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나는 작품으로 관객에게 가까이”
30여년 극단의 터주, 국립극단 박상규 단장
1950년
4월 국립극장의 설립과 함께 전속극단으로 출발한 국립극단이 올해로 장충동 이전 30주년과 정기공연 200회를 맞이해 대대적인 기념공연을
축제분위기로 꾸미고자 준비중이다. 30여년을 연기자로 국립극단에 몸담아 온 박상규(51) 단장을 만나 극단의 방향과 지향점을 들어보았다.
국립극단만의 색깔과 기획 방향은 무엇인가?
그동안 국립극단은 정통 리얼리즘 연극을 기초로 한 작품들을 해왔다. 모든 무대예술의 기본은 리얼리즘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국립극단 다운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변화된 시대적 감각을 접목시킬 계획이다.
국립극단의 대표적인 기획물을 소개한다면.
대표적인 기획공연물로 ‘세계명작무대 시리즈’가 있다. 세계적 고전의 진수를 국내에 제대로 소개하기 위한 기획으로 86년부터 시작됐다. 본고장의
연출자와 스탭이 참여해 정확한 해석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 점이 특징이다. 외국의 작업스타일을 직접 보고 느껴 안목을 넓히고, 국가간의 문화
교류에 일조 한다는 부가 효과도 얻었다.
‘한국연극의 재발견 시리즈’도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적 소재와 내용을 토대로 한 고전들을 재발굴하는 기획이다. 한국인에게는 전통적
정서를 소홀히 여기거나 우리 것을 경외시하는 잠재적 습관이 있다. 이 때문에 과거의 좋은 작품이 일회용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미래의 지향점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셰익스피어나 입센, 괴테 등의 작품이 동서를 막론하고 명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맥락과 상응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외에도 창작극의 활성화를 위해 매년 장막희곡을 모집해 신진 작가와 연출가를 발굴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문화마라톤대회’로 연극 저변확대
‘국립’으로서 연극의 대중화를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했을 것이다.
항상 숙제는 극장에 보다 많은 관객이 와야겠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모인 곳을 보면 어떻게 저들을 연극관객으로 이끌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마라톤 마니아들이 가족사랑이 돈독하고 문화적 이해척도, 관심도가 높다는 것을 알게됐다. 마라톤 인구는 상당한데 대부분 계기가
없어 공연예술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립극장의 주변환경을 활용하여 극장의 문턱을 낮추고 그야말로 시민휴식공간으로 인지도를
높이면서 자연스럽게 극장에 찾아올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에 문화마라톤대회를 기획했다.
대회 참여자의 반수에게 이 취지에 공감하는 기업의 협찬금으로 1년간 국립극단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작년에 1회를 개최했고,
올해는 2차례 정도를 계획중이다. 연극을 접해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연극의 참맛을 보여주고, 연극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효과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국립극장은 지리적으로도 중심지고 주변 풍경도 아름다워 명소가 될만한 요건이 많지만 아직 위치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문화마라톤은 앞으로
문화를 생활화하는 실천운동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200회 공연은 어떤 작품이 선정되나?
국립극단이 그동안 공연하여왔던 창작극 중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공연으로 대극장 규모에 맞고 풍성한 볼거리와 주제를 갖춘 작품으로 신중하게
선정할 것이다. 국립극단의 200회 공연은 우리 국립극단만의 행사가 아니라 범연극계의 축제적인 분위기에서 치루어 질 것이다. 지난 53년간의
유구한 공연역사를 축하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50년을 내다보며 큰 획을 긋는 시점이 되어야 할 것이며, 동시에 우리 국립극단이 나아가는
길이 바로 한국연극계를 선도해나가는 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계 관련인사들로부터 많은 의견 수렴을 거치고 있으며 금년부터 조직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한 극단 내의 작품 개발팀과의 깊이 있는
토론으로 대상작품들을 압축, 선정 중이다.
공연 질 향상을 위한 방안으로 출범한 작품개발위원회는 어떤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나.
금년도부터 활발히 운영 중인 작품개발팀은 전문연기자로 구성되어 있는 국립극단에서 보다 시야를 넓혀서 좀더 다각적으로 예술적 기량을 향상시키자는
목적으로 결성된 것이다. 공연레퍼토리 선정을 위한 작품 협의에서부터 공연 후 합평회 실시 등의 사후평가 과정에 이르기까지 단원들이 함께
추진하는 협의체로서 국립극단의 미래를 위해 그 성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
“연극다운
연극 만들어야”
요즘 한국연극의 풍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말초적인 신경자극이나 외형적 요소에 치우친 작품이 많다는 것이 안타깝다. 연극이라는 장르는 인간이 가진 사상과 감정의 대립과 상호 관계에서
무엇인가를 도출해내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진지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사람 냄새나는 작품이 아쉽다. 이
가운데에서 관객들이 배우의 땀과 눈물에 공감하는 연극다운 연극이 되어야 한다. 겉핥기 식으로 흉내내는 자세로 어떻게 관객의 가슴을 적실
수 있겠나.
연기 대선배로서 젊은 연기자들에 대한 견해는?
연기에는 거짓이 없다. 스스로 노력한 한 만큼 무대에서 나오는 법이다. 얼마나 땀을 흘렸는가는 물론, 사생활이나 지식수준까지 연기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 때문에 두렵기도 하지만, 또 그 때문에 매력적이기도 한 것이 연기다. 하지만, 요즘 몇몇 연기자들은 연기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무대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우리말에는 고저장단이 있다. 띄어 말하기나 고저장단의 맛깔스러움을 살리는
것이 화술 연기의 기초인데 젊은 배우들은 연극적 대사를 부담스러워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려운 점이나 바람이 있다면.
단원들이 불편함 없이 예술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인데.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항상 허덕인다. 공연제작비의 부족이
늘 어렵다. 후원회가 활성화되고, 기업 기부도 많아져 연기자들의 기량향상에 여러모로 투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