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전의 도장과 명찰 주인을 찾습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원회)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관련된 도장과 명찰의 주인을 찾아 나섰다.
도장과 명찰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진행한 2007년 유해발굴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朴奉羽(박봉우)'란 이름이 새겨진 도장은 '경산 코발트 광산', '총무부 남용○'이 새겨진 명찰은 <대전 산내 골령골>지역에서 발굴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유해발굴 중간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유해발굴 현장조사 결과와 사건 관련 증언, 발굴된 유해의 감식 현황 등을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유해발굴 대상지 선정 후, 용역을 의뢰하여 유해발굴 조사단을 구성하였으며, 지난 6월 27일부터 전남 구례 봉성산 개토제를 시작으로 유해발굴을 본격화했다.
4개 지역의 유해발굴 작업은 전남 구례 봉성산은 한양대 박물관, 경산 코발트 광산은 경남대 박물관, 대전 산내 골령골은 충남대 박물관, 충북 청원 분터골은 충북대 박물관이 각각 진행했다.
또한 발굴된 유해는 현재 충북대 유해감식센터에서 감식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사건과 증인들의 구술 작업 등은 인문사회팀에서 진행하고 있다. 민간인 집단학살 증거 … M1, 칼빈 총알·탄피 등 유품 발견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 조사단은 4개월여에 걸친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과 관련된 유해 400여구와 1,085점의 유품을 발굴했다.
조사단이 발굴한 유품은 집단학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M1·칼빈 소총 탄알과 탄피, 수갑, 삐삐선 등이었으며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신발과 단추 등도 발굴했다.
또한 유해발굴 조사단은 4개 지역 발굴지의 사건 목격자, 유족, 참고인들에 대한 구술조사를 실시하여, 모두 40여명 이상의 구술증언을 기록했다. 구례 봉성산, 여순사건 관련 민간인 추정 유해 12구와 탄두 발견
전남 구례 봉성산 유해발굴은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희생자로 보이는 유해 12구를 발굴했고, 두개골 주변에서 칼빈 및 M1소총 탄두 20여 개를 수습했다.
이 같은 결과는 1948년 11월 19일 경 구례경찰서에서 민간인 70여 명이 총살된 뒤 봉성산 지역에 암매장되었다는 각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최초의 물질적 증거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건당시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점 등으로 인해 정확한 집단희생 지점을 찾는데 애로를 겪으며 당초 예상했던 70여 구의 유해를 모두 발굴하지는 못했다. 대전 산내 골령골, 34구 유해 중첩 및 무릎 꿇린 상태로 발굴
대전 산내 골령골 일대 지역에서는 4개 지구를 발굴한 결과, 제3, 5지구에서 34구의 유해와 칼빈, 45구경, M1소총 탄피 등 모두 400여 점의 유품을 발굴했다.
특히 대전 산내 골령골 유해 발굴 현장에서는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총무부 남용○'라고 적혀있는 명찰이 발굴됐으며, 제3지구에서는 3평 정도의 넓이에서 29구의 유해가 무릎이 꿇린 상태로 발굴되었다. 이중 한 유해는 두 손이 수갑에 결박된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청원 분터골, 110여구 유해 30m 걸쳐 6겹 중첩돼 발굴
충북 청원 분터골 유해발굴은 2개 지역에서 발굴이 진행되었으나, 제1지구에서 예상보다 많은 110여 구의 유해가 발견되어, 제2지구의 발굴은 내년으로 연기했다.
제1지구 유해 발굴의 특징은 발굴된 110여 구의 유해가 학살 당시의 정황을 세밀하게 보여준다는데 있다. 유해의 대부분은 30여 미터에 걸쳐 일렬로 발굴되었으며, 대부분 능선 쪽을 바라보고 최대 6겹에 걸쳐 출토됐다.
이 같은 상황은 피해자들이 일렬로 줄 지워 세워진 후 뒤 쪽에서 발사된 총탄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하듯 현장에서는 M1 및 칼빈 소총 탄피·탄두와 고무줄, 단추 등의 유품 450여 점이 함께 발굴됐다. 경산 코발트 광산, 60여 년간 방치된 240여구 발굴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유해발굴은 2개의 수평갱도 속에 흩어진 유해를 수습하고, 1개의 수직갱도를 파 내려가 집단희생의 정황을 추적하고자 했다.
먼저 2개의 수평갱도에서는 수습되지 않고 60여 년 간 방치되었던 240여구의 유해 가운데 80여구는 지난 2001년과 2005년에 발굴해 나머지 유해를 발굴했고, 제1수직갱도는 최종 11미터까지 굴착했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발굴된 유품 M1, 칼빈 소총의 탄피·탄두와 더불어 희생자들을 결박할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삐삐선, 희생자들의 유품으로 보이는 허리띠, 단추 등이 발굴됐다.
특히 제2수평갱도에서 발굴된 '朴奉羽(박봉우)'라고 새겨진 도장은 희생자의 신원 확인에 결정적 증거로 현재 진실화해위원회와 경남대 박물관 팀은 문헌조사 및 각종 탐문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 조사단은 각 발굴지에서 발생한 사건의 사실성을 보완하고, 부족한 문헌 기록 등을 보충하기 위해 유족, 참고인, 목격자 등에 대한 구술조사도 함께 병행했다.
현재 구술조사에는 모두 40여 명 이상의 유족 및 참고인이 참여하였으며, 결과물은 기록으로 공식화되지 않았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이번 발굴로 수습된 유해들은 세척 과정을 거친 후 충북대학교 유해감식센터로 옮겨져 정밀 감식을 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DNA검사 등을 실시하게 된다.
이번 발굴에 대해 송기인 위원장은 "오랜 시간이 흘러 유해의 온전한 모습을 발굴하기가 힘들어 시급한 유해발굴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었다"면서 "이번 유해발굴의 소중한 성과와 경험을 토대로 사건의 진실규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위령 화해사업의 기초적 토대를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송 위원장은 "내년에도 예산과 인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유해발굴 사업을 계속할 계획이고, 진실을 세상에 밝혀야 한다"며 "진실규명 작업은 결코 과거에 얽매이자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송 위원장은 "불행했던 과거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년에도 약 1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여 유해발굴을 준비하고 있으며, 내년까지 발굴이 계속되는 경산 코발트 광산, 청원 분터골, 대전시 산내 낭월동 일대를 제외한 3·4개소에 대한 추가 발굴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사전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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