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2018년 각 기업들의 신년사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성장동력 발굴”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이미 경제계의 주요 화두로 자리 잡았고, 세계무대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가뜩이나 심각한 일자리 문제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일자리 부족이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비교적 사람의 일손을 덜 필요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는 우리 사회에 기회이자 또 다른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월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실업 문제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심화됐다. 15~29세 청년실업률이 9.9%를 기록해 청년 10명 중 1명은 실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0.1%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200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전체 실업자 수는 102만8000명으로, 2016년(101만2000명)에 이어 2년 연속 실업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공개돼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인공지능 점포 ‘아마존고(Amazon Go)’는 앞으로 다가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와 우려를 낳았다. 미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워싱턴주 시애틀에 선보인 ‘아마존고’는 고객이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으면 자동으로 계산돼 계산대와 계산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음식을 만들거나 선반에 상품을 진열하고 고객들을 안내·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직원들이 존재하지만, 향후 무인점포가 확대될 경우 미국에서 9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등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일자리 우려에 무인점포 본격 추진 부담
국내에서 인공지능 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를 선보인 코리아세븐도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해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마케팅 과정에서 ‘무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열린 기자간담회 당시 코리아세븐 관계자는 “(무인 편의점 등장에 따른) 일자리 감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무인 편의점이라고 해서 직원이 없는 게 아니다. 계산은 편의점 업무 중 가장 단순한 업무이고 상품 관리·발주·입고·진열 등 사람의 손이 필요한 더 어려운 업무들이 있다”며 “자동 계산 시스템으로 인해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노동이 질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편의점이 완전히 무인화되는 데에는 향후 2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는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미래형 편의점 신기술을 위한 것일 뿐 단기간에 매장을 확대할 계획도 없다”며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를 준비하는 데에만 500여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오히려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유통규제 기조와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문제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이 무인 편의점의 본격 추진을 공론화하기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면서 “무인점포로 인해 고객 편의를 도모하고 고용주의 인건비 부담을 덜겠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일자리 개선이라는 정부의 취지에는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인점포는 기술의 진보에 따른 시대적 조류”라며 “새로운 유통산업의 전략에 대해 중국이나 일본처럼 정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고민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기술수준, 걸음마 단계
하지만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아 일자리 문제에 대한 우려는 너무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에서 무인 계산대를 테스트 운영하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이용률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내 무인계산 시스템의 기술 수준을 고려했을 때 일자리 감소 우려는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그는 “‘아마존고’ 같은 경우에는 별도의 계산 과정 없이 물건을 가지고 나오면 돼 편리하지만, 대형마트 무인 계산대는 고객이 직접 물건을 일일이 스캔하고 포인트 적립과 결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고객이 많은 것 같다”며 “현재 무인 시스템은 계산 과정에서 오류가 나거나 잘못 눌렀을 경우 이를 도와줄 직원이 있어야 한다. 완전 무인화로 가기에는 기술적으로 개발돼야 할 것이 많은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혁신 역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과 한국의 혁신역량’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혁신 역량이 IT 기술 관련 특정 분야에 편향돼 있어 향후 4차 산업혁명 진전으로 기술 및 산업구조가 급변할 경우 혁신을 통한 경제발전이 더디게 진행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 다중 통신 및 컴퓨터 그래픽 등 3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산업 및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 선두에 올라서며 혁신을 이끌어 온 측면이 있으나, 인공지능 등 4차 산업기술 개발은 더디다. 미국 특허청에 승인된 500만개 이상의 실용 특허출원을 기준으로 최근 10년(2006~2015년)간 가장 빠른 속도를 보인 상위 10개 기술에서 우리나라는 주요 15개국 중 11위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IT 기술 관련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4차 산업혁명 분야에 대한 기술 개발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1월 현대경제연구원 또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유통업의 변화’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기업의 기술개발 및 활용을 위한 투자 비율(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2015년 기준 0.5%로 전반적으로 부진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유통기업의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이용률은 각각 0.3%, 0.1% 수준으로 신기술 이용률이 낮고 첨단 정보통신기술 특허출원 실적도 낮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순인력 대체 및 고급인력 수요 급등으로 나타나는 유통인력 구조 변화에 대응한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며 “기업들은 연구개발 투자 확대 및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