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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웅으로 부상한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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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웅으로 부상한 ‘히딩크’


합리적인 히딩크만의 축구경영… 한국축구 세계 중심에 서다





“희동구를 아십니까?” 대한축구협회(KFA)에 적(籍)을 두고,
국민일동이 인정한 이방인 감독 거스 히딩크(55)의 우리말 표기다. 요즘 네티즌 사이에서는 히딩크를 귀화시키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자는 말도 있다. 문화재는 해외 밀반출이 안 된다. 히딩크를 해외 유명 구단이나 국가에서 몰래 채어 가버리는 것을 막자는
소박한 걱정이 묻어 있는 말이다. 정·재계의 부정부폐와 식물국회 소식에 눈과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 요즘, 강력한 ‘올려치기’ 골세레모니를
통해 한 줌 청량제 같은 시원함을 선사하는 히딩크. 그가 축구를 넘어서 한국사회에 던진 ‘희망’이라는 화두에 견주어볼 때 이들의 극성이
십분 이해가 간다.


세계 축구계의 ‘폭주 기관차’ 한국

한국에게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의 선물을 안기고, “아직도 목말라 있다”며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격침시켜 정말로 그의 말처럼 “세계를
놀라게” 한 히딩크. 과연 그가 얼마나 특별한 인물이기에 1년 반 사이에 우리의 ‘뻥 축구’를 세계 강호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일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프랑스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에메 자케는 한국팀의 경기를 보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6월 19일자 르몽드지(紙)
기고를 통해 “한국은 무서운 팀”이라며 “한국 선수들은 끝없이 움직이며 운동장의 전 공간을 완벽하게 활동한다.…이 팀은 어떤 허점도 보이지
않는 만큼 누구도 멈추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자케의 말대로 한국팀은 ‘폭주 기관차’이다. 기관차의 기관사는 선수들을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끊임없이 단련시켜 거칠 것이 없게 만들었다.
그는 석탄대신 투쟁심과 자신감이라는 연료를 사용했다.

대표팀의 악바리 이천수는 5월 21일 제주에서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이 끝난 직후 “막상 유럽선수들과 부닥쳤을 때 밀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몸이 내 단점이었지만 반칙을 해서라도 넘어서고 싶었다”며 여전히 투지에 불타고 있었다. ‘헛다리짚기’ 드리블의 명수 이영표도 이탈리아와
8강 진출 한 판을 앞두고 “내 드리블은 이탈리아에게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는 곧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내로라 하는 강호들을 무릎꿇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떠들어라, 난 ‘My Way’를 부르련다

“명예국민으로 인정한다”, “체육학 박사학위를 수여한다”, “히딩크 거리를 조성한다”는 등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히딩크지만 한때는 지독한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2000년 12월 18일 취임이래 5월 16일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이 치뤄지기 전까지 성적이 12승 8무 9패.
세계적인 명장, 한국축구를 살려줄 단 하나의 희망으로 영입한 히딩크였기에 실망이 너무 컸다. 게다가 2001년 5월 30일 프랑스와의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0대5로 패배. 같은 해 8월 15일 체코와의 평가전에서도 역시 0대5. 그의 한국 이름은 졸지에 오대영이 되었다. 언론은 그에게 속사포처럼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2002년 1월 북중미 골드컵에서 2무3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자 비난여론은 극에 달했다. 당시 4대 일간지에
히딩크 감독을 비난한 기사 횟수는 1월에만 1,000회가 넘었다.

히딩크는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나를 들뜨게 한다. 준비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어떠한
비판도 나는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 당신들이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비판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6월을 기다려 왔다. 지금 세계
유명 축구팀들이 우리를 비웃어도 반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모국인 네덜란드의 신문 ‘데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경질설까지 나돌 때 그를 엄호한 것은 선수들이었다. 이영표를 비롯한 젊은 선수들은 “우리는 분명 전진하고 있다”며 끝까지 지켜봐주기를 부탁했다.
히딩크를 신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학맥과 연고, 파벌 등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하게 선수를 선발하는 감독. 눈앞의 조그만 열매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매진한 감독에게 보내는 무한한 경의가 젊은 선수들의 말에는 배어 있다.


히딩크 신화를 가능케 한 히딩크의 ‘히든키’

“규율을 지키고 강조해 온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히딩크의 평소 신념이다. 그는 그것을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시켰다. 선수단이
전체적으로 움직일 때는 복장을 통일해야 하고, 식사시간은 전 멤버가 같이 시작해 같이 끝내야 했다. 단체 모임에서 휴대폰이 울려서도 안
됐다. ‘수험생을 위한 스파르타식 기숙사’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본만 지킨다면 나머지 시간은 별도의 통제나 지시없이 자율적
시간이 보장되었다. 이런 평소의 규율은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을 하나의 톱니바퀴로 변모시켰다.

