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그 어두운 터널은 지났지만
경제지표는 ‘활짝’ 서민들은 ‘울상’
1997년
말 한국은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이후 국민들은 IMF체제 속에서 신음해야했다. 한국이 IMF의 도움을 받은 지 5년. 각종
경제지표는 위기 때에 비해 크게 좋아졌다. IMF에서 빌린 돈도 지난해 8월 전액 조기 상환해 ‘IMF 우등생’이라는 칭찬도 받았다. 그렇다고
위기가 완전히 극복된 것일까?
눈부신 성과
‘지난 5년 간 경상수지 흑자 894억 달러’, ‘외환보유액 1,170억 달러 규모로 세계 5위의 외환보유국(지난 10월말 기준)’. 외환위기를
몰고 왔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보유액 사정은 지난 5년 간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뤘다.
또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98년 -6.7%로 떨어졌던 경제 성장률은 99년에 10.9%라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인데 이어 2000년 9.3%,
2001년 3.0%로 성장 기조를 유지했다. 올해도 큰 이변이 없는 한 6%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덕에 ‘투자부적격’ 수준까지 떨어졌던 국가신용등급이 99년 ‘투자적격’수준을 회복했고, 최근에는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피치로부터
각각 A3과 A등급을 받아 외환위기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 또 세계의 유수 언론들도 “한국은 현재의 세계 경제 침체를 가장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국가”라며 한국의 경제회복을 극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지난 5년간 각종 경제지표들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은 아직도
상당 부분 개선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업과 금융,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등 개혁 작업은 아직도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아있고, 특히 고용불안,
빈부격차, 가계부채 증가 등 서민들이 현실 경제에서 겪는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올 9월 실업률이 2.5%로 외한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98, 99년 6.3∼6.8%에 달했던 실업률은 최근 2년 동안 3%대로
떨어졌으며, 최근 3개월 간은 2%대의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고용사정은 호전됐다고 할 수 있지만, 계약직이나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이 높아지는 등 ‘고용구조가 불안하다’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실업은 줄었지만
통계청이 밝힌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임금근로자의 47.9%만이 상용직이었으며, 34.3%는 임시직, 17.8%는 일용직으로 임시직과
일용직 등 비정규직의 비중이 52.1%에 이르고 있다.
악화된 고용구조는 고용불안,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등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정부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2000년 실시한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해고한 자리에 배치되었다. 따라서 업무 내용이 정규직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40~80%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초과근로수당이나 퇴직금·월차 및 연차·생리휴가 등 법정 임금이나 휴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또 사회적 보호의 최후 수단인 사회보험(국민연금,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가입률도 정규직에 비해
매우 낮았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장은 “저임금 비정규직(임시직+일용직)의 증가로 소득격차가 벌어지고, 빈곤층이 확산됐다”며 “기업들이 교육이
필요 없는 경력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게 돼 청년실업 문제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빈부격차는 점점 더
고용불안이 가져온 저임금 구조와 대량실업은 소득격차를 벌렸고, 이는 곧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
빈민의 수(절대빈곤인구)는 IMF 이전보다 2~3배 급증해 적게는 약 500만여 명 많게는 약 1,000만여 명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니계수(0일 때 완전평등, 1에 가까워질수록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을 뜻함)는 90년 0.29, 95년 0.28이었던 것이 2000년 0.32로
크게 악화되었다.
IMF 이전인 1997년 상위 10%계층 소득이 하위 10%계층 소득의 7배였으며, 그 소득격차는 98년 이후 급격히 확대돼 1998년
9.4배, 1999년 9.3배, 2000년 8.8배, 2001년(3/4분기까지) 9배 등 IMF 외환위기 이후 상위 소득계층과 하위 소득계층간의
소득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제2의 IMF가 오나
또한 요즘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제2의 위기를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들은 위험수위를 넘어선 가계부채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우리나라는
IMF체제였던 지난 1999년부터 경제성장을 이룩해왔으나 가계대출이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빨리 늘어나 은행들이 새로운 부실채권을 안게
될 위험에 놓였다.
지난 2000년 9월말 개인부문 금융부채 잔액은 320조원으로 외환위기 이전인 97년 말과 비교한다면 약 20조원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1998년 국내 금융기관들의 신규대출 축소로 개인부채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개인부채 잔액이 약 269조 9,000억원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2년여의 기간 동안 개인부채가 약 50조원(약 18.5%) 급증했다.
현재 가계부채는 은행대출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총생산(GDP)의 70%를 넘고 있다. 만약 경기가 식어 가계대출의 10%만 무수익채권이
된다면 은행들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에는 정부의 고금리 정책과 IMF 권고사항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은행 등 공적 금융시장의 시장 평균이자율은 98연말 이후 8~9% 수준으로 하락했었다. 그런데 이자율의 최고 한도(연 25%)를 정했던
이자제한법이 폐지되면서 카드사들은 연 22~29%, 연체시 연 30~40%로 금리를 높였고, 사금융들은 금리를 연 100~300%수준까지
올려 받았다. 하지만 경제가 악화되면서 대다수 국민들은 고금리를 주고서라도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또한 IMF의 권고사항인 “모든 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기준 준수”와 “기업자금조달의 은행차입 비중 축소”를 이행함에 따라 금융기관들이
기업금융을 기피하게 되면서 가계자금대출로 눈을 돌렸다.
이선근 단장은 “은행들의 무책임한 대출정책과 주택대란이 맞물리면서 가계부채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며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고금리 정책은
가계부채를 높이고, 신용불량자를 급증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제2의 IMF 위기설에 대해 그는 “한국경제는 상시적으로 경제불안을 안고 있지만 외한보유고와 경제성장률 그리고 몇 가지 경제지표를 따져보면
제2의 IMF가 도래할 가능성은 낮다”며 “이같은 경고는 경제개혁을 계속하라는 경고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