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 것 중 하나는 재벌 지배구조 개선이다. 재벌 개인 또는 가족이 거대한 그룹의 경영권을 쥐고 흔드는 통에 각계는 멍든 경험도
많다. SK글로벌 사태 역시 재벌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대적 M&A’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SK㈜ 최대주주가 영국계 펀드인 크레스트 시큐러티즈로 바뀌어 더욱 그러하다.
M&A나 그린메일 가능성은?
영국계 펀드 크레스트 시큐러티즈는 지난 3월26일부터 4월2일까지 SK주식 1,096만주(8.64%)를 매입, 종전 1대주주인 SKC&C의
지분율 8.49%를 초과해 새로운 1대 주주로 올랐다. 크레스트 측은 공시를 통해 이번 지분 매입의 목적을 ‘수익창출’이라고 밝히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들은 ‘SK㈜측이 자사 투자가들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는 SK글로벌에 대한 부당지원 등을 하지 않겠다고 한 방화벽이 외국인들에게
신뢰를 심어줘 좋은 투자대상이 된 것이 아닌가’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적대적 M&A나 그린메일 등의 의도가 있는지는 불확실해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우호지분 확보와 자사주 매입과 같은 현실적인 모든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소장 김주영 변호사)등 전문가들의 의견은 오히려 SK가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서지 않는다면 적대적 M&A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크레스트측이 적대적 M&A를 시도하지 않더라도 투자목적을 이루기 위해 경영 과정에 개입할 가능성은,
정상적인 그룹경영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시장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SK는 KT와 라이코스코리아, KDMC, 일본 MBCO 등의 주식을 사들여 사업확장을 하던 때와는 상황이 180도 뒤바껴 당황할 것이다.
이번 일로 SK글로벌 회생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SK구조본부의 관계자는 SK㈜ 노조와 계열사들의 부정적 견해에 대해 “계열사 각자의
방화벽이 지금 당장은 좋을지라도 최 회장의 오너십이 붕괴되고 SK그룹이 외국자본 또는 금융자본의 지배에 들어간다면 장래를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느냐”며 최회장의 오너십 유지와 SK글로벌 회생에 노심초사 하고 있다. 더욱이 적대적 M&A나 그린메일 가능성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충분히 가시화될 수 있다는 전망은 지난달 20일까지만 해도 25%선에서 머물던 외국인 지분율이 최근 35%선을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무시할 수 없게 됐다.
SK글로벌은 한숨 돌리나?
한편, 크레스트 시큐러티즈가 최대주주로 오르기 전인 지난 3월31일. SK글로벌이 주총 결과 ‘감사범위 제한에 따른 한정 감사의견’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한정 감사의견’으로 SK글로벌은 상장폐지가 아닌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었다. 2년 연속 자본잠식상태에 빠지면 상장폐지
되므로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감사를 맡은 영화회계법인은 감사보고서에서 해외현지법인의 지급보증 2조3,927억원은 대지급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추가적인 손실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감사보고서 등 관련자료 입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회계 및 증권업계에서는 ‘SK글로벌의 상장폐지를 피하기 위한 것’ 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SK글로벌이 자산이나 부채의 50%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큰 2조3,927억원의 손실액과 향후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임을 고려할 때 ‘감사의견거절(상장폐지)’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현행 회계감사준칙에는 감사범위 제한의 영향이 매우 중요하고 전반적이어서 감사인이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 증거를 획득할 수 없었을 경우에는
‘의견거절’을 표명하도록 하고 있어 영화회계법인의 결정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상장폐지를 막기 위한 정책적인 고려 때문’이라는 지적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 지고 있는 것이다.
박광규 기자 hasid@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