준비를 모두 끝낸 상태지만, 대대적인
공습, 즉 전면전의 가능성은 일단 배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지난 9월27일 기자회견에서 “미 행정부는 시간을
두고 지속적인 테러 퇴치 작전에 필요하게 될 요소들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우리는 전쟁에 급히 뛰어들지 않고
있으며 계산된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헨리 셀턴 합참의장은 외교와 경제, 정보, 법집행 등의 수단을 활용하는 다차원 전략이
군사 보복에 국한하는 것보다 더 성공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셀턴 의장은 “군사적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신속히 움직일 수 있으며 TV나
신문에 잘 보도될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위기 대처시 자동적으로 군사력에 의지하는 것이 매우 용이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은 9월2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방장관 회담에서 이번 테러공격의 배후세력과 이를 응징하기 위한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빈 라덴 색출 작업과 탈레반 정권 응징을 위한 공격이 아직 임박하지 않았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전쟁의 개시가 이번
달(10월)로 넘어왔음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포스트, USA투데이 등 미 주요언론들은 27일 주요기사로 미 군사관계자들과 NATO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 ‘군사 보복공격이 임박하지
않았다’며 아직도 빈 라덴의 정확한 은신처와 그 추종세력들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보다 확실한 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의
외교관측통들은 이같은 미국의 태도에 대해 ‘미국이 테러와의 전면전을 선언해 놓고 빈 라덴 색출 응징 보장 및 전쟁실체와 교전범위, 승산과
확전여부 등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부시 대통령은 공격 신중론이 우세한 가운데 국가의 명운이 걸린 위기대처능력을
시험받고 있다’고 전망했다.
명분보다 실리를 쫓겠다
미국이 애초의 강경 자세에서 강온 양면 전술로의 변화를 보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국 내의 충격과 분노가 서서히 안정을 취하면서 명문보다는
실리를 쫓는 현실론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걸프전과 같이 한 나라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테러 주모자와 그 추종세력이 본질적인 적임을 감안한다면, 대규모의 양민에게 피해를 주고, 엄청난 숫자의 난민을 낳게 할 전면 공습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엔 무조건적인 협조와 지원을 약속했던 우방들도 서서히 실리를 생각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도 미국의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주요 우방으로 여겨져온 이집트는 이번 미국의 테러참사에 관련한 빈 라덴의 역할에
대해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미국의 대 아프간 전쟁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고 있는 파키스탄 정부도 26일 자국이 미국
주도의 대 테러전쟁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행동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파키스탄은 또한 이미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부채 탕감등을 약속받은 상태이다.
한편, 파키스탄은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아프간 난민들에게는 국경을 개방하지 않고 유효한 서류를 가진 아프간인들에게만 입국을 허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미국 측에 협력을 약속하면서 체첸공화국 내 이슬람 탄압에 대한 미측의 비난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도 미국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내정문제로 간주하고 있는 티베트 독립 움직임 탄압에 대해 입을 다물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반미(半美) 목소리 커져
미국의 아프간 공격이 점차 임박해지자, 미국의 보복공격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국이 인도네시아 주재
자국 외교관 일부와 가족에 대해 철수를 허용한 가운데 수도인 자카르타에서는 대규모의 반미 시위가 열렸다. 이슬람 복장을 한 1천여명의 시위대는
이날 자카르타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성조기와 부시 대통령의 모습을 본뜬 허수아비를 불태우며 격렬한 반미감정을 드러냈다. 시위를 주도한 무함마드
이스마일 유산토는 “이슬람 국가에 대한 공격은 전체 이슬람권에 대한 적대행위로 간주될 것”이라면서 아프간이 공격받게 되면 미국과 이에 동조하는
동맹국들을 적으로 간주, 성전(지하드)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그동안 지난 9.11 테러를 강력하게 비판해 온 이란 수뇌부들도
미국 주도의 국제적인 대테러 전쟁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는 ‘미국은 테러에 대한 국제적인 캠페인을
주도할 능력이 없으며, 이란은 미국이 주도하는 어떠한 작전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한편 노벨상 수상자 5인이 미국의 보복공격을 반대하는 ‘평화선언’을 발표해 화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귄터 그라스, 남아공의
네이딘 고디머, 이탈리아의 다리오 포,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남아공의 데즈먼드 투투 주교,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지난 달 26일 성명을 통해 미국이 공격을 개시할 경우 폭력의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진원 기자 jwjang@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