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공 시장님’ 어디로 튈지 몰라
노골적인 이회창 후보 편들기, 무리한 개발계획 발표에 여론 비난 비등
취임한 지 만 하루만에
서울시의 공식행사에 아들과 사위를 불러들여 히딩크와 기념촬영을 시킨 사건. 그 3일 후, 특급 태풍 ‘라마순’ 북상으로 비상대책마련이 시급하던
시기에 부인 김윤옥 씨 하계 수련회에서 특강을 한 사건. 이명박 시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10월 24일에는 대선자금 모금을 위한
한나라당 후원회에 참석해 노골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하고 발표하는 개발계획들. 도대체
누가 그를 말릴 것인가.
노골적인 이회창 지지 정치발언
이명박 시장은 한나라당으로부터 톡톡히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시장 취임 직후 그의 잇단 기행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파문을 일으킬
때 한나라당 지도부가 나서서 사과발표를 하고 사태를 진화해 준 것이다.
그런 한나라당에 이번에는 이 시장이 ‘보은’했다. 지난 10월 24일 대선자금 모금을 위한 한나라당 후원회에 참석해 노골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발언을 한 것.
이 시장은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청중을 향해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대통령이 이회창 밖에 더 있느냐’고 말하면
선거법 위반이라고 누가 주의를 줬다”면서 “그래서 그 말은 내가 못하겠지만 시장으로서 할 일은 다하겠다”고 할 말을 다 했다.
그는 또 “시장에 당선될 때 관악구를 빼고 다 이겼으니 대통령 선거에서는 25개 모든 선거구에서 이길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도 부탁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이 되니 이렇게 좋은데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거법 위반 소환에 요지부동
중앙선관위는 10월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명박 시장이 한나라당 서울시지부 후원회 금품모금행사에 참석해 한나라당 대통령 입후보 예정자에
대한 지지와 선전에 이르는 발언을 한 행위는 공무원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와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시장이 선거법 위반과 관련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검찰은 6.13 지방선거 당시 이 시장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의 홍보물
및 자서전을 무상 혹은 거의 공짜로 배포한 과정과 ‘전화홍보부대’ 운영에 이 시장이 개입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이미 불법 유인물을 배포했던 이 시장 측 선거운동원 1명은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수감중이다. 한나라당 당직자 2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선거사범에 대한 공소시효 만기일을 20여일 앞둔 11월 11일 현재,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 소환 요구에 이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현실성 부족한 개발 계획” 비판 줄이어
최근 발표되고 있는 잇단 개발계획도 졸속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청계천 개발, 강서 마곡지구 개발, 강북재개발
계획 등에 대한 미래청사진은 있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계천 개발의 경우 이 시장은 “역사와 문화, 환경 복원을 중심으로 한 청계천 복원은 시에서 추진하고, 국제 금융과 비즈니스 거점으로서의
주변 재개발은 민간에서 주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 자율에 맡긴다는 것인데, 그럴 경우 난개발을 피할 수 없다. 서울시의 생각처럼 청계천이 복원된다고 하더라도
그 주변을 민간에게 맡겨둔다면 경제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밀도 개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마곡지구(120만평)의 갑작스런 개발 발표도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시는 그 동안 마곡지구를 서울의 미래 행정수요에 대비해 개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 시장도 취임 이후 마곡지구의 개발에는
유보적이었다. 그런데 10월 21일 인근 발산 지역 임대주택단지 조성계획과 연계해 종합개발계획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그간의 입장을 뒤집었다.
하지만 인근에 임대주택단지가 들어선다는 이유로 마곡지구 개발을 한다는 것은 타당성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마곡지구는 1994년에 ‘공항배후
첨단산업도시’로 개발을 구상했으나, 장기적 안목에서 2011년까지 개발이 유보됐던 곳이기 때문에 갑작스런 계획변경 뒤에는 뭔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이회창 후보
돕기 위한 선심성 개발 공약” 비판도
11월 4일 경실련과 환경운동연합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북뉴타운건설 개발계획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3개월 동안 급조한
개발계획으로 주민들이 이미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기존 시가지를 정비하겠다는 것은 개발시대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의 전형”이라며 비판했다.
이들은 사업계획의 문제로 계획의 큰 틀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도시개발사업은 대상구역의 개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접지역과 유기적인
관계 아래서 계획이 수립돼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은평타운은 그린벨트 해제지역이지만 중고밀 개발계획이 수립됐고, 길음타운은
이미 재개발이나 재건축 되고 있는 사업이 많아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또 왕십리타운은 청계천 복원과 더불어 주변 재개발
전체에서 인접 왕십리 개발이 나와야 하지만 별개의 계획안을 발표, 시전체적으로 균형적 개발을 도모하기에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문제점으로는 개별 사업계획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없다, 단순히 물리적 환경개선에만 치중하고 있다, 지역주민의 여론수렴 절차가 생략됐다는
점이 제기됐다.
정치권에서도 이 시장의 개발계획이 정치쟁점화 되고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소속 이 시장이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한 선심성 개발공약을 무더기로
발표하고 있다며 사전선거혐의로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국민통합 21도 “선거가 채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마구잡이로 개발공약을 내는 것은 한나라당이 선거에 이용하겠다는 의도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시민에 대한 비전제시 등 정상적인 시정활동을 선거운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반박하며 이 시장을 다시 감싸고 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