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지루한 쇼
청춘·복고물의 어설픈 짜집기, 억지웃음 강요하는 ‘쇼쇼쇼’
올해 최악의 영화 강력한 후보가 벌써 등장했다.
유준상, 박선영 주연의 ‘쇼쇼쇼’가 바로 문제의 작품. 이 영화는 전형적인 충무로 코미디 복고물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갱스 오브
뉴욕’ ‘로드 투 퍼디션’ ‘친구’ 같은 사실적 시대물은 당연히 아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 ‘품행제로’ 풍의 달콤하고 과장된 판타지
복고다.
때문에 당대 묘사의 정밀함과 사실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시대적 특수성의 포착은 필수적이다. 미니스커트,
나팔바지, 통금, 디스코 음악, TBC의 인기 프로그램 ‘쇼쇼쇼’ 등 1970년생인 감독이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서 떠올렸을 법한 예쁘고
막연한 복고 코드들이 영화 전반에 깔렸다.
하지만, 이전의 복고영화에서 이미 눈에 익은 아이콘이라 다소 진부한대다 정서 표현에 실패해 애틋함은 찾기 어렵다. 흑백처리라는 안일한 연출
방법만으로 추억이 되살아날 수는 없다. 결정적 문제는 복고 코드들이 웃음, 스토리, 볼거리, 정서적 자극, 어느 쪽과도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소재는 참신한 편이다. 물론 최악의 영화 후보작답게 소재적 장점조차 전혀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의미는 없다. 1970년대 최초의
바텐더라는 아이템을 발전시키기 위해 감독은 복고물에 청춘물을 섞었다. ‘칵테일’ ‘코요테 어글리’ ‘토요일 밤의 열기’ 같이 가진 것은
없지만 꿈을 좇는 청춘의 뜨거운 열정과 달콤새콤한 사랑을 접목시키겠다는 것이 감독의 의도다. 진부한 형식이지만, 확실히 매력은 있다. 하지만,
의도는 머릿속 구상에서 끝난다.
우왕좌왕 산만한 드라마
‘쇼쇼쇼’는 신인감독이 가장 범하기 쉬운 전형적 실수를 극심하게 보여준다. 신인감독은 촬영 시간과 분량의 적정선을 맞추는 감각이 부족한데다,
만들고 싶은 에피소드들은 넘쳐나기 때문에 버려지는 부분이 많기 마련이다. 런닝타임에 맞춰 편집하다보면 스토리를 좇아가기 힘들 정도로 가위질을
심하게 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쇼쇼쇼’도 상영된 영화에서 찾을 수 없는 스틸컷이 몇몇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촬영만 하고 활용하지 못한 장면이 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감독이 머릿속에서 그렸던 영화의 흐름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고, 드라마는 핵심 없이 우왕좌왕하게 된 것이다.
왜 등장했는지 존재가치 조차 찾기 어려운 캐릭터들은 소음 수준의 대사를 떠들면서 자기들끼리 키득거린다. 기존의 복고물과 청춘물을 엉거주춤
흉내내다가 어설프게 미싱을 돌리는 여공의 아픔을 집어넣는가 하면, 돌연 주인공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눈물 흘리고, 유준상의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뜬금없는 폭로에까지 이르면 짜증은 극에 달한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는 영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화려한 칵테일 쇼를 보여주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면 오히려 낫다. 바텐더 수련과정
마저 흐지부지 자취를 감추었다가 마지막에서야 슬쩍 나오는 형편이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기대했던 클라이막스의 칵테일 쇼도 볼거리를 제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거북한 캐릭터, 밋밋한 연기
좋은 연기란 항상 좋은 연출과 시나리오의 토대 아래서 나오는 법이다. 캐릭터 자체가 유치하고 불분명하다 보니 연기들도 하나같이 민망한 수준이다.
대부분 인물이 스토리와 관계없이 억지웃음을 짜내기 위한 소도구에 불과하다. 주연 남녀배우인 유준상과 박선영의 연기는 밋밋하다. 유준상은
브라운관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매력이 별로 발휘되지 못했고, 박선영도 드라마 ‘화려한 시절’보다 개성 없이 표현됐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에서 춤선생 제비로 현란한 코믹연기를 펼쳤던 정은표도 지나치게 거북한 캐릭터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던 듯 하다. 배바지와
큰 빛, 쉴새없이 머리를 맞고 여자만 보면 침흘리는 인물 설정은 아무리 좋은 연기력을 가졌어도 관객을 유쾌하게 만들기 어렵다. 코미디 영화의
감초 윤문식의 역할이 거의 없었던 것도 안타깝고, 비록 1970년대 허참이 아닌 2000년대 허참의 모습이었지만 특별출연한 허참을 제대로
살라지 못한 점도 아쉽다.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베이 시티 롤러스의 ‘새터데이 나이트’ 도나 서머의 ‘핫 스터프’ 등 추억의 팝송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이장희의
‘그건 너’ 송대관의 ‘해뜰날’도 귀를 즐겁게 해 준다. 그렇다고 음악이 영상과 일체를 이루어 흥겨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즐겁지만, 음악 몇 곡 듣자고 시종일관 억지웃음을 강요하는 영화를 참아낼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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