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 카이거와 중국의 변화
바이올린 선율 타고 흐르는 애틋한 부성애 ‘투게더’
‘현
위의 인생’ ‘패왕별희’로 유명한 첸 카이거의 신작 ‘투게더’는 중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60년대 문화혁명과 중국사회주의에
대한 성찰의 작가주의를 대표하던 첸 카이거는 ‘투게더’에서 노선을 완전히 달리했다. ‘집으로’ ‘인생은 아름다워’ ‘빌리 엘리어트’ 등과 맥을
같이하는 감성적이고 대중적인 휴먼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첸 카이거의 이런 변화는 영화를 ‘감독의 일방적 예술’로 생각하던 중국 영화계가 상업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경제시장의 개방과 함께 중국 영화계도 산업적 측면이 부각됐다. 첸 카이거와 함께 5세대를 대표하던 감독 장이모우가 최근 대중적 무협영화 ‘영웅’을
제작한 것도 이 같은 시류와 관련이 있다.
중국 감독들의 또 다른 화두는 자본주의다. 왕 샤오슈아이 감독의 ‘북경자전거’, 지아장케 감독의 ‘소무’, 로우 감독의 ‘수쥬’ 등 요즘의
중국 영화들은 근대화 과정의 상실감, 물질만능주의에 의한 소외 등 급변하는 혼란의 시대상을 담은 것이 많다. ‘투게더’ 또한 중국정치사에 희생당한
나약한 개인 대신, 자본주의에 짓밟힌 외로운 개인이 등장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보편적 비판
돈을 얻기 위해 젊음과 사랑을 소비하는 릴리(첸홍)는 중국의 청춘을 상징한다. 겉치장에 집착하고 휴대폰을 통한 공허한 대화로 외로움을 달래는
릴리는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영혼을 파는 외로운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음악을 성공의 수단으로 여기는 유교수(첸 카이거)와 속된 세상과 벽을 쌓고 순수한 예술혼을 간직한 지앙 교수의 대립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비적 캐릭터다. 물론 얻은 것은 물질적 풍요고, 잃은 것은 소중한 인간애와 순수한 가치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에게 미안한 아버지, 여자들마다 접근해 돈을 빼내는 사기꾼, 실력과 관계없이 심사위원에게 찔러준 금액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는 바이올린 대회, 순식간에 도둑맞은 비상금 등은 모두 시대에 대한 혼란과 비판을 담고 있다.
비판은 상당히 보편적이다. 영화는 중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보다는 동화적인 해결을 선택한다. 감독은 불편한 비판과 적나라한 지적보다는
“냉정한 현대인의 삶을 따스하게 해 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첸 카이거는 ‘무언가’를 평범한 아버지의 사랑에서 찾았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아버지를 속물이라고 느끼고 반항하던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헌신적 희생이 성공한 자식을 두려는 욕심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한 무한한 애정임을 깨닫는다. 세속적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믿음이 전형적인 물신주의지만, 영화는 아버지의 그릇된 가치관을 꼬집기보다
위대한 부성애에 감동의 바이올린 선율을 깔아준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들처럼, 첸 카이거도 모순 가득한 세상에 대한 적의를 덮어두고 대중의
감성을 껴안기 시작한 것이다.
신파적
설정, 상투적 주제 아쉬워
시공을 초월하는 휴머니즘은 눈물샘을 자극하고 가슴을 데운다. 적절하게 배치한 유머와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되는 탄탄한 스토리 전개 등 오락적
요소는 빠짐없이 갖춘 영화다. 특히, 마음을 흔드는 아름다운 음악은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사오천(탕윤)이 좋아하는 여배우 사진 속의 김희선과 유교수 부인으로 출연한 김혜리, 하용수가 디자인한 릴리의 한국적 의상 등 한류열풍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아름다운 시절’ ‘박하사탕’ ‘봄날은 간다’의 김형구 촬영감독과 ‘비트’ ‘태양은 없다’의 이강산 조명감독이 만들어내는 조밀하고
아름다운 영상도 훌륭하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선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신파적 설정은 전성기의 첸 카이거의 의식과 감각에 비해 질적으로 낮아진 듯한 느낌을 버리기 어렵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가족주의적인 휴머니즘이나 두리뭉실한 주제 외에 별로 새로운 통찰이 없는 점도 아쉽다. 대중성은 미덕임엔 분명하지만,
영화의 결말처럼 세상과 쉽게 화해하는 첸 카이거의 무뎌진 의식이 한편 씁쓸하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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