월드컵 기간 동안 세계가 한국팀에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체력이다. 히딩크는 2002년 3월 체력담당관 데이먼드를 영입, 총 9단계의 체력강화
프로그램을 실시해 체력을 세계 최강의 수준으로 만들었다. 향상된 체력은 히딩크 본인도 놀랄 정도다. 그는 스페인전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은 한계를 모른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탈리아와의 숨막히는 117분. 히딩크가 던진 승부수는 수비수 3명을 빼고 공격수를 투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수비나 공격 모두 흔들리지
않았다. 이유는 전 선수들이 수비와 공격이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히딩크는 네덜란드식의 토탈사커를 강조하며, 공격과
수비의 뚜렷한 구분이 없는 스타일의 선수들을 중용했다. 선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포지션을 이해하고 소화해내야 했다.

나이도 명성도 필요 없었다. “단지 실력으로 평가할 뿐”이었다. 이는 노장들에게는 채찍이 되었고, 신인들에게는 당근이 되었다. 히딩크는
한동안 홍명보를 대표팀에서 제외시키기도 했다. 체력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는 또 경기장안에서의 평등을 강조했다. 절대 ‘선배’니 ‘형’이니
불러서는 용납하지 않았다. 선배가 후배에게 지시하는 일방적 의사전달방식에서는 반쪽 팀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데트마르 크라머(1990∼92)와 아나톨리 비쇼베츠(1994∼96)는 한국에서 실패한 외국인 감독으로 기억된다. 지도방식 등에서 한국인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야기했기 때문에 한 마디로 ‘선장 따로 사공 따로 노는 배’였다. 히딩크는 달랐다. 상당한 쇼맨십을 보여주며 친근하게
다가섰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다음에는 철저히 그 위에 군림했다. 모든 정보를 독점해 대표팀과 관련된 어떤 사소한 사항도 히딩크가 말하기
전에는 선수들이건 언론이건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철저하게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길들였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에 이유있는 ‘독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노력하는 장수였다. 히딩크는 매일 새벽 6시 기상과 동시에, 오전훈련 종료 후, 그리고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세 차례에 걸쳐
월드컵 상대국 비디오를 분석했다. 저녁식사 후에 선수들이 쉴 때도 코치들과 그날의 훈련 내용을 점검하고, 이튿날 훈련계획을 짰다. 우리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보며 하나하나 장단점을 분석해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아주 축구를 빼고 나면 ‘시체’나 다름없었다.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투영된 한국팀은 이제 세계축구의 변방이 아니다. 어엿이 그 중심에 우뚝섰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는 히딩크의 호언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Thank you Hiddink!!” 월드컵을 끝까지 대한민국의
축제로 만들어 준 히딩크에게 온 국민이 감사의 마음을 보내고 있다.










불붙은 히딩크 신드롬


출판계는 이미 베스트셀러, 재계도 히딩크 벤치마킹




“히딩크, 히딩크” 삼척동자도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도 그의 이름이 술술 나온다. 한달 새에 국민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이 된 히딩크.
출판계에서는 그와 관련된 서적들이 이미 베스트셀러에 진입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제계에서도 그의 성공신화를 연구하여 벤치마킹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원은 6월10일 ‘히딩크 리더십의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히딩크 리더십의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기업경영에의 시사점 몇 가지를 도출했다.

삼성경제연구원은 편협한 애사심과 애국주의를 바탕으로 한 순혈주의를 버리고 기업경계 및 국경을 넘어 널리 인재를 찾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스위스 회사인 네슬레의 최고 경영진 9명 중에 스위스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좋은 본보기다.

또 슬럼프에 빠졌던 한국축구가 리더를 포함한 모든 것을 원점에서 점검했듯, 기업도 큰 틀의 구조조정을 통해 활로를 모색할 것을
권한다.

이외에도 현재 역량보다 높은 목표치를 설정해 임직원들의 잠재역량이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발휘되도록 유도할 것,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자율적 리더십을 확립할 것 등이 연구원이 내놓은 결론이다.



히딩크는 시인?


