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2억 달러 송금 의혹 ‘뜨거운 감자’
한나라당 ‘특검’ 주장, 노당선자측 2단계 해법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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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4천억 지원설의 실체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한나라당과 시민단체들은 특검과 김대중 대통령의 공개 사과
등을 요구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반면, 검찰과 노무현 당선자 측은 의혹의 핵심에 청와대가 존재하고 있음을 감안,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한편 현정부의 치적으로 꼽히고 있는 ‘6·15 정상회담 뒷거래’에 이어 ‘10억 달러 지원설’ ‘정상회담 전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 방북설’
‘국정원 개입설’ 등 확인되지 않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어, 취임을 목전에 둔 노무현 당선자가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대상선 북한 2235억원 지원
지난해 9월 한나라당 엄성호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기한 현대상선 대북 4천억 원 지원설에 대한 감사원 조사 결과, 2000년 6·15 정상회담
직전 2235억 원이 북한에 전해진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르면 현대상선이 지난 2000년 6월7일 대출 받은 일시당좌대월 4천억 원 중 1000억원은 현대건설의 기업어음(CP)
매입자금으로, 765억원은 현대상선 CP 등 상환자금으로, 나머지 2235억원은 대북 관련 사업자금으로 각각 사용했다.
감사원은 이어 현대상선이 대북 관련 사업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2235억원이 2000년 6월 북측에 송금되기 이전 신원을 알 수 없는 ‘가공의
인물’ 6명의 명의를 이용한 돈세탁 과정을 거쳤던 것으로 발표했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 대출금 2235억원(수표 26장)은 수표 이서 내용이 중간에 끊기거나 확인할 수 없는 이름이 적혀 있어 수표
추적이 불가능했다”며 “이서된 6명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국민연금관리공단 전산망에 조회해 보았으나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DJ “대북지원 사법심사 부적절”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민단체와 한나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직접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대북지원과 관련 된 이문제를 사실상 ‘통치행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함에 따라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또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이종남 감사원장으로부터 현대상선 감사 결과를 보고 받은 자리에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향후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 사법심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어서 “(현대상선 대북지원과 관련한 문제로) 남북관계의 좌절이나 이미 확보한 사업권의 파기 등 평화와 국익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철도와 도로 연결사업,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협력 사업에도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북송금의 시기와 과정 등을 종합할 때 현대의 독점적 대북 사업 보장 대가 이외에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뒷돈’의 성격도 점차 짙어지고
있다.
실제로 현대상선이 북한과 경제협력 협약을 체결하기도 전에 그것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러가지 ‘불법적 방법’을 동원해 급하게 거액을 송금한
것은 정상적 거래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현대상선은 회계조작을 통해 당시 북한에 송금한 2235억원의 흔적을 지우려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현대의 북송자금이 정상적인 남북 경제협력 성격이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4천억원 대북지원의혹 일지> |
△2002년 9월25일=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 국감서 4천억원 대북지원 의혹 제기 △9월26일=이근영 금감위원장 “4천억원은 운영자금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며 현대 상선건과 같은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 계좌 추적권이 없다”고 밝힘 △10월3일=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4천억원 대북 송금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 △10월4일=엄낙용 전 산은 총재 “이근영 금 감위원장이 `현대 대출, 청와대 한광 옥 실 장 지시” 주장 △10월7일=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 엄낙용 전 산은총재 명예훼손 고소 △10월14일=감사원, 산업은행 감사 착수 △11월4일=한광옥 최고위원, 엄낙용씨에 대 한 고소 취하 △2003년 1월8일=한나라당, 4천억원 지원 설 포함 7대 의혹 특검 및 국정조사 요구 △1월13일=정몽헌 회장, “현대상선이 유동 성 문제로 자금을 빌렸던 것이며 대출금을 갚았다”고 말함 △1월18일=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의혹사 건에 대한 검찰의 소신있는 수사 주문 △1월28일=현대상선, 4천억원 대출 관련 자 료 감사원에 제출 △1월30일=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2235억 대북 송금 확인 김대통령 “사법심사 부적절” 표명 △2월2일=북한, “송금시비 반통일 불순의 도” △2월3일=검찰, ‘대북송금’ 수사유보 발표 △2월10일=국회대정부질의 한나라당 ‘특 검’요구 盧, 北송금 2단계 해법 제시 △2월11일=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 2억달러중 1억 5천만달러 “김정일 계좌 직접송금” 주장 |
시민단체 반응
참여연대, 함께하는시민행동,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들은 대북송금이
