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떡 해갔던 손님 이바지떡 해가요”
3대 이어온 궁중떡 대가 ‘원조낙원떡집’ 이광순 씨
비원과
창경궁이 인접된 낙원동은 예로부터 ‘궁중떡’을 만드는 곳으로 이름나 있다. 지금도 이 골목에는 맞춤떡을 전문으로 하는 10여개의 떡집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원조낙원떡집’이 가장 유명하다. 70년 남짓 3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이곳의 현재 터주는 이광순(59세) 씨다.
외조모 고익보(1959년 작고) 씨가 한일합방 후 관인 출신 과수댁으로부터 떡 만드는 일을 배워 1920년께 조그만 가게를 차린 것이 낙원떡집의
효시가 되었다. 그 후 이 씨의 친정어머니 김인동(78세) 씨가 솜씨를 전수받았고 그것을 이광순 씨가 물러받아 지금에 이르렀다. 이광순
씨의 경력만도 근40년이다.
햄버거나 피자에 밀려 수효 줄어
“주로 50세이상 나이든 손님들이 옛맛을 잊지않고 찾아와요. 백일떡을 해갔던 분들이 이제는 결혼 이바지떡을 해가죠.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꾸준히 오는 단골이 많아요.”
이 씨의 말대로 들어서는 손님마다 안부를 전할 정도로 친분이 있다. “한번 맛본 사람은 계속 찾아온다”며 자부심을 나타낸 이 씨는 간혹
소문을 듣고 처음 오는 손님에게는 입맛에 맞게 떡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약식이 제일 잘 팔려요. 쑥굴레떡이랑 오색경단도 맛있고요.”
특히 이광순 씨가 가장 자랑하는 것은 오색경단이다. 새알 반죽에 밤채, 대추채, 검정깨, 파란콩, 노랑콩을 박아 끓는 물에 삶았다가 찬물에
넣어 건진다. 색깔과 모양이 예뻐 선물용으로 잘나간다.
쑥인절미 양옆에 계피를 넣은 흰팥을 붙여 만드는 쑥굴레떡은 지금은 다른 떡집에서도 볼 수 있지만 원조는 ‘낙원떡집’이다.
“우리집이 다른집보다 특별히 다른 점은 없어요. 단지 재료를 우리농산물만 사용하고 오랫동안 하다보니 손맛이 배어나서 그런거죠.”
이 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여고졸업직후다. 외할머니로부터 떡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은 어머니가 일제말기와 6·25의 격동사에서 떡을 빚어
식구들을 부양하는 것을 보면서 가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게됐다. 그때부터 배우기 시작해 평생을 떡 속에 파묻혀 지내게 됐다. 지금도
곡물 빻는 일만 기계로 할 뿐 나머지 전작업은 손으로 하기 때문에 한시도 손에서 떡이 떠날 줄 모른다.
전통에 대한 긍지가 강한 이 씨지만 “이제는 떡을 놓아야할 때가 된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에 길들어진 젊은 세대들이
더 이상 떡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직은 단골이 있어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이 씨의 얼굴에는 염려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 씨는 오늘도 떡을 빚는다. 시대가 변했지만 쉽게 놓을 수 없는 가업이자 전통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흙으로 반죽하여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성경 속 조물주처럼 이광순 씨는 정성으로 반죽하고 애정을 심어 떡을 ‘창조’하고 있다. 70년간 이어온 궁중떡에는 생명이 숨쉬고 있었다.
·문의) 02-732-5579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