국민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히딩크가 남긴 명언들




“현재 대표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50%다. 앞으로 하루에 1%씩 향상시켜 월드컵 개막과 함께 100%를 만들겠다.” 월드컵
개막을 50일 앞둔 4월9일, 히딩크가 이말을 했을 때 회견장내에 있던 기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진실이었다. 사람들이
그의 시적인 말들을 단지 귀가 아닌 가슴으로 경청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한국축구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변방의 소속팀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속한 나라이며 내가 이끌고 있는 우리의 나라이다.”
(올 초 비난여론이 들끓을 무렵 모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영웅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선수들에게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고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폴란드에게 1승을 거둔 후 자신을 영웅시하는 한국의 분위기에 대해)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포르투갈에 승리해 16강을 확정지은 후)

“우리는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갈 것이다. 선수들이 만약 잊고 있다면 나는 우리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생각하도록 주문하겠다.”
(우승전망까지 나오고 있다는데 대해)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











세계축구 심장부에 꼽힌 태극기


한민족과 히딩크가 꽃피워낸 압박축구



 






제축구는 큰 키와 체력을 바탕으로한 유럽의 파워축구와 현란한 드리블과 절묘한 개인기를 내세운 남미의 기술축구가 양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쇠같은 체력과 바람같은 스피드로 무장한 태극전사들의 압박에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10위 이내의 국가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한국의 압박축구가 기술축구와 파워축구로 양분된 세계축구에 지각변동을 예고한 것이다. 이는 한국 뿐만 아니라 기술도 떨어지고 파워도 부족했던
제 3세계 축구인들에게 강한 체력과 빠른 스피드로 무장할 경우 전통적인 강호들을 깰 수 있다는 복음이었다.


월드컵만 보고 뛰었다

‘황소같은 체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한 압박축구’. 축구변방인 한국축구가 거스 히딩크에게서 18개월 동안 채찍질 당하며 변모했다. 공격수나
수비수할 것 없이 상대를 압박하며 경기의 주도권을 잃지 않게 되었다.

공격진영 오른쪽에서 볼을 빼앗기면 측면공격수와 오른쪽 미드필더, 중앙미드필더 등 3명이 모여들어 상대를 압박하고, 중앙으로 연결됐을 경우에는
다시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측면공격수 1명이 그물망처럼 조여 들어간다. 아크 정면을 상대 플레이메이커가 치고 들어오면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 여기에다 측면 미드필더가 가세해 상대 공격의 템포를 끊어 놓는다. 압박은 일정지역이나 특정 포지션에 상관없이
최전방인 상대문전에서부터 우리편 골대까지 그라운드 전역에서 이루어졌다.

대표팀이 이같은 원할한 움직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히딩크 감독 부임초기만 해도 ‘공격수도 수비를 수비수도 공격을’이라는
명제에 대해 공격수들은 전후방으로 쉴사이 없이 뛰어다니기 바빴고, 공간을 유기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수비수들은 스루패스 한번에 무너져 내렸다.
프랑스와 체코에 ‘5-0’ 수모를 겪었고, 언론과 팬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히딩크와 대표팀은 망설이지도 좌절하지도 않았다.


체력과 스피드가 뛰어난 박지성과 송종국 등 젊은 피를 수혈했고, 무명이라고 할 수 있는 최진철과 김남일을 기용해 팀 수비의 중심축으로 삼는
등 과감한 기용과 냉철한 결단으로 팀을 새롭게 변모시켰다. 또한, 압박축구의 기본인 체력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체력전담 트레이너를 별도로
두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월드컵 본선 개막을 1개월을 남겨두고, 태극전사들의 체력은 유럽의 어느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좋아졌다.


세트플레이와 개인기 갖춰야

세계최고의 수준으로 체력을 갖추게 된 한국축구는 특유의 스피드를 발휘하며, 히딩크의 토탈사커와 압박축구를 소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실전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월드컵 전 스코틀랜드를 4-0으로 누르더니, 잉글랜드와 1-1로 비겼고, 전 대회 우승팀인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등 월드컵 파란을 예고했다. 그리고 월드컵에서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강호를 차례로 제압하며 4강신화를 창조했다.


특히, ‘압박’을 습득한 대표팀은 그동안 한국축구가 안고 있던 고질적인 병들인 수비불안, 골결정력 부재, 종료 10전 실점, 유럽징크스
등을 일거에 날려 버렸다.

