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용 ‘물갈이’인사 단행
검찰총장 송광수 대구고검장 임명
사시 13, 14회 좌천인사 반발 거세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개혁이 갖가지 우여곡절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1일 법무부는 검찰총장에 송광수 대구고검장(13회)임명을 비롯해 검찰내 과장급 이상 42개 보직중 38곳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내용은 예측한대로 서열파괴를 가져온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러나 인사 발표 후 검찰내부에서는 반발이 여전해 당분간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평검사 토론회
노 대통령이 사시23회 강금실 변호사(46)를 법무장관에 기용하면서 반발의 불씨를 집혔다. 검찰은 법무장관의 인사가 “파격하다못 과격하다”고
주장하면서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후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진행해온 검찰 인사지침에 대해 검찰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 역시 “검찰의 기강을 무너트리는 일”이라는 것.
급기야 서울지검을 중심으로 한 평 검사들이 이번 인사에 대해 ‘밀실인사’라는 점을 들어 집단 항의 성 성명을 발표했다.
결국 사태수습은 강 장관의 손을 떠나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섬으로써 일단락 됐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보좌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선
평검사들과의 직접토론을 제안했다. 노무현식 담판 정치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115분 동안 진행된 토론회는 검사들과 대통령의 치열한 신경전 속에서 진행됐다. 평검사들은 노 대통령을 ‘토론의 달인’으로 지칭하며 검사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줄 것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비아냥 거리는 것으로 들린다”며 불쾌한 감정을 나타냈다.
이 자리에서 검사들은 “검찰인사에 필요한 제도적 시스템을 갖춘 후에 인사를 단행할 것”과 “검찰 인사권을 법무부 장관에서 검찰총장에게 이양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검찰 지도부를 신임할 수 없음”을 전제로 “검찰인사는 법적으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이라며
강행할 뜻을 분명히 했다.
당일 토론회를 지켜본 김각영 검찰총장은 “토론회에서 대통령을 비롯해 후배 검사들까지 검찰 지도부에 대한 불심임을 표명해 더 이상 검찰조직을
이끌 수 없다”며 사퇴했다.
검찰고위급 인사 단행
법무부는 검찰총장에 송광수(51 13회)대구고검장을 선임한데 이어 검찰내 과장급 이상 42개 보직가운데 역대 가장 많은 38곳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검찰 고위 간부 인사는 ‘세대교체를 통한 서열파괴’와 ‘과거 문제와 연관된 인사 청산’이라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인사 발표 후 공보관을 통해 “검사장들의 능력과 전문성을 십분 참작하고 지역 안배에도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핵심 보직인 서울지검장과 대검 중수.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자리가 전임자보다 2~4기가 낮은 젊은 간부들로 채워졌다. 또 후배 고검장
밑에 선배 고검차장을 배치한 파격도 나타났다. 지역안배에 신경을 썼지만 노 대통령 연고지인 부산.경남(PK) 출신 검찰 간부들이 약진한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예상대로 사시 12~14회가 맡던 고검장직에는 15~16회가 기용됐고, 14~16회가 맡았던 일선 지검장에는 14~19회가 임명됐다. -
<표참조>
한편, △이용호게이트 부실수사 △서울지검 구타사망사건 △정권 고위층과의 부적절한 접촉 등으로 문제가 된 인사들은 대부분 요직에서 배제돼
‘문책성 인사’도 보였다.
파격 인사도 나왔다. 장윤석(14회) 법무부 검찰국장이 초임 검사장이 가는 서울고검차장에 기용됐고, 유창종(14회) 서울지검장이 대검 마약부장에
임명된 것. 한 기수 후배인 서울고검장과 대검차장의 지휘를 받게돼 직접적인 퇴진 압박을 받게된 것이다.
호남 출신인 정충수(13회).조규정(15회).박종열(15회)검사장은 모두 초임 검사장이 가는 자리로 좌천 인사를 당했다.
PK 약진, 호남 몰락
새 검찰 수뇌부를 보면 청와대와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지역 안배에 고심한 흔적이 나타난다. 경남 출신인 송광수 검찰총장 내정자에다 호남 출신인
김종빈 대검차장이 뒤를 받치고 있다. 검찰의 꽃인 서영제 서울검사장은 충남 출신이고 17회 동기들 중 가장 먼저 고검장급으로 승진한 정상명
법무부차관은 경북 출신이다.
그러나 검사장 이상 간부 38명 중 송 총장내정자를 비롯한 간부 12명이 PK출신이었다. 새로 승진한 검사장 6명 중 세명이 PK 출신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검찰 주변에서는 “부산 출신 청와대 참모들이 검찰 인사를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어 서울, 경기 출신이 8명으로 뒤를 이었고, 호남 출신은 7명이었다. 호남 출신의 경우 자리의 면면을 볼 때 김대중 정부 때보다 검찰
내 영향력이 퇴조했다는 평이다. 이 밖에 충청 출신은 6명, 대구, 경북은 4명, 제주 1명 등이다.
이처럼 서열을 역전시킨 파격인사에 대해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앞으로 검찰 인사가 이런 식으로 계속될 것인 지 궁금하다”고 말했으며
일부 검사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상기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지검의 한 평검사는 “검사장 승진이 22기까지 내려갈 경우 선배나 동기 검사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증폭돼 상당한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는데 19기선에서 그쳐 다행”이라며 “강 장관 이 어느 정도 검찰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고 안도했다.
좌천 검사장들 반발로 인사 후유증 우려
‘대학살’이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송광수 검찰총장 내정자의 사시 동기인 사시 13회와 14~15회 고위간부들을 대거 한직으로 좌천시킴에
따라 이번 인사의 직격탄을 맞은 이들 고위간부들의 움직임과 일단 잠복단계에 들어간 검찰내부 반발기류 등 귀추가 주목된다.
사시 13~15회 인사들 중 인사 발표를 전후에 12일 현재까지 4명이 사퇴의사를 밝혔다. 명노승 법무부 차관이 인사발표에 앞서 사퇴한
것을 비롯해 발표이후 김영진(14회 대구지검), 김규섭(15회 수원지검) 지검장이 사퇴했으며, 12일에는 조규정(15회 광주지검)지검장이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 외에도 인사후 사퇴의사를 밝힌 검사장들도 있었지만 후배들의 만류로 당분간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추이를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또 이들 중 몇몇은 후배 검사장의 ‘추월’에도 불구, 검찰에 남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 인사후유증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송 총장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새 정부 검찰 체제를 본격 출범시킬 경우 무엇보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검찰조직에서
벌어진 인사 파동의 후유증 치료에 주력해야한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대검의 한 부장검사는 “현 검찰 수뇌부가 이번 인사파동에서 구시대 적 인물로 매도당하고 공개적으로 불신 대상이 된데 대해 상당히 섭 섭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순순히 자리를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명예롭게 퇴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