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유통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업계는 상품권·선물 수요가 줄어들 것을 걱정한다. 음식점·술집은 소비 감소로 매출에 직격탄을 맞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다만 김영란법 실행을 위한 세칙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이 남아 있는데다, 1년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9월부터 시행되는 만큼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게 중론이다.
특히 부정청탁의 범위가 불명확하고 포괄적이어서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일면서 혼란스럽다. 각 업계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우선, 백화점의 경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상품권과 선물 판매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백화점 관계자는 "설·추석 등 명절 때 선물의 사용처를 파악할 수 없지만, 기업들이 내부 직원들 선물용이 아닌 제품을 구입할 때 조심스러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관 업무 및 수입업체, 바이어 등과의 접촉 관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B백화점 관계자는 "명절 때 한우·굴비 세트 등의 고가 선물이나 명품 업계에 영향이 미칠 것 같지만, 업계 전반적으로는 그 여파가 미미할 것 같다"며 "접대·선물 제공이 갈수록 음성화되면서 증거가 남는 고가 선물이나 상품권을 꺼려한다. 시스템적으로 선물의 의도를 파악할 순 없지만, 끝까지 추적하면 상품권을 어디에다 썼는지 알 수 있다. 김영란법 때문에 상품권 시장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기 보다는 소비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 같다"고 밝혔다.
대형마트의 경우 생필품 위주의 실속형 소비가 이뤄지는 곳인 만큼 별다른 여파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위스키 업체들은 김영란법 통과로 인해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될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위스키 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 국면에서 김영란 법 통과로 위스키 시장이 더욱 위축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설 명절 시장에서도 위스키 선물 비중이 4~5% 정도 밖에 안되지만 고가 위스키의 경우는 사실상 타격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몇 년 전부터 국세청에서 접대비 한도가 50만원이 넘어가면 모두 신고하도록 한 제도가 실시된 이후 영수증 쪼개기, 카드 나누기 등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결국 김영란 법을 피하기 위해 편법이나 새로운 방법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류업계 관계자는 "고급 술집의 경우 양주 1병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만큼 몇 번의 접대만으로도 100만원이 넘는다"면서 "법 시행 초기 시범케이스가 되지 않기 위해 서로 몸을 사리다 보면 고급 술집이나 음식점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은 좀 더 시장 상황을 지켜봐야한다는 곳도 있다. 외식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내년 9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유예 기간도 있고 시행령이 정해지지 않아 좀 더 지켜봐야할 것"이라면서 "당장 큰 타격이나 매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비심리 위축은 불가피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 사무총장)는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서 올바른 질서 확립과 부정부패 방지, 투명성 확보에 꼭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단기적으로 보면 소비심리를 위축시킬 것이고, 유통업체들도 이에 따라서 상품 구성에 변화를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가 다른 패턴으로 활성화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유통업계가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판매를 확대해 시장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국가적 아젠다를 갖고 있는 만큼 시장 상황에 더욱 능동적으로 대처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소비위축 내지는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유통업계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유통업계 전반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영란법 여파로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와의 갑을 관계를 이용해 뒷돈을 받거나 향응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 저촉을 받지 않기 위해 쪼개서 접대하거나 해를 넘겨서 접대하는 등 여러가지 편법이나 법망을 피해가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지만, 업계 전반적으로는 접대에 있어 조심하고 긴장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며 "김영란법이 있고 없고를 떠나 유통업계에서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한 동등한 문화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