하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16강 진출국 중 가장 많은 경기당 7개 이상의 코너킥을 얻었지만, 득점에 연결시키지 못했다.
즉 세트플레이의 세밀함을 갖추지 못했다. 또한, 현재의 조직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개인기를 좀 더 갈고 닦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










응원문화 우승 ‘12번째 태극전사’


뿔피리부터 '대∼한민국'까지, 축구 응원문화 개척한 ‘붉은악마’








6월 25일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4강전. 결과는 아쉬운 패배였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모인 6만여명의 응원단들은 독일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경기장 밖의 붉은 군중들도 4강이라는 결과를 자축하며 쓰레기를 줍는 등 성숙한 관전문화를 보여주었다. 응원열기가 어느 나라보다
뜨거웠던 만큼 혹시 난동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했던 외신들은 “관전문화는 우승”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선전 보다 더 경이로운 반응을 끌어낸 것은 한국의 응원문화였다. 붉은 옷을 입은 수많은 인파가 열광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응원하는 모습에 우리도 놀랐고 세계도 놀랐다. “이런 응원 인파는 처음이다. 아름답다” “축제를 즐길 줄 아는 민족이다” “한국팀의
원동력은 붉은 군중들로부터 나온다” 등의 찬사들이 쏟아졌다.

2002한일월드컵에 가장 주목받는 이슈로 떠오른 한국의 응원문화. 그 중심에는 한국축구 응원 집단의 대명사가 된 붉은악마가 있다. 붉은악마의
역사는 곧 한국 응원문화의 역사다.


한국축구 응원의 역사 이끌어

붉은악마는 93년 결성된 pc통신 하이텔의 작은 축구동호회에서 태동되었다. 이 동호회에서 95년 프로팀 유공의 서포팅을 시작하면서 응원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96년 수원 삼성이 창단되면서 수원 삼성의 서포터들이 응원열기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때부터 ‘단관’(단체관람)의 개념이 생겼고 능동적인 응원문화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한국의 축구 응원문화는 기본적인 응원도구도
없을 만큼 미비한 단계였다. 붉은악마 미디어 팀장 신동민씨는 “개인적으로 응원도구를 들고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단관’이라는
강한 목표 의식 아래 90분 동안 작심하고 응원 도구를 사용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유니폼도 구하기 힘들어 비슷한 색깔을 입는 정도였다.
프로축구팀 관계자들도 유니폼을 제공하지 못해, 회사 근무를 마친 후 양복 차림으로 온 사람들도 많았다.

응원형태도 구태의연했다. 현재의 프로야구와 유사한 모양의 치어리더들과 초대형 앰프가 전부였다. 신씨는 “관중석에서는 구단을 소유한 기업의
회사원들이 반강제로 동원돼 한 손에 소주나 맥주를 들고 축구보다는 치어리더의 율동을 보며 즐거워했다”고 회상한다. 앰프에서는 ‘남행열차’나
‘아파트’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단관’에 참여한 서포터들은 구장풍경을 조금씩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동대문운동장 야구장 상점에서 뿔피리를 구입해 응원도구로 사용한 것이
시초였다. 스폰서와의 접촉으로 유니폼도 구할 수 있었다. 치어리더들은 점차 사라졌고, ‘아리랑 목동’ 같은 진부한 응원가가 구호로 대치되기
시작했다. 신동민씨는 “구호는 작은 수의 인원이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83년 청소년대회 영광을 되살리자”

본격적인 시작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앞둔 97년 초였다. 게시판을 통해 조직적인 응원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일어났고, 프로팀
서포터들은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 클럽(Great Hankuk Supporters Club)’이라는 임시 명칭 아래 모였다. 1차 예선전부터
조직적 응원을 시작한 이들은 게시판을 통해 정식 명칭을 공모했다.

당시에 올라왔던 이름들은 ‘레드 일레븐’ ‘그레이트 한국’ ‘레드 레볼루션’ ‘크림슨 타이드’ ‘레드 타이거’ ‘꽹가리 부대’ ‘도깨비’
‘동방 불패’ ‘고추장 패거리’ 등 다양했다. 고심 끝에 명칭은 ‘붉은악마(레드데블스)’로 결정된다. 붉은악마 3대 회장을 역임했던 홍상혁씨는
“붉은 이미지가 들어가는 것이 대세였고, 많은 사람들이 83년 멕시코 청소년대회 이후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붉은 악마라는 이름에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고 선택 이유를 말했다.

청소년대회에서 4강에 진출한 한국팀에게 세계 언론은 ‘붉은악령(퓨어리어스)’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정작 한국엔 ‘붉은악마’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토론 끝에 한국축구가 그때처럼 세계 중심에 서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붉은악마’로 명칭을 확정지었다. 97년 8월 한국 대
브라질전에서 처음으로 붉은 색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서포팅을 시작했고, 한중 정기전에서 대외적으로는 최초로 ‘붉은악마’라는 이름을 사용한
현수막을 걸었다.

