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청와대의 인적쇄신과 관련 한나라당이 시끌시끌하다.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주변에는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무리가 있다는 발언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급기야 당내 소장파들의 이상득 의원 퇴진운동으로까지 비화되는 양상으로 발전돼 갔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의 ‘구두 진압’과 이상득 의원의 일본 출국으로 급격히 가라앉는 분위기로 전환돼 가고 있으나 총선 전 공천을 둘러싼 잡음의 앙금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는 7월3일로 예정돼 있는 전당대회를 놓고 또 한차례 ‘권력다툼’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권력 사유화’가 발단
정두언 의원은 지난 6월7일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 주변 일부 인사가 권력을 사유화하는 바람에 국정 운영이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 의원은 입장 발표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A 수석과 B·C 비서관, D 의원을 ‘국정 난맥의 진원지’로 지목하면서 이들을 향해 ‘간신’이라는 표현까지 동원, “대선 승리의 전리품인 인사권을 독식하려고 같이 전쟁에 참가했던 동료들을 발로 차서 고지 근처에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 의원은 A 수석에 대해 “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2인자 행세를 하고 있다”며“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고르고 골라 앉혀 놓은 인물이 대원군을 쫓아내고 또 다른 세도를 부리기 시작한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또 B 비서관은 “이간질과 음해 모략의 명수”라고 주장하면서“노태우 정부의 박철언, 김영삼 정부의 김현철, 김대중 정부의 박지원, 노무현 정부의 안희정·이광재 씨가 있었지만 B 비서관은 이들을 모두 합쳐 놓은 것 같은 세력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D 의원에 대해서는 “부작용이 있어도 권력만 장악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정 의원이 지목한 청와대 A 수석은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일컫는 말이며 B 비서관은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 C 비서관은 장다사로 정무1비서관, D 의원은 이상득 의원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발언을 놓고 당 안팎에서는 ‘순수한 충정’과 ‘권력투쟁’ 등의 시각으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정 의원은 대선직후 인수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쯤 이 대통령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 “몇 명에 의한 정실인사와 권력의 사유화로 인해 이대로 가면 이명박 정부가 실패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또 지난 3월22일 공천자 55명과 함께 ‘이상득 부의장 사퇴’를 촉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55인을 생육신으로 불러 달라”는 말도 남겼다. 즉, 정 의원은 ‘자신은 오로지 대통령과 당을 위해 직언을 한 것 일 뿐 권력과는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으며 이번 ‘권력 사유화’ 발언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인수위 기간동안 파워게임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정 의원의 행동은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내 권력지형 요동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발언이후 한나라당내 권력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밖으로 드러난 형태로만 본다면 이상득계와 反이상득계로 크게 묶을수는 있지만 反이상득계를 조금더 들어갈 경우 이명박계와 소장파, 이재오 전 의원계, 홍준표 원내대표 등 중립 성향 계파 등으로 분류된다. 이상득계는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는 박희태 전 의워을 비롯해 이병석 강석호 의원 등 영남권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이재오 전 의원계로는 안경률 심재철 김용태 권택기 현경병 공성진 진수희 차명진 이군현 의원 등이 포진하고 있다. 또 서울시와 안국포럼 출신인 이명박계로는 정두언 정태근 이춘식 의원 등이 있으며 소장파로는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와함께 새 지도부로 구성된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 주호영 원내수석부대표 등 신주류도 청와대와 당을 향해 확실한 제목소리를 내면서 급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7월 초 물러나는 강재섭 대표 지지 세력과 신지호 김성식 권영진 의원 등도 7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어떠한 형태로는 행동 통일을 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특히 6월11일에는 원외인 김경안 전북도당위원장이, 15일에는 재선의 진영 의원이 전당대회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정몽준 최고위원이 공식 출마선언을 할 경우 후보간 합종연횡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정치적 멘토’로까지 발전
정두언 의원 등 당내 소장파들로부터 ‘2선 퇴진’의 압력을 받고 있는 이상득 의원은 6월1일 안경률 공성진 진수희 의원 등 당내 친이 인사 10여 명과 저녁을 함께 한 자리에서 “인사개입 얘기가 나오는데 나는 인사개입을 한 적이 없다”며“나는 인사에 관여할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으며 전당대회에서도 당연히 중립을 지킬 것이며 관여하지 않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2선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는 소장파 등은 이 의원의 인사불개입 발언을 믿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일부 언론을 통해 이상득 의원이 청와대 안가 조찬회동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국무총리 후보로 이 대통령에게 건의했다는 내용이 흘러나온 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최근 청와대 인적쇄신과 관련 친이상득 인사로 분류되는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유임조짐과 정종복 전 의원의 청와대 민정수석 기용설 등으로 인해 이상득 의원의 인사불개입설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경원 의원도 6월1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의원이 아무리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형이라는 원죄로 인해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정치일선에서 완전히 뒤로 물러서 있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나경원 의원이 대통령의 형이라는 원죄를 발언했듯이 이상득 의원은 이 대통령에게는 ‘혈육 차원을 넘어선 정치적 멘토’로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이 대통령이 이상득 의원에 대한 ‘2선 퇴진론’이 나올때 마다 이상득 의원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총선 직전 정두언 의원 등 소장파 55인이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했을 땐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최근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등으로 비화된 이상득 의원의 정계 퇴진 촉구에는 ‘묻지마식 인신공격’이라며 사실상 무력화 시켰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쇠고기 파문으로 최대 고비를 맞이한 6월9일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안가로 불러 조언을 구했다는 것은 시사바가 크다”며“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을 포함해 몇차례 정치적 위기에서 이 대통령을 구원한 것은 이상득 의원의 역할이 컸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이상득 의원에게 심리적 또는 현실적인 부채를 항상 안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이상득 의원은 일반인들이 가볍게 생각하는 권력자 가족으로 치부하기에는 조금은 그렇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