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년 전통 조흥은행도 팔아치우나?
정부, 11월 내 매각 방침… 헐값매각, 합병음모설 등 난무
조흥은행 매각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매각시기의 문제와 신한은행과 정부의 밀약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조흥은행의 매각을 11월 내로
매듭짓겠다는 입장이다. “가능한 비싼 값에 팔겠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분할 매각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상은 벌써 인수자를
정해놓고 정부지분 전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전언이다. 이에 조흥은행노조는 11월 20일 금융노조와 연대해 총파업을 결행할
예정이어서 파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매각 시기 적절치 않아
정부는 공적자금을 회수하겠다는 목표 아래 조흥은행의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정부의 조흥은행 지분은 80.04%. 정부는 당초 3∼4년
안에 조흥은행에 대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보유중인 주식을 모두 매각할 계산이었다. 이에 따라 올해에는 정부보유지분 가운데 15%
정도를 매각하고 내년 상반기 중으로 보유지분을 50% 미만으로 낮출 예정이었다.
지난 5월 이미 정부보유 주식 매각은 위한 해외주식예탁증서(DR)의 발행에 나선다는 발표를 했었다. 하지만 돌연 취소했다. 그 이유는 “주가가
저평가 돼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흥은행은 올해 초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주가가 액면가 5,000원을 돌파하며 4월 말에는 7,680원에
달했다. 지금의 조흥은행 주가는 4,500원 선을 넘나드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비싼 값에 팔아 공적자금을 최대한 회수하겠다”고 발표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앉아서 최소 1조 6,000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도둑맞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조흥은행의 납입자본금은 3조 3,955억원, 이 중 정부지분을 액면가로 인수했을 때는 2조
7,000억원. 그러나 조흥은행이 주가를 회복해 8,000원 선에 이른다고 가정했을 때, 정부지분 평가액은 무려 4조 3,320억원으로
뛴다.
조흥은행은 정부와 맺은 경영개선계획(MOU) 상 이행 목표를 충실히 달성했고 수익성과 자산건전성도 크게 개선됐다. 상반기에만 1,100억원의
순이익에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도 상반기 목표치인 10.0%를 달성했다.
홍석주 조흥은행장은 “IMF 이후 부실정리 때문에 수익성이 떨어져 그 동안 시장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연내 부실을 모두 처리하면
내년초 1조 8,000억대의 충당금적립이익을 낼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은행가치가 높아져 더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홍 행장의 말처럼 조흥은행의 주가는 큰 악재만 없다면 너끈히 8,000원 선까지 올라갈 것으로 증권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조흥, 신한은행 공격
현재 인수 후보자는 3개사. 당초 4개사로 알려졌는데 이중 타이완의 후본금융그룹이 실사를 중단, 신한금융지주 컨소시엄과 일본 신세이은행,
미국계 펀드 서버러스 등 3파전 양상이다. 그러나 금융계 일각에서는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정부가 벌써 특정
인수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신한금융지주 컨소시엄이다.
원래 인수합병을 위한 입찰의 국제 관행은 참여업체와 탈락업체를 밝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측에서는 공공연히 신한금융지주회사를 언급해
왔다.
‘인수대금을 현금 대신 주식교환 방식으로 지불해도 좋다’는 조건을 단 것도 굿모닝증권을 인수하느라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신한 측을 배려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태가 이쯤 되자 조흥은행은 매각시기를 늦추기 위해 신한은행 측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흥은행노조(위원장 허홍진)는 매각저지를 위한 5일자
신문광고에서 “조흥은행 주식매각 입찰에 참여한 S컨소시엄이 적정가격보다 50% 낮은 선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이럴 경우 2조 5,000억원의
공적자금이 낭비된다”고 신한은행을 간접적으로 겨냥했다.
뿐만 아니라 “매각 과정에 사전각본설과 인수자간 담합의혹이 제기되는 등 비정상적인 매각기도가 있으므로 조흥은행의 지분매각을 철회해야 한다”고
의혹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홍석주 행장도 “조흥은행의 영업력이 신한보다 월등히 좋기 때문에 내년에는 충당금적립이익이 1조 8,000억원에 이르러 신한은행에 비해 6,000억원
가량 앞설 것”이라고 거들었다.
“최소 3년의 시간을 달라”
조흥은행노조는 11월 9일 8,000여명의 전국지부 직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매각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노조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은행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 위주의 금융구조조정정책을 중단할 것”과 “조흥은행의 독자생존을 보장하는 전제에서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을 갖고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11월 20일에는 금융노조와 연대해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금융노조는 “민영화를 빌미로 한 조흥은행의 헐값 매각과 합병음모, 서울은행
직원에 대한 일방적 인원감축, 은행 추가 합병 기도 등을 저지하기 위해 강력한 투쟁은 전개할 것”이라고 총파업의 이유를 밝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경제를 볼모로 싸얻을 벌여서는 안 된다”는 비판적 여론이 일고 있다. 그러나 금융노조는 “이미 국내 굴지의 은행들이
모두 외국자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됐으며, 그 결과 국내 금융시스템이 붕괴하고 국민경제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그러한 기도를
멈추게 해야 한다”면서 파업의지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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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