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성훈 기자]
"10월 전세계약 연장을 앞두고 며칠 전 집주인이 전세금을 시세대로 2억원 더 올려달라는데, 당장 2억원을 어디서 구해요."
경기 하남 미사강변도시18단지(전용면적 84㎡)에 전세로 사는 회사원 최성연(47·여)씨는 최근에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단지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업소를 일일이 돌아다녔지만, 매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전세 물건이 없을뿐더러, 반전세(보증부월세)와 월세가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최씨는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전세 물건이 아예 없고, 있더라도 비슷한 평형대의 전셋값이 5억원 전후로 형성돼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다른 지역을 알아보고 있는데 마땅한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아 정 안되면 월세로 전환해서라도 재계약을 할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에서 시작된 전셋값 급등세가 인근 수도권 및 신도시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셋값 급등은 강남에서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노동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을 거쳐, 과천·하남·수원·안양 등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셋값 상승세가 도미노처럼 퍼지는 모양새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56주 연속 오르며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전세 물건을 보증부 월세인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보유세 부담 증가와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월세나 반전세가 늘면서 전세 품귀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값 동향'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2% 상승했다. 지난주(0.13%)보다는 상승폭이 소폭 줄었지만, 56주 연속 상승세다. 강동구(0.28%)를 비롯해 송파구(0.23%), 강남구(0.20%), 서초구(0.18%) 등 강남권 아파트 전셋값이 지난주와 비슷한 수준으로 크게 뛰었다. 또 마포구(0.20%), 성동구(0.16%), 용산구(0.14%), 성북구(0.12%) 등도 상승세를 기록했다.
경기지역은 지난주와 같은 0.20%, 인천은 0.07% 각각 상승했다. 하남시(0.49%)는 정주 여건이 양호한 미사·위례신도시 신축 위주로, 광명시(0.43%)는 정비사업 기대감 있는 철산·하안동을 중심으로 상승했다. 또 김포시(0.31%)와 구리시(0.30%), 수원(0.14%) 등도 상승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초 4억원에 거래된 하남 미사강변도시18단지(전용면적 84㎡) 전세 물건의 현재 호가는 5억원~5억5000만원 선이다. 또 올해 초 8억원대에 전세 거래된 과천시 별양동 래미안과천센트럴스위트(전용면적 72㎡)은 지난 16일 8억4000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현재 전세 호가는 8억5000만원 선이다.
수도권 지역의 전세 매물 품귀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감정원의 전국 아파트 전세수급지수(13일 기준)는 2017년 7월 이후 최고치인 102.5였다. 수치가 높을수록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권의 전세난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수도권에서도 정부의 잇단 규제로 매수에서 전세로 돌린 매매 대기 수요와 청약 대기 수요가 늘었지만, 저금리 장기화로 집주인들이 월세나 반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에 수급 불균형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특히 '전월세 신고제'를 비롯해 전세금 인상률을 최대 5%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차 계약이 만료됐을 때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보호3법' 시행 전 전셋값을 미리 대폭 올리려는 집주인들의 움직임 역시 심상치 않다.
더 큰 문제는 내년 이후 전셋값이 더욱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수도권 내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이 줄면서 전세 공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물량은 13만6336가구로, 올해 입주물량(18만7991가구)보다 5만여 가구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서울과 수도권지역의 전셋값 동반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로 서울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서울을 포기하고 수도권으로 향하는 전세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며 "내년부터 신규 아파트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서울에 머물던 전세 수요가 수도권으로 옮겨가면서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 전체에 걸쳐 전세 매물이 부족하고, 전셋값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권 교수는 "서울과 수도권의 전셋값 동반 상승세가 당분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에 서울의 신규 아파트 입주물량이 올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내년에는 수도권 지역의 전세난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