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외설 사진작가'아라키 노부요시
국내 첫 전시회
삶과 죽음 극과 극의 조화
외설시비로
유명한 일본의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국내 첫 전시회가 내년 2월23일까지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아라키는 전시 때마다 여성
성기를 드러내거나 여체를 로프로 묶은 장면을 연출한 사진으로 이슈를 몰고 다녔다. 그의 사진은 포르노그라피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면 유명세를 덜 치뤘을 것이다. 아라키 사진의 진정한 철학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삶과 죽음의 경계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 20년 동안 한국을 방문해서 찍은 사진들인 ‘서울스토리’와 에로스(사랑본능)와 타나토스(죽음본능)를
동시에 포착한 ‘에로토스’, 욕망을 찍어낸 듯한 ‘꽃’과 ‘음식’ 사진 등 1,500여 점이 전시된다.
생에 대한 강렬한 욕구
무덤 옆에 짧은 치마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은 여자가 내팽겨쳐 있다. 묻힐 자리도 없는 듯 아무렇게나 버려져 메마른 바람에 국화만이 지켜본다.
외로운 죽음이다.
아라키 사진에 나타나는 이 같은 이미지는 도쿄 북동쪽의 홍등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아라키는 늙고 병든 창녀들이
죽은 후 연고가 없어 사창가 근처에 그냥 묻히는 것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강렬한 느낌을 체득했다고 한다. 홍등가는 살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삶의 터전이자 무덤이 있는 죽음의 장소였다. 생과 사, 이 극과 극의 경계는 그의 사진에 자주 나타난다. 1990년 아내 요코가
죽은 후 이러한 성향은 좀더 노골적이고 난폭한 모습으로 변한다. ‘킨바쿠’(로프로 묶기) 시리즈가 그것이다.
밧줄에 묶여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자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평온해 보이고 슬퍼 보이기까지 한다. 인간의 성적 욕망과
이면에 드러나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우러진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아라키의 작품을 외설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쇠사슬에 묶여 천장에 매달리고 가죽끈으로 온몸을 압박당한 누드의 여자 사진도 마찬가지다. 가죽끈 사이사이에 꽂힌 수저와 포크는 죽음의 극한
상황 속 느껴지는 식욕, 나아가 생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의미한다. 죽음의 선상에서 식욕과 성욕, 생욕을 배치하고 결합하는 것이다.
침대에 두손이 묶인 채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을 응시하고, 길에서 깨진 수박을 먹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도 이러한 욕구가 강하게 전달된다.
삶과 죽음의 이미지가 동시에 담겨 있는 것이다.
공허한 도시 속 희망 찾기
여성을 통한 의미부여 외에 아라키는 카메라를 펜으로, 필름을 일기장으로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1982년 첫 방문 후 20년 동안 7차례
오가면서 찍은 사진 속에 80년대에서 2000년대 지금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있다. 너무나 빨리 산업화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느껴진다.
그는 재개발지역과 재래시장 사람들, 군밤장수, 노숙자 사진 등을 통해 도시화 뒷자락에 있는 대상들에게 애정을 표한다. 공허한 도시 속 희망
찾기인 셈이다.
황폐한 도시 건물을 배경으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담은 데뷔작 ‘사친’과 올 1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일본인의 얼굴’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 프로젝트는 전국을 돌며 수만명의 얼굴을 사진에 담는 작업으로 다채로운 표정의 군상을 통해 일본인의 생활상을
보여주겠다는 시도다. “장기불황으로 어두워진 일본인의 얼굴에서 활기있는 표정을 끌어내는 것이 승부”라고 아라키가 말했듯이 그는 우울한 일상
속에서 빛을 찾고 있는 것이다.
낯익음을 낯설음으로
사진 속 주 대상이 사람이지만 사물을 통한 감정 표출도 시도한다. 꽃과 음식을 통해서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강렬한 색채와 윤기나는
음식의 사진들은 먹고싶다는 충동을 비롯한 다양한 욕망
을 불러일으킨다. 꽃을 클로즈업한 사진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색깔과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모양은 관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새로운
느낌을 부여하면서 낯익은 것들을 낯선 이미지로 다가오게 한다.
익숙한 사물로부터 생소함을 찾는 그의 노력은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어울리지 않는 광고 표지판과 양식을 알아볼 수 없는 웨딩홀, 가위로
갈비를 자르는 모습 등 우리에게는 스쳐지나간 일상을 신선한 충격으로 내던진다. 문득 매일 사용하던 숟가락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처럼.
아라키의 다양한 작품 소재는 그의 작품이 단지 ‘외설’과 ‘도발’로만 읽혀지는 것을 막는다. 여성의 몸과 섹스를 통한 ‘에로티시즘’이 담겨있는
것은 사실이나 삶과 죽음, 희망, 사물의 이면 등도 나타난다.
그는 국내 첫 전시회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화해도 시도한다. 각 국의 하늘을 찍은 1,000점의 폴라로이드 ‘천공’은 “동경의 하늘과 서울의
하늘은 하나”임을 말한다. 늘 극과 극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아라키가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인 것이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