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둔갑 설화보다 더 기막힌 이야기
친일파가 애국지사로 대접받는 나라 ‘부끄러운 문화답사기’
광복 후 58년이 지났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항일정신
운운하며 호들갑떨던 해로부터 무려 8년이 더 흘렀다. 그러나 일제잔재청산이라는 구호는 사그라지고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친일파를
위한 변명’ ‘더러운 코리안’ ‘더러운 조센징’과 같은 한국을 욕하는 모임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는 왜곡된 사실을 진실인양 받아들이고
올바른 역사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1997년 출간된 ‘부끄러운 문화답사기’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기록문학회(현 다큐인포)가 이처럼 잘못된 세태와
역사를 고발한 책이다. 그리고 2003년 “여전히 변한 것이 없기에” 보완·수정하여 개정판을 발간했다.
농아 화가 김기창 정신도 불구?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혀있는 국립묘지 애국자 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
일생을 항일 독립 투쟁과 민족주의적 삶으로 일관해온 백강 조경환 선생이 타계하면서 남긴 말이다. 국민들은 성지라고 생각하는 국립묘지에는
실제로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이 ‘편안히’ 안장돼 있다. 3·1운동 33인의 한 사람 이갑성, 기독교신문 편집위원을 지낸 백낙준, 3·1운동
참가자 이선근 등이 모두 친일파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미 친일파로 알려진 서정주를 비롯해 유치진과 김기창의 행적도 파헤쳤다. “삶과 작품성은 따로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예술은
시대정신의 반영”이라며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더불어 “죽은 자의 죄는 사하여주는 것이 우리네 인정이라지만 건망증이 너무 심하다”며 결과물만
중시하고 과거의 잘못은 잊어버리는 풍조에 일침을 가한다.
숨겨진
일제 잔재를 파헤친다
‘부끄러운 문화답사기’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답사기의 형식으로 구성됐다. 대전 목포 군산 제주도 등 일제 침략행위와 흔적이 남아있는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하여 기록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역주민, 관계자 증언과 문헌 사진 도표도 삽입했다.
또한 1997년 이후 6년이 흘렀기 때문에 보충된 내용을 ‘뒷이야기’로 따로 묶었다. 2001년 서정주, 김기창 사망을 비롯해 2002년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장기곶 명칭을 호미곶으로 정정한 사건 등 최근 상황이 수록됐다.
한편, 총독부 건물 지반 대형 말뚝 수천 여 개를 시간과 비용을 문제로 제거하지 않은 채 홍례문과 주변 행각을 복원한 사실을 꼬집으며 저자는
한탄한다.
“이렇게 슬그머니 묻어온 숨겨진 이 땅의 일제 잔재는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참으로 답답하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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