이후 붉은악마는 국가대표팀의 응원 일선에 나서게 되었으며, 수동적인 이미지의 ‘응원단’이라는 용어를 거부하고 ‘서포터’라고 지칭하며 적극적이고
참여적인 응원문화를 이끌어갔다. 월드컵으로 붉은악마는 12만명의 거대조직이 되었고, 유니폼을 구입 못한 회원들을 위해 제작한 캠페인 티셔츠
‘비 더 레즈’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대∼한민국’ 구호나 ‘오~필승 코리아’ 같은 응원가는 세계인이 따라하는 정도로 확산되었다.
뿔피리로 시작된 응원도구는 태극기와 카드섹션으로 화려해졌다.


월드컵, 기회이자 위기

3대 회장 홍씨는 “붉은 악마가 추구하는 방식은 ‘축구를 축구답게 즐기는’ 방법, 즉, 선수들과의 교감을 통해 선수들은 경기력을 극대화
시키고 관람하는 팬들도 선수들의 흥분을 느끼는 것이다”며, “이러한 가장 원초적인 응원 방식은 기존의 관람문화를 제치고 축구 응원의 표준으로
자리잡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붉은악마는 한국의 축구응원문화를 한단계 끌어올리고자 했던 염원은 실현했다.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을 안게 되었다. 규모가 커질수록 순수성을 지키기가 어려워진 점이다. 월드컵은 붉은악마에게 기회이자 위기이다.

붉은악마측은 현재 응원문화가 향상된 만큼, 발전적인 해체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분명히 지켜져야 할 것은, 붉은악마의 본질은 자생적이고
순수한 축구사랑에 있다는 것이다. 신인철 회장은 “매스컴의 과대 홍보라는 포장을 벗겨버린다면 우리는 여전히 작고 보잘것없는 모임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보다 축구를 좋아하고 우리의 모임을 사랑한다.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애정이 넘치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투박스러움 속에 오는
담백함이 넘쳐난다”며 붉은악마의 정체성을 정리했다.




정인규 기자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정몽준


정風 발판 대선출마설 모락모락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에 1%씩만 가능성을 올려도, 대선
다음날 일간지 1면을 장식 할 문구, ‘예상했던 대로 정몽준 후보 당선’. 꿈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용가리).

“하늘이 정몽준 대통령을 허락하는군요. 한국 대 폴란드전 2 : 0 으로 압승하듯이...”(지지자)

대한축구협회 회장인 정몽준 의원(무소속) 홈페이지에 네티즌들이 정 의원의 대선출마를 지지하는 글을 대거 올리고 있다. 4강 신화의 밑거름
역할을 했던 그의 인기가 탄력을 받으면서 월드컵 이후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온 국민이 하나된 2002 한일월드컵대회가 끝난 현재, 그가 앞으로 ‘더 큰 꿈’을 향해 발을 내디딜 것인가를 놓고 정치권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다.


4강 신화, 월드컵 대통령 칭호

대한축구협회 회장,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4선 국회의원인 정몽준(무소속) 의원에게 월드컵과 관련해 붙는 꼬리표들은 이번 월드컵대회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실감케 한다.

지난 9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정 의원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월드컵 유치를 위해 노력했고, 9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2002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된 이후 빈틈없는 월드컵 준비를 위해 쉴새 없이 달렸다.

하지만 그가 수년간 월드컵대회 준비로 가슴 졸여야 했던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86년 FIFA 맥시코월드컵 이후 연속5회 본선출전 기록에도
불구하고 16강은 고사하고 1승도 거둬보지 못한 대표팀의 부진한 성적, 한국경제가 IMF 체제에 편입되면서 경기장을 건설할 자금이 부족해
동분서주해야했던 일, 세계 축구강국과의 평가전에서 계속되는 최하위 성적 등은 그를 짓눌렀다.

더욱이 지난해 대표팀이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전과 체코와의 친선경기에서 0대5라는 큰 점수차로 패하자, 히딩크 감독과 그를 영입한 정 의원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성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히딩크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여줬고, 성공적인 월드컵을 향한 신념도 버리지
않았다.

결국 히딩크에 대한 그의 믿음과 지원은 한국이 아시아 첫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가능케 했다. 또 월드컵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국민화합으로 승화하는데도 일조했다. 그는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로 정몽준이란 이름 앞에 ‘월드컵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고, 정치권에서
점차 강도가 세지는 ‘정 풍(風)’의 주인공이 됐다.


