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시장 침체 예상, 포용력도 갖추어야…
20~30년 전 지어진
아파트들을 부수고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에 맞게 다시 짓는 재건축. 2002년 한해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했던 화두로, 투기의 근원지로 말도
많았던 재건축 관련 법이 정비되어 올해 7월1일부터 적용될 예정에 있다. 새 법이 적용될 시점엔 시행착오의 시간과 사건들이 분명 존재한다.
더욱 적절하고,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법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나 국민들 중 누군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도 새 법이 떠 안아야 할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많은 이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재건축 연한 40년은 너무해
얼마 전 이명박 서울시장의 재건축연한 40년 발언과 관련하여,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을
신청한 ‘둔촌 주공’의 한 주민이 서울시에 재건축연한 일괄 40년 적용에 대해 반박의 의미로 의견을 보낸 적이 있다. 내용의 요지는 ‘건축수명에
부합되지 않은 부실설계와 부실공사’에 관한 것. ‘둔촌 주공’은 철근 콘크리트 최소 수명인 60년은 커녕 아파트 수명이 20년을 넘을 수가
없도록 설계 시공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 시장은 ‘20년이라는 재건축 허용 연한이 오히려 내구연한에 맞추는 부실시공을 부추기는
폐단을 낳고 있다'고 답했다. 그 동안 유지보수를 잘하면 얼마든지 사용 가능한 건물을 경제성의 논리에만 치중하여 마구잡이 재건축으로 자원의
낭비, 도시의 과밀 초래, 주택시장 불안 등 새로운 도시문제를 야기했다는 의견이다. 안전에 큰 문제가 있는 위험건물은 연한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재건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변했지만, 재건축의 폐해를 방지하고 부실공사 예방과 건설기술 향상을 위해서 재건축 연한의 강화를 건설교통부에
건의하여 구체적인 방안으로 이끌어낼 계획이다.
오래 전부터 재건축을 기다려온 ‘둔촌 주공’ 주민들의 입장으로선 ‘재건축 연한 40년’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의견일 것이다.
새 법에 영향 받는 아파트들
아직 시행령이 확정되지 않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2월 중 최종 확정되게 되면 재개발,
재건축 시장에 상당히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먼저 눈에 띄는 법안부터 살펴보자.
광역단위 선계획. 후개발 법안이 시선을 끄는데, 주된 내용은 재건축 및 재개발을 추진할 경우 광역단위의 계획을 먼저 수립해야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단독주택지 재건축은 300가구 또는 1만㎡ (3,000평)이상이 되어야 하고, 20년 이상 된 낡은 주택이 3분의
2이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밖에 상가 소유자의 반대 의견을 줄이기 위해 상가를 두고 리모델링하면서 주택만 재건축할 수 있도록 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재건축 아파트의 강력한 규제 장치인 ‘안전진단’도 대폭강화 되었다. 제정안은 재건축 허용여부를 안전진단 결과 뿐만 아니라
해당 재건축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시장, 군수, 구청장이 최종 결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재건축 연한도 강화되어 기존
20년 이상에서 30~40년으로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안전진단 심사를 통과한 성원협성, 삼성 상아2차, 진달래 2,
3차, 서초 우성 1,2차 아파트 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지만, 2002년 12월에 재차 안전진단을 신청한 대치 은마아파트와 같은
경우는 쉽게 맘을 놓을 수 없는 상태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조합측은 현행법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시행령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을 뿐더러 안전진단 심의도 받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향후 새 법안의 재건축 허용 연한을 통과하지 못해 낭패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둔촌 주공’, ‘개포 주공’ 등이 안전진단 신청 중에 있고, 아직 안전진단 신청은 하지 않았지만, 입주한지
24년이 넘은 송파 장미아파트도 향후 늘어난 재건축 허용 연한으로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건물 유지보수를 하며, 재건축을 기다리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새 법은 사업주체에서 시공자를 배제하여 조합설립 시 주도권을 둘러싼 주민간 다툼을 막도록 했고, 시공자 선정은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경쟁입찰로 정하도록 했다.
억제책이 오히려 부작용 낳을 수도
지난 2002년 아파트 값 상승률은 서울 31.64%, 수도권 27.75%로 10년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높은 상승세를 유지하던 재건축 아파트의 억제책은 2001년 ‘지구단위계획’을 필두로 2002년 ‘안전진단강화’로
이어졌고, 올해엔 재건축 허용 연한까지 늘려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아파트 값 상승의 근원지로 강남지역을 빼 놓을 수 없다. 최근 2~3년간 도시계획법 상 지구단위계획시행 등으로 인해 사업계획승인을 받은
곳이 드물다 보니 서울시 주택공급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도 99년 88%에서 2002년 26.6%로 크게 낮아졌다. 그런데 강남구 지역에서의
아파트 공급비중은 오히려 2001년 31.8%에서 2002년 55.2%로 높아졌다. 강남구에서 건설되는 아파트의 75% 이상이 재건축 사업으로
건립되는 물량이다. 이는 청담, 도곡지구 등 이미 사업승인을 받은 서울시 5개 저밀도 지역의 공급 물량인 것이다. 규제책에도 불구하고 ‘사업성’이
높은 강남지역 등은 여전히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용적률 저하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강북 지역 등 일부 재건축사업 추진 단지는 재건축
사업을 사실상 포기하는 사례도 발생하였다.
또한 일반 주거지역의 종 세분화 작업 본격화로 재건축을 염두에 두고 있는 노후아파트들이 잔뜩 움츠리고 있다. 일반주거지역의 세분화는 지역의
입지특성과 주택 유형. 개발밀도 등을 반영해 일반주거지역을 1ㆍ2ㆍ3종으로 나누고 종별로 용적률과 층 수를 달리 규정하는 것이다. 즉 일반주거지역
1종은 150%(4층 이하), 2종은 200%(7ㆍ12층), 3종은 250%로 용적률과 층 수의 상한을 정하고 있다. 동대문구 휘경2동에서
재건축을 추진중인 단독주택 밀집지역은 2종(7층, 12층)으로 지정됐는데, 이곳은 지난해 9월 총회를 열어 시공사를 I건설로 정하고 11~20층
규모 547가구를 지을 계획이었다. 층수를 최고 12층 밖에 짓지 못하게 되면 사업성이 떨어지고 조합원 동의율도 낮아져 염려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시행령 확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과열 투기현상이나 무분별한 재건축을 강력 규제하는 법안이 제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주택의 원자재라고 할 수 있는 택지가 없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용적률 및 재건축 허용 연한 등의 천편일률적인
제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규제 강화로 현행 법의 단점을 보완하되, 파급되는 문제를 끌어안는 포용력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박광규 기자 hasid@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