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인측이 MB노믹스의 정체성에 대해 실용성을 중시한 자유경제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재정 건전화’ 공약을 내 놨다. 이는 역대 정권의 공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이 당선인측이 재정 건전화를 위해 관료출신의 금융통 인사를 적극적으로 기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계 및 금융계 일부에서 MB노믹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헌재 사단’을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대안으로 관료출신의 금융통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이 당선인측이 금융권 최고경영자에 대한 인사가 여전히 ‘모피아(옛 재무부 관료 등을 지칭)’의 영향력을 받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며 이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관료행태를 잘 알고 있는 관료출신의 금융통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즉, ‘모피아’를 잡기위해 ‘모피아’를 동원했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어 향후 이 당선인측과 이헌재 사단측의 쌍방간 치열한 공방전도 예상되고 있다.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은 한 언론에서 금융권 최고 경영자 인사와 관련한 질의에 대해 “대한민국 금융이 잘 되려면 ‘이헌재 사단’이 청산돼야 한다. 자생적으로 자기 이익을 보호하고 이권을 키우는 공무원 조직이 없어져야 한국 금융이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재정관리가 MB노믹스 성공열쇠
이 당선인측이 재정 건전화를 이유로 금융권에 대한 일대 개혁을 준비중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과거 김영삼 정부의 IMF 초래와 함께 김대중 정부의 카드대란, 노무현 정부의 금융정책 실종으로 인한 국가경제를 위기감 속으로 몰아갔던 것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 국민소득 7만달러를 목표로 설정해 놓고 있는 이 당선인측으로서는 과거 개발시대의 산업발전과 수출전략 등에 의한 외화벌이보다는 벌어들인 재정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의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의 경우 초기 내각구성 단계에서부터 나라살림을 챙겨야할 부처를 폐지하는 과오로 인해 눈앞까지 다가온 외환위기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파악할 수도 없는 시스템으로 인해 IMF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뿐 만 아니라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에 빠져 허덕이는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헌재 전 부총리를 내세워 국가채무 변제에 따른 장기적인 경제활성화보다는 벤처육성과 소비경제를 위한 카드남발 등의 단기부양책으로 불황의 덧에 빠지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여기에다 참여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시장경제를 무시한 정부위주의 정책 남발과 추진 등으로 노무현 정권 5년동안 부동산 시장 견제 등에 올인하는 등 빈익빈부익부 현상만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정책 남발 및 시행에는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국가경제 정책에 깊숙이 간여해 온 이헌재 전 부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지속적으로 대두됐을 뿐 아니라 이헌재 사단으로 불리웠던 금융인들에 대한 견제가 사실상 불가능해 ‘모피아’ 인사가 끊이지 않아 국가경제를 가진자 위주로 몰아갔다는 것에 이 당선인측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다 이 전 부총리는 현대그룹과 야합해 내부적으로 부실해졌던 현대전자에 LG반도체를 강제 합병시키는데 성공한 후 현대전자의 자금으로 김대중 정권의 금융지표 불리기에 동원되기도 했다. 뿐 만 아니라 대북 송금 지원에 현대그룹이 휘말려 결국에는 주거래 은행이던 외환은행까지 부실로 몰아가, 론스타에게 헐값으로 매각되는 현상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 결과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일반기업 및 금융권의 무리한 합병은 국가경쟁력 상실과 함께 국부유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전 부총리가 무리한 합병에 따른 부작용을 묵살한 체 금융부문에 간섭한 것은 권력에 대한 비공식적인 보상과 댓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당선인측은 이같은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고 재정 건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금융권 장악이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헌재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금융권 인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금융계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헌재 사단 역할 주목해야
이 전 부총리는 ‘국민의 정부’ 시절 초대 금감위원장(1998년 3월~2000년 1월)에 이어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 장관(2000년 1월~8월)을 역임한데 이어 ‘참여정부’ 들어 다시 경제부총리(2004년 2월~2005년 3월)로 영입된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주역일 뿐 아니라 두 정부에 걸쳐 경제 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셈이 된다.
이헌재 사단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다. 재무부 관료 출신으로 오랜 야인 생활을 거친 이 전 부총리가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해 였다. 당시 금감위원장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기업 금융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아 막강한 힘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을 합친 금융감독원장도 겸하는 자리로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재벌 회장들도 이헌재 위원장의 위세에 눌리던 시절이었다.
당시 이헌재 사단으로 불리웠던 인사들은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를 비롯해 전홍열 금감원 부원장, 이성규 코레이 최고지식책임자, 서근우 하나은행 부행장, 김기홍 국민은행 수석부행장, 이성남 전 금감원 검사총괄실장,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장, 박해춘 LG카드 사장, 황영기 우리은행장 등이다.
이헌재 사단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은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과정에서다. 이들이 연결고리가 된 학맥은 경기고와 서울고이지만 인맥은 이헌재 사단이 중심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쪽에서 매각을 주도했던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를 비롯해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과 론스타 어드바이저 코리아의 유회원 사장,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등이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외환은행 매각은 불법으로 이뤄졌고 이는 변양호 국장 등 ‘이헌재 사단’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김재록 게이트 파문이 커지면서 또 한번 이헌재 사단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 98년 97년 김대중 후보의 전략기획특보였던 김씨는 그 이듬해 대통령인수위 시절 비상경제대책위원회에서 이 전 부총리를 처음 만나게 된다. 이후 김씨는 각종 기업과 금융회사의 인수합병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 온 과정에서 ‘이헌재 사단’과 접촉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김재록 본인이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된데 이어 강정원 국민은행장, 강권석 기업은행장과 함께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과 최범수 전 국민은행 부행장 등이 새롭게 거론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재록 사태뿐 만 아니라 외환은행 매각이나 LG카드 매각 등 금융권의 주요 사안에 대해 금융가에 폭 넓게 포진한 ‘이헌재 사단’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헌재 사단’은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초엘리트 집단으로 1998년 외환위기 극복과 금융구조 개혁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관치 금융의 논란에 빠지면서 일반인으로부터 많은 관심의 대상으로 떠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