대권 이회창-노무현-정몽준 순

정 의원은 한국이 월드컵 16강, 8강 진출에 이어 4강 기적을 이뤄내자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이어 제3의 인물로 정치적
위상이 급상승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으며, 이회창, 노무현 후보와의 대선 후보 3자대결에서도 박근혜 후보와의
3자대결보다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본지가 지난달 20일부터 나흘간 국제여론조사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같은 인기상승을 감지할 수 있다.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3자대결에서 정 의원은 이회창(46.5%), 노무현(29.4%)에 이어 22.8%의 지지를 얻어 월드컵 이후 치솟고 있는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반면 박근혜 의원은 이회창(50.2%), 노무현(38.6%) 후보와의 3자대결에서 10.9%를 얻는데 그쳤다.

정치권에서도 ‘정풍’의 위력에 긴장하는 눈치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새로운 대선 후보로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정몽준 의원을 영입할
것인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8·8 재보선을 지방선거에 이어 또다시 실패하게 되면 새로운 대안으로 정 의원을 영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밖에
신당 창당설, 이인제-박근혜-정몽준-김종필 4자연대설 등의 시나리오가 흘러나온다.

당사자인 정 의원측은 아직까지 어떤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정 의원측 관계자는 “월드컵이 끝나는 순간부터 (대선 출마 등에 대해) 진지한 검토를 해보겠다는 말 뿐 더 이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 의원 진영은 최근 정책 기능을 대폭 보강하고 있어 사실상 세 확산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5월 20일부터는 정치,
경제, 농업, 통일 등 전분야에 걸쳐 ‘정책 보좌 인턴’을 모집하고 있으며, 매월 1회 발행하던 후원회원 소식지를 월 2회로 늘리고 있는
것도 결국 회원관리의 필요성이 절실해졌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관측이다.

월드컵 이후 거세게 불고 있는 ‘정풍’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파괴력을 지닌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정 의원 인기 수직상승 포스닥서 노 후보 이어 2위


정몽준 의원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정치인들의 인기를 주가처럼 매기는 인터넷 사이트 (주)포스닥(www.posdaq.co.kr 대표 신철호)에서 정 의원은 연일
상종가를 치며 노무현 후보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6월 26일 현재 정 의원의 주가는 15만5000원.

포스닥 관계자에 따르면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오르기 시작한 5월 초순부터 정 의원이 김근태 의원을 누르고 계속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월드컵 개막과 함께 정 의원 주가가 2배 가량 폭등했고, 이후 줄곧 상승세를 유지했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직후인 지난 6월 22일에는 최고가인 21만9,000원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주식 거래량도 482주(거래액
기준 3,304만원)로 1위인 노무현 후보(60주, 2,162만원)나 3위 이회창 후보(204주, 2,141만원)를 압도했다.


포스닥 관계자는 “월드컵 결승이 좌절되고부터 정 의원 주가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며 “월드컵 거품이 주가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6·13 지방선거 이후 주가가 급격히 상승, 노 후보, 정 의원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노 후보 주가는 30만원대, 이후보는 9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정수영 기자 cutejsy@sisa-news.com









한국경제 “고맙다 월드컵”


4강 신화 경제효과 25조원



2002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4강에 진출함에 따라 미치는 경제효과가 막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가신인도, 기업이미지, 증시부양효과 등 한국경제에 엄청난 상승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시됐다.

한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거둔 경제적 수입은 ▲국민 소비진작 효과 3조7600억원 ▲브랜드 가치증대 효과 7조7000억원 등으로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11조4600억원 정도인 것으로 추산됐다.


국가브랜드 상승 및 소비진작만 11조원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민들은 한국의 16강 진출 성공이후부터 한국전이 있는 매경기 당일이나 다음날 1인당 평균 하루 소비액을 추가로
지출, 소비상승 효과를 냈다.

지난해 국민 총 소비액이 약 350조원, 국민 1일 소비액 9700억원, 1인당 하루 평균 2만원을 소비한 것으로 가정할 때 16강 이후
벌어진 4게임의 소비진작 효과는 9400억원(1인 2만원×4700만명×4회)으로 3조7600억원 가량의 금액이 산출된다.

