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들은 국제연대를 통해 희망의 씨앗을 심으려 한다. “한국에서 노점상이 고통을 당하면 케냐와 페루, 인도를 비롯한 전 세계 노점상들이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 함께 행동할 것”이라는 케냐에서 온 어느 노점상의 다짐은 그들의 연대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준다.
한 평 공간의 자유는 없다
노점상은 신자유주의 경제가 낳은 사생아다. 빈곤의 굴레에서 몸부림치며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 노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계천 복원사업과 함께 이들 노점상들은 생존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용역에 의한 강제철거가 시작된 것. 요즘 청계천은 빼앗으려는 용역과 좌판을 펼치려는 노점상간에 피말리는 전쟁중이다. 청계천 전체 노점 1,000여개 중에서 장소의 한계 때문에 동대문운동장 내부로 옮긴 노점상은 40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 철거만이 대안인 서울시를 볼 때 나머지 600여개 노점상들에게는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3월16~19일 열린 국제노점상연합 서울대회 각국 대표 참가자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노점상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폭력 탄압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공통 현상이었다.
아프리카 잠비아 노점상 대표 엘비스 치살라 씨는 “비공식 노동자들, 특히 노점상에 대한 단속과 구속이 줄잇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빈곤축소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선 노점상들을 탄압하는 등 정책과 실천 사이의 괴리가 크다”고 비판했다.
케냐 대표로 참석한 샤를레스 씨는 “최근에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만 2명의 여성 노점상이 경찰 폭행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그 중 한 명은 임신부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케냐는 지난해 노점상 탄압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한다. 샤를레스 씨 자신도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페루 기니 등 15개 참가국 대표 대부분은 이처럼 노점상에 대한 폭력단속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합법화 이룬 인도와 가나
정부와 노점상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나라도 있다. 대표적인 나라로는 인도를 들 수 있다. 인도는 정부 경찰 가게주인 노점상 등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 대화를 통한 대안을 마련했다.
인도는 현재 노점상을 합법적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보험 신용 교육 보육 등 다양한 혜택을 보장하고 있다.
인도노점상연합 사무총장 싱 씨는 “1,000만명이 노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노점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나서야 대화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인도는 도시 인구의 50%가 넘는 저소득층 대부분이 노점을 통해 필수품을 구입하고 부유층도 또한 50% 이상이 노점을 이용한다고 한다. 뭄바이에서만 75억 루피(약2,000억원) 정도의 야채와 과일이 노점에서 거래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나도 인도를 거울삼아 정부와 끈질기게 대화를 시도한 끝에, 최근 시의회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일부 선진국의 경우도 노점상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면서 풍물시장을 중심으로 노점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재정자립, 토산품 판매로 해결한다”
국제노점상연합은 노점상 합법화의 유일한 대안을 조직화라고 믿는다. 지역 노점상 단체 조직부터 출발해 국가적 조직화를 통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조직의 힘으로도 모자랄 경우 국제노점상연합이라는 국제조직이 전면에 나서 노점상의 권리확보를 위해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국제노점상연합은 그러나 재정자립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단체는 소위 포드펀드라는 초국적 자본의 지원을 받고 있다. 국제노점상연합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많은 재정이 들어간다. 이번 행사만 해도 포드측으로부터 5만달러를 지원받았다. 재정 자립은 국제노점상연합의 자주성과 더불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순수성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 지난 3월17일 국제노점상연합 제1차 총회에서 초대 의장으로 선출된 김흥현(전국노점상연합 공동의장) 씨는 “토산품과 특산물 판매 이윤을 통해 재정자립을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자기 나라에는 없는 다른 나라 특유의 물건들을 들여와 판매한 수익금으로 충분히 단체의 재정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 단체는 이번 총회를 통해 집행부를 뽑고 모양새를 갖춘 후 첫 공식 활동으로 총회 하루 전인 3월15일 전격 구속된 전노련 이필두 공동의장 석방 촉구 탄원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노점상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전세계적인 연대 활동이 바야흐로 닻을 올린 것이다.
국제노점상연합은 지난 2002년 11월14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름다운 해변 도시 ‘더반'에 모인 세계 20여개국 약 50여명의 노점상과 NGO활동가들에 의해 발족됐다. 현재 40여개국 100여개 조직이 참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