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KB국민은행이 IBM과 한국 IBM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정부 당국에 신고하기로 하면서 주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사외이사들의 주도로 이뤄진 이번 공정위 제소에 경영진은 반대를 굽히지 않음으로써 양측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열린 국민은행 이사회에서는 IBM의 가격정책이 시장의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다고 보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 제소안' 사외이사들이 주도
전날 아침 일찍 열린 이사회는 치열한 갑론을박으로 배달 도시락이 들어간 후에도 한참 뒤에 끝이 났다. 정병기 상임감사위원과 이건호 은행장, 박지우 부행장은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간극을 좁히지 못한 이유에는 'IBM에 대한 제소가 은행에 미치는 실익'에 대한 입장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들은 IBM의 가격정책이 독점이윤 추구를 위해 최대 생산과 최대 고용이라는 사회적 후생을 가로막는 것으로 판단해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신고하기로 했다는 입장이다.
김중웅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은 "공정위에 제소하면 이사회 결정에 대한 정당성을 충분히 부여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IBM은 금융시장에서 독점적 요소와 시장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와 유사한 케이스가 유럽연합(EU)에도 많다"며 "제소를 계기로 불리했던 계약 조건이 완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민은행 IT 본부에 따르면 은행은 수 차례 계약 연장의 조건을 요청했지만 IBM은 아직까지 응답이 없는 상태다. 은행은 이를 현재의 매월 사용료를 26억원에서 계약 만료(2015년 7월) 이후 89억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건호 행장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했다"
반면 이건호 행장은 공정위에 제소하는 방안을 반대했지만 사외이사들이 강력히 추진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러한 결정이 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 행장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이사회의 판단과 내 판단은 달랐다. IBM을 공정위에 신고한다고 해서 은행이 얻는 실익이 확실치 않다"며 "전산시스템 관련한 의사 결정을 서둘러 무리 없이 가동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 내부에서는 이 문제가 공정위로 끌고갈 이슈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사외이사는 다른 법무법인의 의견을 받아와 강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은행 법무실에서 해당 안건이 공정위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지었지만 사외이사들이 또 다른 로펌을 섭외해 안건을 밀어부쳤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이 '시장지배적 위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다. (국민은행이 말하는 시장지배적 위치를 가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올 때) 오히려 IBM이 은행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금융당국-공정위 끌여들어 '집안싸움'
결론이 어떤 쪽으로 나든 국민은행은 집안싸움을 해결 못하고 한쪽에서는 금융당국을, 한쪽에서는 공정위를 끌어들여 내부 갈등을 표출시키고 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최고경영자(CEO)의 내부통제력이 약해 이 같은 사단이 벌어진 것이 아니냐는 측면에서 이건호 행장은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그는 행장에 지명된 직후부터 낙하산 논란에 휘말렸다. 취임 4개월 만에 발생한 도쿄지점 부당 대출 사건은 그의 발목을 잡았고 그 이후로도 국민주택채권 횡령과 개인정보유출 등 내부통제 부실로 발생한 각종 금융 사고에 대해 대처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전산시스템 교체라는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금감원에 검사를 의뢰한데다 사외이사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해 갈등을 장기화시킨 책임도 있다.
금감원은 잇따른 국민은행 내부 금융 사고의 책임을 물어 이 행장에게도 중징계를 통보한 상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중징계가 아니더라도 이 행장 스스로 거대한 국민은행을 끌고 나갈 경영 동력을 상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