한국팀 경기가 전세계 방송에 중계돼 얻는 국가 브랜드 상승 효과는, CNN, CBS 등 주요 미국의 방송국의 광고 단가인 분당 900만
달러(110억원), 하프타임까지 합쳐 경기 시간 100분의 한게임에 1조1000억원(100분×110억원)의 경제효과가 있다. 당초 16강을
목표로 했던 한국팀은 월드컵 종료까지 경기를 모두 뛰게 돼 7조7000억원의 국가브랜드 상승효과가 나온다.


기업인지도 상승효과 14조원

한국이 월드컵 4강 신화를 거둠에 따라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의 시각이 호전돼 기업환경이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국내 제품에 대한 수출 경쟁력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한국 전반에 대한 평판이 좋아져 국가 브랜드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기업브랜드도 동반 상승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월드컵에서 4강 진출까지 성공함에 따라 월드컵 공식 참여업체나 후원업체의 브랜드 인지도는 3%, 기타 100대 기업의 인지도는 1% 정도
상승했다. 이를 금액으로 산정하면 약 120억 달러 (약 14조7600억)의 경제적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기업인지도를 1% 올리는 데 대개 1억 달러의 마케팅 비용이 든다”면서 “국내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100대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를 1% 증대시키는 데 100억달러 소요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업브랜드 가치 상승효과의 산출은 자의적인 부분이 많이 있어 16강에서 4강까지 진출에 성공했다고 해서 산출액이 증가하지는
않으며, 대략 14조원 정도의 경제이익이 산출된다”고 덧붙였다.


골드만삭스,
외국인 투자 급증 전망


국내 경제연구소뿐만 아니라 해외의 금융기관들도 한국의 월드컵성공이 경제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달 24일 세계적인 투자회사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월드컵 성공은 소비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대외 이미지 개선에 기여해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골드만삭스의 경제분석팀을 이끌고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닐은 “네덜란드 감독을 영입해 성공에 발판을 마련하는 등 한국인들이 월드컵에 임하는
태도가 해외투자자들에게 강한 개방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으며 6월 현재 골드만 삭스의 자체 조사 결과, 실제로 이같은 투자자들의 변화가
한국 투자시장의 자금 유입으로 이어지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닐은 또 “한국은 일본에 비해 월드컵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며 “한국경제는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성공적인 경제
개혁으로 다시 고속성장 궤도에 오른 반면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일본 경제정책은 사실상 실패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FIFA의 국가별 순위를 놓고 보면 2002년 월드컵은 이변의 연속일 수 있으나, 이것을 경제적인 맥락에서 판단 할 경우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오닐은 “한국의 4강 진출은 다른 무엇보다 한국 증시가 가장 정확하게 예측했던 바”라며 “월드컵에서의 이변은 한국을 위시한 이머징
마켓의 장기적인 성공을 알리는 신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세계 축구의 판도와 세계 경제의 관계 규명을 목적으로 하는 ‘월드컵과 경제(The World Cup and Economics)’
보고서를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이어 두번째로 발표했다.


정부,
포스트월드컵 대비


정부는 하반기 중 ‘국가 이미지 제고 위원회’를 출범, 월드컵의 성공을 계기로 높아진 한국 위상을 알리는 사업을 전개하는 한편 민·관 합동으로
한국경제설명회를 추진키로 했다.

또 높아진 국가 이미지를 계기로 ‘코리아 브랜드’ 확산을 통해 고가 수출전략을 펼치고 IT 강국의 이미지를 활용해 IT 기업 및 제품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경제장관간담회를 개최하고 이같은 내용의 ‘포스트월드컵 대책’을 마련,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월드컵을 통해 ▲자신감 확보 ▲수출·투자 촉진 및 기업 이미지 상승 ▲ IT 강국 이미지 제고 등의 큰 효과를 얻어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우선 한국경제와 기업의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이달 3일 영국 런던에서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주관으로 민·관 합동의 '한국경제설명회'를
추진키로 했다. 올해 하반기 중에는 은행 민영화 등을 위한 금융부문 투자설명회(IR)을 적극 추진하고 대규모 ‘비즈니스 사절단’을 유럽과
미주아시아 등에 파견키로 했다.

또 한·중·일 프로축구 리그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월드컵 경기장 사후 활용을 위해 프로축구단의 연고지와 월드컵 개최도시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월드컵을 계기로 구축된 관광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관광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과 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안정만 기자 jman@sisa-news.com

김경수 기자 earlybirds@sisa-news.com









환희와 눈물의 드라마


2002 한ㆍ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한 것은 환희와 눈물의 드라마였다. 4천 7백만이 하나돼 일궈낸 승리의
순간을 다시금 음미해 보았다.


