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戰속 이라크 전쟁 - 노무현의 전쟁지지 '득'과 '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세계적인 반전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개전직후 전쟁지지를 선언하고, 공병대와 의무병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미외교에 있어서 ‘수평관계’를 강조해왔던 노 대통령의 파병 결정이 향후 국정운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북핵 문제와 경제 등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강조하는 등 현실론을 내세우며 대국민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이해를 구하기에는 명분이 없는
듯 보인다.
더군다나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섰던 노사모와 개혁당 등 핵심 지지층이 반전 운동에 참여해 정부를 압박하고 있어 노무현
대통령의 운신의 폭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盧 전쟁 직후 지지발언 성급했다”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은 미군이 이라크에 공격을 개시한지 2시간 45분이 흐른 오후 2시 25분 청와대에서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라크 사태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함에 따라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본다”며 사실상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국내에서 반전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국내의 사정도 잘 알고있으나 어떤 것이 국익에 바람직한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해 전쟁지지를 국민들이 이해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정부는 담화문 발표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긴급소집 이라크
전쟁 지지와 700명 가량의 공병대와 의무대 파견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 “토론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토론을 중요시하는 노 대통령이 이번에는 여론 수렴 등을 간과한 채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각계 각층 반전운동 확산
정부의 전쟁 지지와 파병 방침이 알려지자 그동안 반미, 반전 시위를 주도해온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게다가 여야 개혁성향의 국회의원을 비롯해 교수 학생 종교인 연예인 등 사회 각계 각층의 시민들이 ‘침략 전쟁 파병’을 반대하는
시위 대열에 참가하고 있다.
개전 직후 각 단체는 일제히 성명을 내고 “노무현 정부의 파병계획을 비난하고, 이라크에서의 친미정권과 원유확보를 위한 미국의 침략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
3월26일 현재까지 반전운동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50여개 시민 단체, 각 대학 총학생회, 진보적 교수, 개혁국민정당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촛불시위로 노 대통령의 지지층을 결속시켰던 여중생 범대위와 대선 당시 노대통령 지지연설을 했던 가수 신해철 씨 등 연예인들도 전쟁을
반대하는 국회와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시위에 참가한 윤도현 씨는 “내 이익을 위해 남의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전쟁을 용납할 수 없어 시위에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네티즌들도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표시(☜☞)를 단 항의메일을 인터넷으로 청와대와 백악관에 발송하고 국회와 청와대의 게시판에 파병 반대하는
글을 올리는 등 활발한 사이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전/평화를 생각하는 네티즌 모임’ 게시판에 ‘진솔’이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은 “개혁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기뻐했는데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실망했다”며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노 대통령은 파병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노 대통령 지지층 반전
대열 합류
무엇보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반전 성명을 채택한 것은 다소 의외이자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다.
노사모는 지난달 24일 투표를 통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 중단과 참여정부의 파병계획 취소를 촉구하는 반전평화성명을 공식 성명으로 채택했다.
노사모는 성명에서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은 세계 평화를 바라는 인류의 염원을 짓밟는 행위로 즉각 침략을 중단해야 하고 참여정부
역시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와 국익에도 도움되지 않는 전쟁 지지와 파병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사모는 또 “국회는
파병동의안을 부결시키는 것이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며 시민들도 반전평화에 대한 지지와 행동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개혁당의 김원웅 대표는 의원들의 파병 동의안 저지를 이끌며 노 대통령의 결정에 제동을 걸고 있다.
국회 파병 동의안 연기
반대 여론이 거세짐에 따라 지난달 25일 당초 통과가 예상됐던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의 국회 처리가 연기됐다. 한나라당 이규택 원내총무와 민주당 정균환 원내총무는 이날 본회의 개회에 앞서 총무회담을 갖고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 표결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민주당 정균환 총무는 “본회의가 시작되기 직전 한나라당 이 총무가 파병안 처리연기를 제안해, 민주당이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이날 한나라당의
이 총무는 파병안 처리 연기사유와 관련, “노무현대통령이 먼저 파병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을 설득하고 민주당도 당론을 통일시키면 그때 가서 처리하자는
게 우리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총무는 또 “우리 당은 국익을 대변해 파병 찬성을 당론으로 정리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달 23일 17명에 불과했던 이라크전 파병 반대 의원수가 26일 현재 48명으로 늘어나는 등 국회의원들의 반대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회에서 파병 반대에 서명한 국회의원은 모두 48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파병을 반대하는
의원은 △한나라당 권오을 서상섭 김부겸 김홍신 안영근 전용학 전재희 조정무 이성헌 이재오 김영춘 박명환 원희룡 이부영 박승국(15명) △민주당
강운태 정범구 조한천 김성호 오영식 송영길 임종석 김근태 천정배 정철기 배기운 김충조 김태홍 김경천 김희선 이미경 조배숙 최영희 박인상 이강래
이창복 이호웅 심재권 신기남 이재정 김영환 설 훈 송석찬 조성준 이희규 이해찬(31명) △개혁당 김원웅 △무소속 오장섭 의원 등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파병에 찬성하는 의원들에 대해서 내년 총선에서 낙선 운동의 자료로 쓰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총선을 의식한 일부
의원들의 파병 반대 가세가 예상된다.
이라크전이후 한반도 위기설과 수출 차질로 인한 경제불안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참여정부’ 깃발을 내건 노무현 정부가 반전,
파병 반대를 주장하는 국민들의 반발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