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분신했나?
노조탄압으로 자리 잡은 가압류와 손배소송
지난
1월 9일 새벽 배달호 (두산중공업 전 노조대의원, 50세)씨가 자신이 근무하는 공장 옆에서 분신했다. 회사의 노조탄압과 가압류 등이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할 자녀를 둔 중년의 가장이 분신을 결행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노동자들이 현재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두산이 해도 너무 한다”
“두산이 해도 너무 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말살
악랄한 정책으로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 사원의 고용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나는 매일같이 고민을 해본다 두산의 노동조합 말살정책 분명히 드러나 있다”
배달호 씨가 남긴 유서 곳곳에서 그의 죽음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명확히 나타나 있다. 그가 몸담고 있던 두산중공업은 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2000년 12월 한국중업업을 인수하며 탄생했다. 당시 두산의 한국중공업 인수는 특혜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두산은 한국중공업을 인수하자마자 즉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1,200여 명을 명예퇴직 시키면서 노사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노조간부에
대한 징계·해고 고소고발과 구속, 가압류와 손해배상청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조를 탄압했다.
노조대의원이었던 고인도 지난해 9월18일 회사측으로부터 정직 3개월 처분을 받고 지난해 12월 18일부터 다시 복직해 일해 왔으나, 지난해
장기파업에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며, 월급 50%와 부동산 등이 가압류된 상태였다.
복직 후 첫 급여일인 1월 10일, 회사가 그에게 줄 돈은 단돈 2만 5,000원에 불과했다. 정식 급여는 150만 2,000원이었지만
이중 세금과 복지기금, 대출금 상환분, 조합비 등을 뺀 실수령액은 65만 6,000원. 하지만 회사의 가압류 조치로 인해 이중에서 다시
63만 1,000원이 압류 당했다.
임금은 사무관리자건 현장근로자건 간에 임금생활자에게 있어서 생활을 이어나갈 수단으로서 생명과 같다. 임금의 절반을 가압류한 것은 목숨을
반쯤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진배없다. 두산중공업 노사 양측에 이해관계가 없는 한 창원시민은 이에 대해 “두 자녀를 둔 가정의 재산 뿐 아니라
가장의 월급까지 가압류하는 것은 그 가족을 죽으란 말 아니냐”며 “회사측이 너무했다”고 말했다.
가압류·손배소송은 새로운 노동탄압
파업후 사측의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노조원 재산 가압류는 그동안 노동계로부터 ‘신종
노동탄압’이라고 비판을 받아왔다. 사실 노조와 조합원에 대한 사측의 천문학적인 가압류와 손배소송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제약하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손배 가압류로 인한 피해사업장 수는 두산중공업, 발전노조 등을 포함한 39개 사업장 약 1,2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가압류·손배소송이 급증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조의 취약한 재정을 악용해 사측이 임단협 등 노조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과거에는 사측이 임단협 타결과 동시에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취하했으나 이제는 가압류 손배소송를 통해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손배청구 50억원, 간부 및 사수대 임금 가압류, 지부 및 지회 43명, 재산가압류, 일반조합원 11명에 대한 조합비
가압류를 실시했다. 사측은 “이같은 조처는 노조탄압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조합원은 파업 직전 사측이
“‘파업참가하면 5천만원 손배 떨어진다 파업 결합 하려면 해봐라’고 협박까지 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상반기 발전노조 파업사태의 경우, 회사는 파업참가 조합원 3,928명을 상대로 148억원을 가압류 신청한 바 있다. 그러나 5개
발전회사는 ‘경영정상화 추진 기본계획’(2002년 4월 7일)을 통해 “손해배상 소송 대상자 결정, 가압류 처리 등은 노사관리 안정화 차원에서
징계 및 고소사건과 연계하여 처리”하겠다고 밝힌 뒤, 해고자 선별 복직 조치와 함께 조합원에 대한 가압류를 취하함으로써, 결국 노조를 길들이고
조합원들의 저항의지를 굴복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술’로 ‘가압류’를 활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반인권적
탄압
가압류, 손배소송이 급증함에 따라 이에 따른 피해의 규모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민사의 대상이 노동조합 또는 노조 간부에 한정되었던 반면 최근 들어서는 그 대상이 일반 조합원으로까지 확대됐다. 심한 경우에는 조합원의
보증인인 가족에게까지 소송이 확대돼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히고 있다. 또한 가압류의 범위도 과거에는 조합비에 한정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임금, 개인통장, 부동산에까지 확대되고 있어, 가압류나 손배소송에 휘말릴 경우 사실상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장은증권의 경우,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합의로 명예퇴직 위로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노조 위원장에게 모두 13억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물렸으며, 한 발 더 나아가 노조 위원장의 신원보증인인 부친과 숙부, 조모의 집과 선산 등 3억 4,000만원을 가압류해 가족과 친지 전체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일반적으로 형사처벌은 확정 판결시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가압류 손배소송 등 민사상 대응은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사용자가
일단 가압류나 손배소송 등을 제기하게 되면 재판에서 승소할 때까지는 상당기간 재산권이 제약될 수밖에 없으며 설령 승소하더라도 사용주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할 수가 없어 일방적으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민주노총은 “민사상 가압류 손배소송을 조합원 자신은 물론 가족, 보증인까지 고통을 주는 지극히 반인권적인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