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한국의 학교괴담’‘일본의 도시괴담’
괴담, 현대인의 바로미터
도시전설의 민속학적 탐구, ‘한국의 학교괴담’‘일본의 도시괴담’
김종대 지음 / 다른세상 펴냄 / 4,800원 | 쓰네미쯔토루 지음 / 다른세상 펴냄 / 4,800원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밤 12시가 되면 싸움을 한다. 학교 행사 때마다 비가 오는 것은 승천하려던 용을 수위가 죽였기 때문이다.
항상 2등을 하던 학생이 1등 경쟁자를 밀어 죽인다. 죽은 학생은 가해자를 찾아 교실을 뒤진다.
언젠가 들어본, 귀에 익은 이 이야기들은 괴담으로 불리며 학교를 중심으로 전승된 도시의 전설이다. 이야기의 진원지를 찾을 길 없이 폭넓게
퍼져나간다는 면에서 구전문학의 한 갈래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도시 정서의 거울이라는 점에서 생생한 민속학의 자료다.
괴담에 대한 민속학적 탐구를 담은 김종대의 ‘한국의 학교괴담’과 쓰네미쯔 토루의 ‘일본의 도시괴담’은 도시를 떠도는 괴담에 대한 흥미로운
안내서이자, 한국인과 일본인의 본질에 대한 보고서다.
대부분 일본에서 전승
‘빨간 종이 파란 종이’ ‘택시에 탄 유령’ 등 일본의 괴담은 대체로 낯익은 내용들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과장으로 재직중인 김종대
저자는 “일제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일본 괴담이 한국에 전승됐다”고 말한다. 일본 괴담의 기본적인 틀은 자국 설화나 민담에서 차용된 것으로
한국적 전통을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 손을 내미는 요괴는 일본의 민담에서 그 원형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화장실 깊이가
전통적으로 낮은 한국적 문화에서는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한국의 학교괴담’은 일본 괴담의 한국적 변형에 초점을 맞춘다. 학교부지에 관한 내용은 좋은 예다. 납골당을 갈아엎고 학교를 건설한 경우가
많았던 일본에서는 학교 부지가 공동묘지였다는 설정이 많다. 반면에, 공동묘지 터가 학교가 되기 어려웠던 한국에서는 용이 사는 호수였다는
바뀐 형태를 보인다. 호수와 용에 얽힌 이야기는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다.
교육현실에 대한 공포
괴담을 통해 ‘한국적 상황’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도시 전설이 문화적 풍토를 민감하게 반영한다는 증거다. 한국의 괴담은 절대적으로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상상력이 한창인 또래들이 모인 교실 만큼 괴담이 생산되고 번져나가기 좋은 공간은 없다. 특히, 학생들에게 괴담은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창구다. 학교 괴담은 교육 현실을 공포로 느끼는 학생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국 괴담에는 경쟁자를 죽이거나 시험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비관자살 하는 등의 성적 괴담이 유난히 많다. 성적지상주의와 치열한 입시경쟁은
학생들에게 괴담만큼 비상식적이고 두려운 현실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도시 괴담’은 엽기적이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즐기는 일본인의 의식을 꿰뚫는 재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학교 괴담’은 한국적
특수성과 해학성을 짚어내는 즐거움이 있다. 저자는 괴담의 유형별, 공간별 분석을 시도하고 있지만 괴담에 긷든 낱낱의 의미와 심리에 대한
해석은 두리뭉실한 편이다. 두 책은 도시 전설에 관한 학문적 해석의 기초단계라 할 수 있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