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나던 그 시절 그리움
박동규의 행복했던 기억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
근사한 이벤트에 값비싼 선물을 받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겪게되는 작은 행복에 가슴저린 기억은 많다. 추운 겨울 군고구마를 가슴에 사안고 오던 아버지, 비오는 날 마중 나온 어머니, 자전거를
태워주던 형….
이러한 소박한 행복을 문학평론가 박동규 교수는 수필집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에서 어린 시절 경험담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시인 박목월의
장남으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석·박사를 지내고 현재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박 교수는 ‘한국현대소설의 비평적 분석’
‘현대한국소설의 성격’ 등의 논문집과 ‘당신이 고독할 때’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오늘 당신이라 부를 수 있는 행복’ 등 다수의
수필집을 발표했다.
그간 수필집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사람냄새’는 박 교수 작품의 영원한 테마며 원천이다.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에서도 소소한
인간살이에서 느껴지는 소박한 인정을 52편의 짧은 이야기들로 담아낸다.
재미난
에피소드, 흑백사진 눈에 띄어
‘그땐 야박하지 않았어요’ ‘낡은 반코트를 입고 다녀도’ ‘작은 여분의 행복’의 3장으로 이루어진 수필 안에는 동네 아이를 살린 인민군
소년병, 전쟁 고아를 도와준 군고구마 장수,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파편 속을 뛰어다닌 어머니, 물건 훔친 아이들을 용서해준 구멍가게 아저씨
등 저자의 기억 속 ‘그때 그 사람’들이 숨을 쉰다.
“야박하지 않았던 사람들 속에서 나는 거짓없이 자라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 저자는 “그런 따뜻한 정이 왜 지금은 사라지고 없을까”라며
아쉬워한다.
재미난 에피소드도 눈에 띈다. 새벽녘 연탄을 사러 갔다 가게 부부의 사랑장면을 목격하고 놀라 달아난 이야기, 비쩍 마른 어린애에게 얻어터진
근육질 총각 이야기 등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장면들도 펼쳐진다.
저자는 1940∼1960년대를 거쳐온 세대라면 충분히 공감할 향수 어린 오브제도 곳곳에 배치했다. 유일한 간식거리였던 찐쌀, 노란 네모난
곽 해태 캐러멜, 검정 운동화 등 그 자체만으로도 추억을 곱씹기에 충분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군데군데 삽입된 흑백사진도 아련한 그리움을 극대화하는 데 일조한다. 의도한 것인지 출판상 제약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선명하지 않은 빛깔은
오히려 추억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행복했던 기억들의 힘으로 오늘도 살아갑니다”라는 저자의 독백처럼 독자에게도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살아갈 힘을 불어주려는 암묵적 의도가 숨어있다. 단순한 과거의 나열이 아닌 사랑과 우정, 인정을 내포한 이야기들은 사회가 너무 메말랐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기에 충분하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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