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를 기치로 내건 현 정부는 사상
유례 없이 여성장관을 4명이나 등용시켰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러 국정영역에도 여성들이 중용되고 있다.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여성의 수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그렇다고 여성들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긍정적인 수준으로 향상됐을까? 대답은 ‘NO’다. 일자리를 가진 여성
가운데 70%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차별을 감내하고 있다. 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들이나 손자에게 호주의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오늘도 수많은 여성들은 성매매 현장에서 하루를 힘겹게 견디고 있다. 여성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 여성정책 상위 계층에 초점
‘참여정부’는 양성평등한 가족정책 시행을 목표로 호주제 폐지 대책기구를 설치하겠다고 한다. 육아휴직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사업주에게 지급되는
육아휴직 장려금(현행 20만원)도 현실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보육정책에 있어서 장애아와 만5세 아동에게는 무상보육을, 0세부터 4세까지의
아동에 대해서는 보육료를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한다. 여성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각종 차별 시정 정책을 펴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가령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실시되고 있지 않은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일부조항(교육, 배치, 승진, 임금, 정년, 해고조항)의 적용을 확대하거나,
여성의 고용촉진기반 구축 방안으로 육아와 근로의 병행이 가능한 여성친화적 시간제근로의 풀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성매매 피해자에 대해서는
무료 법률구조사업과 현장 상담센터 확충, 자활지원사업 확대 등을 통해 피해자 구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여성공무원 임용목표제도 도입하겠다고
한다.
호주제 폐지와 성매매 피해자에 대한 지원 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러나 일부 여성, 혹은 국가 경제 진흥을 위한 것이지 여성 전체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
사회진보연대의 송강현주 씨는 3월3일 열린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전략과 여성’ 토론회에서 “여성인적자원의 개발과 활용 정책은 교수,
대기업 직원, 공무원 등과 같은 제한된 범위의 상위 계층 여성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직장생활 꼬드기고 대우는 노예급
모성보호를 위한 정책도 마찬가지다. 2000년 제정된 모성보호법의 혜택은 여성노동자 중에서도 고용보험에 가입된 30%에게만 한정된다. 나머지
비정규직 여성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3명에 불과하다.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2.1명에 훨씬 못 미친다. 이러한 추세라면
2075년에는 경제활동인구가 현재의 절반으로 줄게 된다. 노동력 부족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송강현주 씨는 이런 위기감에 정부가 ‘직장과 가정의 양립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충분히 직장에
다닐 수 있다”고 꼬드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라는 약점 때문에 대부분 비정규직에 편입된다. 송강현주 씨는 “성주류화
전략에 따른 여성인력활용에 대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임시직, 일용직, 파트타임직 등의 불안정 노동의 형태이고,
여성고학력 인력의 실업은 늘어가고 있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비정규직 여성들은 사회가 노동자에게 보장하는 대부분의 권리를 포기한 채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1월29일 발간한 ‘비정규노동자 권리침해 백서’를 보면 비정규직 여성 73.2%가 부당한 처우를 호소했다. 결혼이나 출산 등의 이유로 해고를
강요당하고, 생리휴가 등은 엄두를 못 냈다. 시간 외 수당을 받는 경우도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정규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퇴직금도
없다. 산재보험조차 적용되지 않아 일하다가 다쳐도 자신의 돈으로 일당을 ‘까먹어 가면서’ 치료해야 한다. 임금은 정규직의 50∼60%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여성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고자 하는 운동은 ‘노동운동’이 아니라 ‘인권운동’이라 불릴 만하다.
사실 이러한 구조를 만든 것은 국가였다. IMF를 맞으면서 여성들은 일차적으로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정규직 여성들은 그 후 다시 노동시장으로
재편입됐다. 이번에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서비스산업이 급부상하면서 국가 경제에서 여성인력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그러나
그 분야 중에서 여성들을 남성만큼, 아니 노동한 만큼 대접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