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20대 은행원 이씨는 손가락의 습진으로 고통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부어오르고 붉은 반점이 생기며 손끝이 갈라지는 증상을 호소했다. 은행원 김씨 또한 마찬가지다. 진물이 나고 가렵고 따끔따끔한 통증으로 손가락을 펴거나 손을 씻는 것조차 힘들지만 피부과에서 치료를 반복적으로 받아도 쉽게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다. 30대 은행원 김씨는 습진 등은 적응돼 참을만하지만 눈과 목이 따갑고 가래가 끓는 등의 기관지 불쾌감은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각종 오염물질부터 치명적 세균까지
이 같은 증상들은 돈을 만지는 직업군의 전형적인 직업병이다. 은행원뿐만 아니라 마트 계산원 기업 재무팀 등의 직업 종사자들이 손가락 습진이나 잔기침 폐질환 등을 경험한다. 소위 말하는 ‘돈독’에 노출된 결과다.
미국 뉴욕대 연구진이 1달러짜리 지폐 80장을 검사한 결과 무려 3000종의 세균이 검출됐다. 여드름 식종독 위염 폐렴 등을 유발하는 다양한 균이 서식하고 있었다. 일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도 발견돼 위생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극소량이긴 하지만 탄저균과 디프테리아균도 발견됐다. 지폐는 세균뿐 아니라 곰팡이 꽃가루 동물 분비물 등 각종 오염물질 범벅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지폐가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수백 종의 박테리아를 교환하는 매개체가 된다”고 경고했다. 또한, “종이와 섬유라는 지폐 성분의 특성이 미생물 성장을 촉진시키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손을 자주 거치는 환경도 미생물에게는 최적이다. 사람의 손에서 나오는 지방 각질 등의 성분이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라이트 패터슨 의학센터 연구팀 또한 지폐가 세균의 온상이라는 사실을 오래 전에 밝혔다.
연구팀이 1달러짜리 지폐 68장에 대한 세균검사를 실시한 결과, 지폐의 94%에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박테리아가 검출됐다. 그중 7%에 해당하는 지폐 5장에서는 면역체계에 이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에게도 감염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수준의 박테리아였다.
인플루엔자 퍼뜨리는 주요 경로
스위스 제네바대학병원 연구팀은 지폐가 인플루엔자를 퍼뜨리는 중요한 경로라고 밝혔다. 콧물 눈물 침 등의 체액에 섞어서 지폐에 묻혔을 경우 최대 17일간이나 전염될 수 있는 상태로 생존한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번 조사로 지폐를 통해 인플루엔자가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연구팀은 지폐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지폐에 암과 비만, 사춘기 조숙증 등의 원인 화학물질로 알려진 비스페놀A(BPA)가 다량 검출되기도 했다. 미국 비영리기구(NPO) 공동 연구팀이 조사한 지폐 22장 가운데 21장에서 비스페놀이 검출됐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다. 순천향대학교 오계헌 교수팀이 1000원권 지폐 50장을 표본조사한 결과 모든 표본에서 식중독의 원인이 되는 각종 병원균이 다량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병원균에 오염된 지폐를 어린이나 노약자가 접촉했을 경우 발병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검출된 균 중에서는 위험한 세균도 있었다. 적혈구를 파괴할 수 있는 용혈성 바이러스 균과 항생제 내성이 강한 폐렴 유발균인 수도모나스 균종 등도
발견됐다.
위험 인식 20여개국 ‘플라스틱 지폐’로 변경
이처럼 많은 연구 결과들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은 돈’이라는 속설을 입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폐 자체가 무시 무시한 세균 덩어리라고 경고한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지폐로 인한 건강에 치명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은행원 등 돈을 만지는 직업군 종사자는 유해균에 오염된 지폐를 만지면서 손가락 염증이 발생하며, 손으로 다른 곳을 만져서 전파되기도 한다. 또한 지폐계수기가 작동하면서 지폐에 붙어있던 유해균을 공기 중에 퍼뜨려 잔기침과 가슴 통증을 일으킨다. 기관지염 폐질환 등의 위험에도 노출되는 것이다.
최근 메르스 에볼라바이러스 신종플루 등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 및 신종 바이러스의 증가 추세로 인해 지폐의 이 같은 비위생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지폐가 질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의 온상이자 매개체라는 심각성을 인식한 국가들은 지폐의 소재를 바꾸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머(Polymer)로 제작한 지폐는 1988년 호주가 처음 발행한 이후, 뉴질랜드 캐나다 베트남 홍콩 싱가포르 등 20여개국에서 도입했다. 플라스틱 지폐는 겉으로는 기존 지폐와 큰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면섬유 지폐와 달리 박테리아나 세균이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국내는 플라스틱 지폐를 비롯한 지폐위생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나 본격적 논의가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지폐 세균은 은행원 등 돈을 만지는 직업 종사자는 물론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