‘용인될 수 있는 초법적 행위’인지, 여부를 대통령 혼자 결정하겠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반민주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우선 실체적 진실을 공개한 이후에 국익 때문에 공개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선 충분한 근거를 들어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6일 김 대통령의 대북 송금 해명 거부 발언과 관련, 논평을 발표해 “대통령의 발언은 일의 특수성을 내세우면 변칙이나 불법도
용인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며,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과 발상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최대한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전제로 실체적 진실과 불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진 후에 국익 침해 요소에 한해 충분한 근거를
들어 비공개 에 대한 양해를 국민들에게 구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국정조사나 특검제 등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께하는시민행동도 논평을 통해 “김 대통령의 ‘전모공개 거부’ 의사 표명은 이번 사건의 이면에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음을 간접 시인한 결과로 국민적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을 뿐”이라면서 “그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과 분노 역시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경실련은 지난 4일 검찰의 ‘수사 유보’ 결정에 대해 비판 성명을 발표,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 문제는 대기업에 대한 은행의 금융대출의
공정성 및 투명성 문제를 넘어서서 대북지원의 투명성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면서 “이 문제의 정상적 해결은 이후 남북대화의 좋은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김 대통령의 실체 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盧, 北송금
2단계 해법 제시
현대상선 대북송금 파문이 점차 커짐에 따라 여·야 각 정당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10일 특검제 강행
방침을 재확인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은 ‘선 국회진상 파악 후 검찰(또는 특검) 수사’라는 2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노 당선자 측은 현정부가 이번 사건에 대한 의혹을 해소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민주당 김원기 고문은 1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국회에 기구를 구성, (관련 당사자를) 신문하는 장을 만들어 1차적으로 진상규명을 하고 남북관계에 결정적으로 지장을 줘선 안될 부분은 비밀로
하되 국민 앞에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며 “진상규명 과정에서 도저히 수사권 발동없이 사건 해결이 안되겠다고 여야가 뜻을 같이 하면 특검이든
일반검찰이든 수사해도 늦지 않다”고 견해를 밝혔다.
노당선자의 한 핵심측근도 이날 “이 사건을 누가 주도했고 얼마가 건네졌으며 어떤 경로를 통해 전달됐는지에 대한 실상이 명백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 노당선자의 뜻”이라면서 “구체적인 실정법 위반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가 조속히 상임위나 특별위에서 관련 당사자들의 증언을 듣고 사안의 전모를 파악한 뒤 통치행위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면서 “만약
통치행위라면 여야 합의를 통한 정치적 해결이 가능하겠지만 통치행위가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특검을 통해 진상이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밝혀 1차
국회 진상 파악 후 2단계에서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으로 가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민주당도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간부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세균 정책위의장은 “임시국회 회기내에 해법을 찾으면 될 것”이라며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때 모든 것을 투명하게 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이 있었으나 이젠 남북관계가 진전된 상태인 만큼 이 문제를 잘 풀면
대북정책이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야당측의 협조를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민주당에서 특검을 유보하고 검찰 수사 방침을 타진해온 데 대해 “특검을 회피하기 위한 정략적 발상”이라고 반발하며 이번 임시국회
회기내 특검법안 관철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관련 핵심 의혹당사자들이 해외로 도피할 경우 실체적 진실 규명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임동원 특보,
김보현 국정원 3차장,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회장 등 6명에 대한 출국금지요청서를 검찰에 제출키로
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국회에서 박희태 대표권한대행 주재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특검실시를 요구하고 있고,
진정한 개혁과 정상적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노당선자가 하루속히 ‘특검수용’이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한편 한나라당은 국회 법사위에서 특검법을 처리하고 오는 17일 본회의에서 특검법안을 표결처리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반면 민주당은 이 경우 실력
저지도 불사한다는 방침이어서 여야간 물리적 충돌도 예상된다. 따라서 4천억 대북지원 의혹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은 새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