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여신, 버지니아 울프 되다
‘디 아워스’의 니컬 키드먼, 이성 감성 조화된 연기 펼쳐
니컬
키드먼은 버지니아 울프를 어떻게 연기했을까? 키드먼에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의 명예를 안겨준 ‘디 아워스’는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작품이다. 키드먼이 이 영화에서 연기를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녀가 스트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배우로 성장했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스트립이 누군가. 80년대 연기파 배우의 상징 아닌가. 이런 이유로 ‘디 아워스’는 키드먼의 연기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녀가 맡은 역할은 복잡한 사고와 불안한 심리의 대명사 버지니아 울프다.
‘폭풍의 질주’ ‘파 앤 어웨이’에 함께 출연한 톰 크루즈와의 결혼으로 시선을 모았던 키드먼이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난 것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투 다이 포’에서였다. 이 작품으로 키드먼은 골든글로브, 전미 비평가협회 등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전환점을
맞는다. 이후 ‘아이즈 와이드 셧’으로 “비로소 연기에 눈을 떴다”는 키드먼은 톰 크루즈와 이혼의 아픔을 딛고 연기인생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디 아더스’ ‘물랑루즈’에 이어 ‘디 아워스’는 대배우로 급성장하고 있는 그녀의 행보에 결정타를 날린 작품이다.
캐릭터에 깊은 동화
‘디 아워스’에서 키드먼의 연기는 일단 여배우로서 아름다움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미녀 배우가 연기를 위해 망가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존경스러운 법이다. 여배우에게 외적 장점을 포기한다는 것은 전부를
건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내면적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디 아워스’에서 키드먼은 존재 자체를 찾기 어렵다. 버지니아 울프의 실제 외모와 비슷해 보이기 위해 인공으로 만든 매부리코를 붙이고,
긴 머리를 윤기 없는 두터운 회색 가발 아래 숨긴 채,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로 키드먼은 고뇌하는 버지니아 울프를 열연했다. 특유의
신비로운 눈빛연기와 우아한 팔 동작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임을 겨우 깨달을 수 있다. 그만큼 캐릭터에 깊게 동화되는 명연기를
선보인다.
‘디 아워스’는 영화 문법이 다소 실험적이기 때문에 읽어내기는 까다로운 작품이다. 세 여성의 내면 흐름을 따른 진행은 연기자들에게도 어려운
요소가 많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소름끼치도록 정밀하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내밀한 감성과 갖가지 병적 요소, 불안감을 큰 동작과
대사 없이도 생생하게 표현한 키드먼의 절제된 연기는 한 편의 잘 다듬어진 시처럼 함축적이다.
‘디 아워스’는 낯설고 어려운 영화지만 세 경우 정도라면 충분히 감상할 가치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마니아, 스토리보다는 문학적 감성과
편집의 미학을 즐기는 영화광,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겪고 ‘거울 앞에 선 누이’ 같은 성숙함이 베어나는 키드먼의 연기를 확인하고 싶은
관객.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