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신고 다음날인 지난 6월27일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신고한 핵시설 관련 검증부터 6자회담국의 입장이 서로 다른 가운데 북한이 과연 핵물질 포기 후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까지 완전 폐기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 등으로 한반도 비핵화까지는 여전히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월10일 한국으로 귀환한 성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에게 북한 핵시설에 대한 신고와 검증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북핵 관련 문서를 제공했다. 여기에는 1986년 9월 5MW 원자로를 가동하기 시작해 89년과 2003년, 2005년 세 차례동안 재처리를 거친 기록 등 분량만 해도 7개 박스에 1만8000쪽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신고 단계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 플루토늄의 사용처에 대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플루토늄 총량을 바탕으로 핵탄두 수를 추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6자회담 등 핵 폐기 본격화
북한으로부터 핵시설 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미국은 한·미간 직항로 일반 여객기 비즈니스석을 통해 본국으로 호송했으며 원자로 및 재처리공장 가동 일지에 대한 분석 작업에 돌입했다. 이와함께 미 행정부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토록하는 요구를 의회에 전달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제출한 핵시설 관련 서류를 검증하는데만 최소 1년여의 기간이 필요하다”며“그러나 검증과정에서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될 경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3단계, 즉 핵 폐기 논의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이번 북핵 신고의 성실성과 정확성이 확인된다면 북·미간, 남·북간신뢰를 한 단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긴장 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에따라 지난해 3월19일부터 21일까지 중국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魚?)에서 개최된 제6차 6자회담이 휴회형식으로 종료된 6자회담 재개도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이와함께 지난해 10·3 합의에서 명시된 6자 외교장관 회담까지 7월 하순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을 계기로 개최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뿐 만 아니라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 등을 위한 냉각탑 폭파 장면을 전세계를 향해 생중계를 단행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는 것에 비춰 볼 때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오는 8월8일 북경 올림픽 참가까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2단계(핵 신고 및 불능화)의 마무리와 함께 사용후 핵 연료봉 폐기, 미사용연료봉의 처리 등 본격적인 핵 폐기 논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 보유 핵 무기가 관건
북한이 지난 2007년 2월13일 제5차 6자회담에서 도출된 2·13합의(핵시설의 폐쇄 및 봉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 복귀,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 작성 협의, 중유 5만 톤 긴급 지원)와 같은해 나온 10·3합의(영변 핵시설 등 불능화 완료, 모든 핵 프로그램의 정확한 신고, 중유 100만 톤 지원) 후 8개월여 동안 핵신고 등에 미온적인 태도에서 적극적이고 신속한 행동으로 나왔다. 여기에는 △미 차기 정부와의 협상카드 운용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북 현 체제 보장 등의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난해 합의한 10·3 이행사항을 지연하자 미국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북한의 핵 폐기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 양에 대해 북한과 미국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제출한 핵관련 신고서에 따르면 핵무기 제조를 위한 무기급 플루토늄의 총량을 30Kg 가량을 추출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미국은 여전히 50Kg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같은 시각차로 인해 향후 진행될 검증과정 및 3단계, 핵 폐기 논의 등이 현 부시 정권내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따라 이미 합의한 바 있는 핵시설 관련 신고를 차기 미 정권과의 협상용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와함께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비핵 개방 3000구상’을 전면으로 거부하는 것 역시 핵신고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에게 6·15, 10·4 남북정상선언 이행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으나 이명박 정부가 어느 합의사항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통미봉남(通美封南)’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향후 핵 폐기 등과 관련 핵 무기 폐기에 대한 북·미는 물론 관련국들간의 입장차 조율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미국측 주장에 따르면 북한은 2003년 수조에 보관중이던 8000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얻은 27Kg의 플루토늄과 2005년 사용후 재처리해 13Kg의 플루토늄을 추가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플루토늄의 양은 핵 폭탄 10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북한이 과연 핵시설에 이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 무기까지 폐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가 다수다. 즉 북한은 파키스탄처럼 현 체제보장과 함께 핵 무기 보유 인정까지를 계산에 넣고 있으나 미 부시행정부는 벌써부터 우크라이나 모델의 적용 여부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 물질 등이 반드시 폐기대상에 포함돼야 하며 우크라이나에서처럼 관련 핵시설은 물론 핵 물질까지 미국이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중에 있다.
남북정상합의 실행이 우선
북한이 이처럼 미국 등에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고 있는데 비해 남한에게는 압박과 비난전을 계속하고 있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관련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이명박 정부는 이렇다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지난 6월22일 남북군사회담 북측 대변인 담화를 통해 ‘3통(개성공단 등 통행시간 오후 10시로 확대, 통관절차 간소화, 유무선 통신 확대 등) 불이행을 문제삼아 개성공단·금강산 사업 중단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이 ‘3통’문제를 언급하면서 개성·금강산 사업 문제까지 들고 나온 것은 심상치 않은 징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북핵 6자회담에 맞춰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는 원칙만을 고집하고 있어 남북간 긴장완화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동안 이뤄논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으로 인해 원점으로 되돌아간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남북간 대화의 키를 쥐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대북 쌀비료 제공을 계기로 남북대화를 풀어간다는 계산을 하고 있지만 이같은 생각만으로는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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