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대주주가 있는 제2금융권에 최고경영자(CEO) 승계계획 수립을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4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 루비룸에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쟁점과 평가' 세미나를 개최하고 이같이 밝혔다.
이번 세미나는 제2의 KB금융지주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제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이하 모범규준)에 대한 전문가 진단을 통해 올바른 정책방향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세미나는 정부진단에 대한 평가와 비은행금융사로 적용확대의 적절성, 사외이사제도 변경의 유효성 등의 쟁점을 논의했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모범규준이 법적 효력이 없는 행정지도라고는 하지만 금융감독기관의 경직적인 관리방식대로라면 강한 효력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결국 모범규준이 보이지 않는 규제, 창구규제로 작용할 것을 우려했다.
발제자로 나선 민세진 동국대학교 교수는 모범규준에 명시된 CEO 승계계획 마련 요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다.
민 교수는 "은행·은행지주회사 지배구조 문제의 근본 원인은 지배주주가 없고 동일인 주식보유한도를 10%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대주주가 없는 은행·은행지주회사가 CEO 승계계획을 마련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지만, 대주주가 있는 제2금융권에까지 이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금융위원회 모범규준에 따르면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금융회사는 CEO 승계·후보군 관리업무를 이사회 상시업무에 포함하고 주기적으로 계획을 점검해야 한다. 또 해당 업무는 사외이사 중심으로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해 일임할 예정이다.
민 교수는 "사외이사가 임원후보의 적격성까지 판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범규준 적용 대상 범위에 관해 "규제차익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자산규모 2조원이상 금융사와 운용자산 20조원 이상인 자산운용사에게까지 해당규준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교수는 "섀도우뱅킹 사례와 같이 업권간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수준이 다르다는 이유로 규제차익을 해소 할 필요는 없다"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같지 않기 때문에 접근방향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외이사제도 변경에 대해서는 정부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는 금융회사 사외이사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미흡하고 전문성이 낮아 지배구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지만, 근본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비율을 확대시켜 온 정부정책에 있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인력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외이사 결격사유에 걸리지 않는 인물로 요구인원수를 충원하다보니 직업군이 편중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사의 직업군이 다양해진다면 한 직업군에 편중되는 문제는 완화될 수 있으나, 견제기능과 전문성이 강화될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에 나선 강원 세종대학교 교수는 "기간산업인 은행이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취약점을 보완하려는 정부의 고심이 모범규준에 반영됐지만, 기타 금융권역은 기간산업이 아니기에 궁극적인 목표는 주주가치 극대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주주가치 극대화는 결국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는 동력이 되므로, 이해관계자의 책임을 기초로 한 모범규준은 국내 비(非)은행금융권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승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CEO 승계업무를 담당하게 될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개설에 대해 "상법상 대표이사는 이사회에서 임원은 주주총회에서 선임되어야 한다"며 "후보 추천권이 사외이사 중심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한정되는 것은 주주를 위한 보다 나은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고 행정지도인 모범규준이 상법 규정에 우선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소유가 분산된 은행의 경우, 사외이사 중심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CEO 승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는 있지만, 대주주가 명확한 비은행 금융회사의 경우에는 내부에서도 최적의 선택이 가능하므로 해당 규준을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성봉 숭실대학교 교수는 모범규준의 효력에 대해 "가이드라인인 모범규준이 사실상의 강제성을 갖게 될 것"이라며 "모범규준을 이행하지 못하는 회사는 연차보고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유를 소명하라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규제"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해당 규준이 강제성을 갖게 될 경우 금융당국이 이를 집행하기 위한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아도 사실상 규제가 효력을 가지게 돼 부담을 덜어 주는 셈"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