48년의
한(恨)이 풀리다- 폴란드전 2대0


경기를 앞둔 선수나 지켜보는 국민이나 모두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과 흥분으로 손에 땀을 쥐었다. 부담감 때문일까?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폴란드에게
몇 차례 결정적인 찬스를 허용했다. 그러나 역시 홍명보. 최종 수비수인 그가 폴란드 선수들을 휘저으며 벼락같은 중거리슛을 날렸다. 슛을
날리고 돌아오는 그의 눈동자엔 ‘자신감을 가지라는 질타’와 ‘할 수 있다는 의지’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투지가 선수들에게 전이된 것일까?
이때부터 대표팀은 서서히 제 페이스를 찾아갔다. 전반 26분, 폴란드 진영 왼쪽에서 이을용이 센터링한 공은 골지역 왼쪽에 위치한 황선홍의
왼발에 제대로 걸렸다. 골인! 한반도 전체가 들썩했다.

자신감이 붙은 선수들은 폴란드를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고, 후반 8분 유상철이 수비수 2명을 제치고 날린 대포알 같은 오른발 슛이 골키퍼
두덱의 손을 맞고 골문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전국은 붉은 물결을 이뤘고, 함성은 천공을 갈랐다. 신화의 서전은 이렇게 열렸다.


 






16강, 꿈이 현실로- 포르투갈전

예선
마지막 경기, 이기지 못하면 다시 ‘경우의 수’를 따져야할 암울한 상황에 놓이게 돼, 한국이나 포르투갈 모두 배수의 진을 치고 맞붙는 한판.
이런 까닭에 한민족을 제외한 전지구인은 모두 포르투갈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16강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자 선수들 역시 국민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다. 기운찬 움직임과 바람같은 스피드로 한국 선수들은 포르투갈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이 경기내내 주도권을 쥐었지만 골을 뽑지는 못했다. 후반 25분 박지성이 환상적인 볼트래핑을 선보이며 날린 왼발 슛은
포르투갈 골네트에 작렬했고, 우승후보 포르투갈은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전국 방방곡곡은 ‘대~한민국’이 울려 퍼졌다.






기적이
아니라 투혼이다- 이탈리아 2대1


경기전 이탈리아의 빗장은 공격축구로 무장한 한국에 의해 단 번에 열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회심의 칼을 갈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이탈리아는 거친 들개로 돌변했다. 한국 선수들의 빠른 발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는 거친 태클과 육탄공세를 퍼부었다. 그리고 전반
18분, 비에리의 헤딩골이 터지자 한반도 전역이 ‘철렁’ 주저앉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리오, 기적의 드라마가 준비되고 있음을. 후반 들어서자 태극전사들의 전의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종료를 앞 둔 이탈리아는
수비를 대폭 강화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공격의지가 없는 이탈리아에게 공격수 5명 기용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뽑아든
것이다.

드디어 각본이 없는 드라마가 펼쳐졌다. 후반 43분, 문전 혼전중 설기현의 왼발슛이 골문을 갈랐다. 연장 종료 3분 전, 안정환의 벼락같은
헤딩슛에 이탈리아 빗장은 풍비박산이 났다. 선수도 울었고, 국민도 울었다. 한반도 전역이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세상은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투혼’이라고 명명했다.


 


 


찬란한
신화-스페인전 5대3 승부차기승


지쳐있는 한국에게 스페인 무적함대는 넘기 힘든 벽처럼 여겨졌다. 예상대로 체력을 바탕으로 그라운드를 질주했던 한국의 압박축구는 찾아 볼
수 없었고, 스페인의 맹공을 막아내기 급급했다.

그러나 후반에 들어서면서 선수들은 뼈속 아니 DNA에 남아있는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실점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한국의
공격수들도 위협적인 슛팅을 날렸다. 경기의 승패는 다시 미궁으로 빠졌다. 연장의 혈투를 마친 양팀은 승부차기로 4강 진출의 운명을 갈라야했다.


아일랜드에게 3대2 승부차기 승을 거둔 스페인과 앞 선 경기에서 두 번의 패널티킥을 모두 실패한 한국. 운명의 추는 스페인으로 기운 듯
했다. 그러나 이운재는 4번째 키커로 나선 호아킨의 슛을 막아냈고,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홍명보는 공을 정확히 골문 안으로 쏴 올렸다. 한반도는
요동쳤고, 아시아는 열광했으며, 세계는 경악했다. 우리는 ‘필승(必勝) 코리아’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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