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가 기존의 범용 전자화폐(K-CASH)의 활용 대신,
독자적인 통행료 전자지불카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도 예산낭비와 중복투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반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체 카드 개발을 무리하게 강행하고 있어 ‘도공의 몸집 부풀리기’를 위한 의도라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도공, 통행료 전자카드 시범사업 추진
도공은 1회성으로 발급비용이 많이 들고 자원낭비가 심하며 보안성이 취약한 기존의 고속도로 카드 문제점을 해소하고 기존 통행료 징수로 인한
교통의 지·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 통행료 전자지불시스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공의 전자지불카드는 기존의 선불형 고속도로 카드와 고속처리가 가능한 하이패스 카드가 교체, 통합된 전자카드 방식으로 요금을 재충전하여
반영구적으로 사용된다.
이 카드는 일부 요금소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는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는 방식인 Hi―pass 기능과 카드를 접촉하고 통과하는 방식인 Touch&Go
기능을 함께 쓸 수 있는 지급수단이다.
도공은 지난해 10월, 전자카드 도입 방안을 검토하고 이미 시스템 구축 사업자와 카드 제작 사업자를 선정해 개발 중이다. 하반기에는 판교
청계 성남 등 3개 영업소 내에서 시범 운영하고, 2005년까지 판교, 서울외곽순환도로 등 수도권 개방식 영업소(구간 단위별로 요금을 내는
도로)로 확대한 뒤, 2006년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도공은 전자지불카드 시스템이 정착되면 고속도로 요금소의 시간당 차량 처리대수가 기존 400대에서 600대로 늘어나 요금소 지·정체를 완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산낭비와 중복투자
그러나 문제는 13조5,000억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 도공이 추가예산이 거의 소요되지 않는 기존의 범용 전자화폐의 활용 대신 자체 카드개발에
따른 예산낭비와 조직 비대화를 감수하면서 까지 통행료 전자지불카드 사업을 벌인다는 데 있다.
정부는 지난 99년 국가정보화 추진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은행이 중심이 되어 금융기관 공동의 전자화폐(K-CASH)를 개발, 교통과 유통 분야에
보급을 확대해 오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전자화폐의 다목적 활용과 국가자원의 절약을 위해서 정부기관에 전자화폐의 사용을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투자기관인 도공이 자체 전자지불카드를 개발함으로써 전자화폐 활성화를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도공이 독자적으로 전자지불카드 사업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공은 그 이유를 경제성 확보와 안정성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범용 전자화폐를 사용하면 통행료의 약 1.5%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자체 카드를 개발하면 연간 2조원이 넘는 통행료를 기준으로
봤을 때, 약 135억원 정도(카드사용률 30%시)의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신 수수료 절감으로 발생된 이익을 통행료 인상요인이
경감되고 각종 부가서비스 제공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제실천시민의연합은 “도공이 경제성 확보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오히려 경영부실과 예산낭비만 초래할 뿐”이라면서 “정부투자기관인 도공이 독자
카드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공공부문의 개혁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일침을 가했다.
도공의 ‘경제성 확보’ 타당성 맞지 않아
당초 자체 카드 개발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도공은 전자화폐의 기술적 결함을 내세웠다. 기존의 5개 전자화폐는 상호 호환성이 결여돼
있고 고속처리가 가능한 하이패스에도 사용이 곤란하다는 것. 하지만 “기존 전자화폐의 호환성을 위해 정통부와 5개 전자화폐사가 표준 SAM이
하나의 칩으로 통합 개발되어 신규발행된 전자화폐의 겅우 하이패스 기능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도공의 전자지불 시범사업에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K-CASH 측의 설명이다.
또한 도공의 현재 통행료 전자지불사업은 전면 하이패스 적용단계가 아닌 단말기에 카드를 접촉하여 요금을 정산하는 touch & go
과정이기 때문에 이 역시 카드개발의 근거로 보기 어렵다.
즉, 도공이 독자 전자지불카드를 발행하면 국가경제적인 측면에서 기존 전자화폐와 동일한 비용이 발생되나, 도공 측 입장에서는 수수료 절감으로
그만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체 전자카드 사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공의 주장대로라면 교통과 유통관련 정부기관들은
모두 자체 카드를 독자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이 또한 타당성을 갖기는 어렵다.
경실련 관계자는 “국가시책을 무시하고 중복투자에 따른 자원낭비를 초래하면서 기관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것은 전형적인 기관이기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기업도 아닌 정부투자기관인 도공이 이같은 경제성을 내세운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자체카드개발에 따른 비용과 이익에 대한 정확한 추계없이 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정부투자기관의 운영원칙에 위배된다. 도공은 시범사업
비용으로 18억원, 전 구간 시스템 구축 카드 보급의 경우 290만장 발행에 210억원의 개발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경실련에
의하면 최소 1,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 중 대부분은 개발에 참여한 사업자들의 비용부담으로 이어지고(실제
개발 사업자 선정에서 1원 낙찰로 논란이 됐다), 실상 도공의 부담은 현격히 낮아지기 때문에 ‘해 볼 만한’ 사업이 되는 것이다. 또 고속도로
이용자가 전체 10% 안팎에 지나지 않아 그 효과도 미비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기존 전자화폐 도입
필요
도공의 전자지불 카드는 고속도로 이용자에게도 불편을 안겨주게 된다. 이 카드는 선불형 카드로 충전해 사용해야 하는데 고속도로 영업소에서만
충전이 이뤄지기 때문에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고객은 고속도로 통행료를 지불할 때 호환이 가능한 기존의 전자화폐 대신 별도의 도공의 전자지불카드를
갖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기존의 전자화폐를 사용하면 이용자의 접근도 용이할 뿐 아니라 인터넷쇼핑몰 등 호환성도 따라 편리성을
안겨주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도공 측은 “차후 도공 전자카드도 호환성을 갖추게 될 것”이라면서 “충전에 있어 고속도로 카드 은행 판매량은 전체 5% 미만에 불과할
뿐, 대부분 영업소에서 95%이상 구입하기 때문에 충전 사용에는 문제될 게 없다”고 반론했다.
하지만 현재 시범사업을 진행중인 도공도 자체 통행료 전자지불카드 개발을 고수하지만은 않는다는 뜻도 내비쳤다. 도공 관계자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전자카드는 아직 시범사업을 준비하는 단계”라면서 “시범사업을 통한 효과분석을 통해 기존 카드 수용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존카드 수용방안은 전자화폐, 교통카드, 휴대폰 등 기존카드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된 것으로 최저 수수료와 장기적으로 안정된 수수료를
확보할 수 있고, 정통부의 표준 SAM 상용화 시기를 감안하고 후불카드를 적용하는 등의 조건이다.
하지만 일단 시범사업을 거치게 되면 투자비용 등이 소요돼 본 사업에 착수할 수 밖에 없는 게 정부기관 사업의 통상적인 일. 도공의 독자카드
개발도 예상대로라면 계획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은 “예산낭비와 중복투자가 발생하는 도공의 자체카드개발은 철회돼야 하고 기존의
전자화폐와 교통카드용 신용카드가 활용되는 방안을 도입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홍경희 khhong04@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