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아제약
장수상품 ‘박카스’ 신화
‘술’때문에 개발 … 수없는 시행착오 겪고도 과감한 ‘마케팅’ 전략 펼쳐
자고 일어나면 태어나고 사라지는 수많은 제품들. 그러나 수십년간 소비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 온 제품들이 있다. ‘자양강장제’하면
떠오르는 ‘박카스’는 의약계의 신화를 일궈낸 대표적인 장수상품이다.
첫 출시 당시 정제로 선보이면서 소비자들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과감히 현재의 드링크제로 바꾸고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전개해
오늘날 국내 최고의 강장제로 성장했다.
박카스가 장수상품으로 오랜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첫째, 상품명 둘째, 적극적 마케팅 셋째, 제품의 효능에 있다.
40년전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이 개발
1961년 정제 형태로 출시된 박카스는 1963년 드링크 형태로 바뀐 뒤 2002년까지 137억7,000여만명을 팔아 2조4,724억을
달성했다. 지금까지 팔린 병의 길이만 더해도 지구를 41바퀴 돌고도 남는다. 2002년 동아제약 전체 매출액 5,600억원 중 2,000억을
차지할 정도로 효자상품이다.
‘박카스 신화’를 일궈낸 인물은 동아제약의 강신호 회장. 강 회장은 1932년 강중희 창업주가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설립한 의약품 도매상
‘강중희 상점’을 이어받아 국내 최고의 제약사로 키웠다.
박카스는 강 회장이 40여년전 당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시절, 당시 한국 남자들이 술 때문에 간과 심장이 좋지 않아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개발했다. 박카스에 들어있는 타우린 성분이 몸을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원래 박카스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으로 강신호 회장이 간장을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이름을 생각하던 중 독일 유학 시절에
본 함부르크 시청의 지하홀 입구에 서 있었던 술과 추수의 신상 바카스를 떠올리게 돼 만들어진 이름이다. 당시 회사명이나 성분명을 이용해
제품명을 정하는 것이 고작이던 시대에 의약품의 이름에 신화 속 신의 이름을 붙이는 파격적인 상품명으로 탄생한 것이다.
잦은 제품개선…’드링크제 재발매로 성공’
박카스는 처음 ‘종합강간영양제’라는 표지를 내걸고 셀링포인트도 술에 맞춰 간장보호에 중점을 뒀다. 과감한 샘플공세 작전을 펴, 거래처는
물론 사원들의 가정과 친구들까지 음주전후에 “박카스를 먹으면 간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계몽과 함께 대대적인 샘플링을 전개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박카스-정’은 월 매출이 100정 포장단위로 1만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이듬해 봄,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제제 기술이 미숙한 탓에 박카스의 외피를 형성하는 당의가 녹는 문제가 발생해 대량 반품사태가
빚어졌던 것이다. 연구소의 긴급한 제품개선 노력으로 당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이미지 손상을 받고 시장 호응도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이후 동아제약은 박카스의 제형을 소비자 호응도가 높은 앰플제로 변경해 ‘박카스 내복액’을 재발매했다. 청량감이 우수해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앰플 용기를 다루는 소비자들이 사용에 익숙치 못해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운반과정 중에 발생하는 파손율도 컸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제품개선을 한번 더 실시해 현재와 같은 형태의 드링크 타입인 ‘박카스 디’를 선보였다. 잦은 제품 개량으로 회사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박카스 디의 성공을 위해 발매와 더불어 과감한 마케팅 전략을 짰다. 대량생산, 대량광고, 대량판매 전략 등 이른바
‘3M 전략’.
동아제약은 그때까지 의약품의 광고 스타일인 전문지를 통한 의사, 약사 대상의 광고방식에서 탈피해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모든 매체를
총동원했다. 특히 한창 선풍적인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TV매체에 중점을 뒀고, 광고에 톱니바퀴를 심볼로 한 패키지를 도입하고 ‘활력을
마시자’라는 메인 카피로 광고활동을 전개했다.
차별화된 크리에이티브 전략과 대대적인 광고 물량작전으로 박카스는 드링크제로 발매한 지 1년만인 1964년 드링크제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
그러나 장수상품 박카스의 성공 뒤에는 시련도 있었다. 1993년 광고가 재개되기 직전 박카스는 출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대중광고
금지기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오던 박카스 매출이, 1990년 박카스 에프로 제품이 변경되면서 광고금지로 인한 홍보부족과 맛 변화에
대한 소비자 불만 등으로 3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것.
또한 경쟁품들의 매출이 드링크제 수위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신장했고, 광고가 가능했던 식품 드링크들의 시장 잠식도 본격화되고 있었다.
동아제약은 자양강장제의 광고해금이라는 절대적 기회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대량광고 전략을 펼치기로 하고 광고안도 기존 드링크제 광고와는
달리 차별화된 휴머니티 광고를 전개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선보인 광고가 ‘새한국인 시리즈’ 캠페인.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그날의 피로는 그날 푼다!’라는
명카피들로 시작된 박카스 광고는 ‘박카스류 광고’라는 광고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힘과 활력으로 대표되던 드링크 광고에 잔잔한
감동과 묵묵히 일하는 휴먼스토리를 펼쳐 소비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광고는 신선한 감동을 주었고 이는 바로 매출증가로 이어져 지난해
7억1,000만병의 매출을 기록했다.
박카스의 성공은 혁신적인 유통전략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당시의 의약품들은 도매상을 거쳐 소매약국에 출하됐다. 그러나 동아제약은
과감하게 소매 직거래를 뼈대로 하는 ‘특약점 제도’를 도입해 소매약국에 박카스를 직접 유통시켰다.
이러한 유통전략은, 현재 박카스 루트세일이라는 동아제약만의 독특한 유통시스템의 기반이 됐다. 2003년 현재 박카스 루트카는 전국 2만개
약국 중 1만9,000개에 박카스를 공급해 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카스가 오랫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저렴한 가격’뿐 아니라 ‘우수한 제품력’에 기인한다.
발매당시 박카스는 자장면과 같은 가격인 40원이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 발매 당시 가격에서 별반 차이가 없는 400원대의
낮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또 박카스는 몸을 보호해 주는 타우린을 비롯해 각종 비타민과 생체활력 성분이 적절하게 배합된 황금처방 피로회복제로 효능을 인정받고 있다.
홍경희 기자 khhong04@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