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를 거부하는 멜로드라마
사랑의 본질 탐색하는 이창동의 ‘오아시스’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소시민의 삶(초록물고기)이나 개인사에 묻어
있는 현대사의 비극(박하사탕) 등 386세대의 정서를 주로 담아왔던 이창동. 역사와 인생의 어둠을 응시하던 그가 세 번째 작품으로 사랑이야기를
내놓았다.
“사랑이야기는 못할 것”이라는 후배의 말에 반발하듯 시나리오를 썼다는 후문이지만, 멜로드라마는 확실히 의외다. 뚜껑을 열어보면 장르 규정에
동의하지 않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오아시스’는 멜로를 거부하는 멜로드라마이며, 판타지를 거부하는 판타지다. 이 같은 역설이 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영화 자체가 혼란한 역설로 가득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창동은 파격이나 난해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데올로기도 상식적이고 주제 또한
명확하게 드러내는 편이다. 이번 작품은 특히 대중적이다.
로맨틱한 요소 의도적 배제
어째서 멜로를 거부하는 멜로인가? 감독은 의도적으로 낭만적인 요소를 피한다. 매력적인 남녀도, 멋진 배경이나 가슴 떨리는 대사도, 달콤한
음악도 없다. 로맨스의 주인공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회부적응자(홍종두역-설경구)와 중증 뇌성마비장애인(한공주역-문소리)이다. 잘생긴 건달이나
예쁜 벙어리도 아니고 어딘가 모자란 듯한 전과자와 언어 구사도 어려운 장애인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영화적 과장을 배제하는 것은 이창동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격투씬에서 음향 효과를 없애거나, 밤씬에서 조명을 빼는 등 고집스럽게 사실적인
영상을 추구했던 감독은 그 연장선상에서 ‘못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포장된 인물은 관객이 쉽게 일체감을 느끼겠지만, 진정한 이해와는
멀어진다는 판단이다.
영화는 기존의 멜로 방법론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관객의 동화를 얻는데 성공한다. ‘오아시스’가 멜로드라마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씌이는 것처럼, 인물의 내면과 일상을 주시하다보면 그들의 순수함에 쉽게 젖어든다. 오히려 이창동의 어떤 작품보다 캐릭터가
사랑스럽다. 자연스럽게 관객은 종두와 공주의 아기자기한 연애담에 웃고, 가슴 뭉클한 사랑에 울게 된다.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판타지는 연애의 황홀함을 극대화하거나 관객을 위안하기 보다 현실의 누추함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랑이라는 그들의
판타지는 객관적 세계에서 쉽게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은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 서서 사랑의 본질을 탐색한다. 사랑은 외로운 인간들이
일상의 사막에서 찾아 헤매는 오아시스 같은 환상인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자행되는 ‘다수’의 폭력
판타지를 공유하는 두 남녀를 둘러싼 외부의 시선은 차갑다. 종두의 가족은 공주가 ‘여자친구’라는 말을 믿지 않고 종두의 의도를 의심한다.
식당에서는 출입을 거절당하고, 그들도 다른 연인들과 다름없이 연애감정을 교류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모든 타인은 표준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주인공에게는 사랑의 ‘적’이다. 돋보이는 점은 주변인물들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미안한 말인데 삼촌이 없을 때는 살 것 같았어요”라고 말하는 종두의 형수나, “내 인생 방해하지 마”라는 동생이나, “우리 아가씨 불쌍해서
어떡해”를 연발하는 공주의 시누이는 특별히 악인이라고 할 수 없다. 평범한 보통 인간형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종두와 공주를 걱정하고 감싸지만,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이라는 뿌리깊은 편견에 갇혀 있다. 이것은 곧 두 남녀의 주관적 세계를
파괴하는 객관적 세계의 폭력이 된다. 감독은 소수를 향한 다수의 폭력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교묘하고 은근한 형태로 자행되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사회적 편견, 장애인, 구원의 사랑 등 진부한 소재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도식성을 최대한 피한데 있다. 설경구와 문소리의
연기는 감독의 통찰력을 구체화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 종두와 공주는 영화라는 판타지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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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