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을 준비중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측과 참여정부 사이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대선 직후인 지난달 20일 “많이 도와 달라”, “최대한 협력하겠다”며 화합과 지원의 분위기를 연출했던 이 당선인과 노무현 대통령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되고 있는 것. 그간 차기 정부에 대한 논평은 적절치 않다며 언급을 자제해온 청와대와 노 대통령은 지난 3일 신년인사회를 기점으로 이 당선인의 주요 공약을 맹비난하거나 새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우회적으로 표출했고 이에 다음날인 4일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같은날 이 당선인은 자신의 공약에 대한 실현 의지를 보다 확고히 함으로써 노 대통령의 비판에 맞섰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제 노무현 시대는 물러가고 이명박 시대가 온다”며 “기뻐하는 사람도 많고 또 그만큼 많지는 않지만 섭섭하고 불안한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포문을 열었다.
또한 인사말에서 그는 “대통령이 좀 잘했으면 여러분도 덩달아서 의기양양하게 나갈 텐데 대통령이 좀 시원치 않게 해서…”라면서도 “(그러나)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한다”며 차기 정부와 비교평가에서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이 당선인의 주요 공약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그는 이 당선인의 교육개혁 정책과 관련, ‘쓰나미’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비난 수위를 높였다.
노 대통령은 “중등교육 평준화가 풍전등화의 신세가 돼 있는데 어쩌겠느냐”며 “우리가 신임한 정부가 하겠다고 하니까 총선을 통해 다음 국회에서 막지 못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다 교육 쓰나미가 오는 것 아니냐”고 비꼬듯 말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이 당선인의 한반도 대운하를 겨냥, “토목공사만 큰거 한건 하면 우리 경제가 사는 것인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7% 성장’과 관련해서도 “국민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확고히 했다.
아울러 노 대통령은 이 당선인 측의 ‘경제 살리기’ 담론을 겨냥, “문제가 있지만 이 정도면 제 발로 걸어갈 수 있는 멀쩡한 경제인데 왜 자꾸 살린다고 할까”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죽은 놈이라야 살리는 것이지 산 놈을 왜 살린다고 하느냐”고도 했다.
이에 이명박 당선인은 노 대통령의 비판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교육 공약인 ‘교육 자율화’에 대한 실천 의지를 확고히 했다.
이 당선자는 4일 이화여대에서 개최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총회에서 대학 총장들과 오찬을 갖고 “30년 전 입시에 대해 손을 놓고 자율에 맡겼으면 몇 년간 혼란스러웠겠지만 지금쯤 경쟁적으로 입시제도가 자리 잡았을 것”이라며 “정부가 손을 떼는 게 가장 좋다”고 주장했다.
일일이 논평 안하겠다던 청와대 태도 돌변
이 당선인을 겨냥한 노 대통령의 비판과 더불어 청와대도 한 몸으로 움직였다. 인수위가 교육부 기능을 상당부분 지방과 대학 등에 이양키로 하는 등 내용의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 청와대는 3일 “신중하고 진지하게, 또 역사가 주는 교훈을 봐야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인수위가 교육정책 문제에 대해 상당히 급격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제한 뒤 이같이 말했다.
청와대의 이같은 반응은 현 정부가 추진해온 교육정책과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평가되는 인수위의 교육정책 개혁에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다른 견해가 있다고 해서 일일이 입장을 밝힐 필요가 없다”며 논평을 삼가한 전날 입장과 다른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기여입학금지제 등 ‘3불(不) 정책’으로 불리는 대입 3원칙을 준거로 교육정책을 펼쳐왔으나, 인수위는 3불 정책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학생들을 하향 평준화했다며 이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천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의 회동 당시 ‘대한민국 교육 40년’이란 책을 이 당선인에게 건넨 사실을 거론하며 “인수위의 교육개혁이 상당히 급격하다는 느낌은 사실이며, 그런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인수위나 언론 일각에서 이것(인수위의 교육정책개혁)이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이나 지난 10년간의 교육정책을 바꾸는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교육정책의 역사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며 “평준화 정책은 박정희 시대 때 적극적으로 방향이 잡힌 것이며 본고사 폐지와 내신 적용은 전두환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이고 수능도입, 학생부 반영도 1994년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길게 보면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고, 짧게 봐도 김영삼 정부 때 5.31 교육개혁의 연장선에 참여정부의 정책도 서 있는 것”이라고 했다.
천 대변인은 “인수위가 새로운 정부의 정책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일일이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앞으로 인수위가 분명히 밝힌 정책 중 우리와 현저히 다를 뿐 아니라 심각히 우려되는 정책이 있다면 그에 대한 견해를 밝힐 수 있으며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 대변인은 “우리 정부는 우리 정부 정책으로, 다음 정부는 다음 정부 정책으로 국민과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인수위는 2일 교육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교육부의 학생선발과 학사운영 기능을 사실상 폐지하고 대학입시 관련 업무를 대학협의체로 이양하며 자율형 사립고 설립과 특수목적고 지정 등 교육부의 사전규제 기능을 시.도 교육청의 고유권한으로 넘기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노 대통령은 ‘민심 쓰나미’로 무너진 사람”
가만히 있을 한나라당이 아니었다. 노 대통령의 “교육쓰나미” 발언에 한나라당은 즉각 “노 대통령은 ‘민심 쓰나미’로 무너진 사람”이라고 받아쳤다.
한나라당은 또 “나는 오만하고 독선한 줄 몰랐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이 신년회를 하면서 80분 가운데 50분 동안 이 당선인의 정책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데 할애했다”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오만한 태도다. 그런 것들이 국민들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맹비난했다.
심채철 원내수석부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같이 말한 뒤 “5년동안 권력에 대해 한마디 안 한 사람이 낯뜨겁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에서 자리보존하게 봐달라는 것인지 이해 못하겠다”고 지적하면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다. 지난 5년동안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 정씨는 스스로 거취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부대표는 또 노 대통령이 이 당선인의 교육 정책을 비판한 것에 대해서도 “민심 쓰나미를 아직 읽지 못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굉장히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노 대통령이 이 당선인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대운하에 대해 아직 지독히도 모르고 있다”고 공격했고 “진짜 경제가 특효처방만 하면 쑥 크는 거냐”라고 말한 데 대해서는 “적반하장이다. 국민들이 얼마만큼 경제 문제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면서 “민심이 어떻게 심판했는지를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나경원 대변인도 이날 현안브리핑에서 “노 대통령이 퇴임직전까지 당선인을 비난한 것은 유감”이라며 “대통령답게 말하고 임기를 마무리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이 당선인의 대운하 공약, 교육 개혁 등에 대해 비판도 하고 참여정부가 경제 등 잘못한 것이 없다고 강변도 했다”며 “집권 내내 토목공사 한건조차 제대로 한 것 없이 통치쓰나미만 일으킨 노 대통령이 물러나면서까지 차기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과 개혁 정책에 대해 비난과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보기에도 듣기에도 민망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 대변인은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 이 당선인은 대선 사상 유래 없는 531만표란 엄청난 표차로 대승했고 당선 후 이 당선인에 대해 일 잘한다는 여론은 80%를 넘고 있다.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이미 끝난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고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철학이 없는 소리이고 대보나마나 이미 국민의 심판은 끝난 것”이라고 쐐기를 쳤다.
나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이 당선인에 대해 국가를 부강하게 국민을 잘 살게 잘 해달라고 축복을 해주는 것이 퇴임을 앞둔 대통령으로서 올바른 처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