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이라크는… |
바그다드 함락으로 이라크전쟁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향후 이라크 운영방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이라크 재건에 유엔의 중추적 역할을 약속했지만 미국과 영국은
이미 △군정 △과도정부 수립 △제헌의회 구성으로 이어지는 3단계 새 이라크 건설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1단계 - 군정(Military rule)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사령관이 이끄는 미ㆍ영 연합군이 종전과 동시에 안보와 치안을 포함, 이라크 통치에 관한 전체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제이 가너 예비역 육군 중장의 지휘를 받는 미(美) 재건인도지원처(ORHA)가 의료, 전기, 수도 등 사회간접시설의 복구와 운영을 담당한다.
△제2단계 - 이라크 과도정부(IIA. Interim Iraqi Authority)
바그다드에서 유엔의 주관 아래 개최될 이라크 대표자 회의에서 과도정부를 구성한다. 과도정부는 출범 당시에는 행정권을 갖지 못하지만 점진적으로
연합군과 ORHA로부터 권한을 이양 받아 단계적으로 정부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과도정부 구성에 유엔의 개입이 중요한 것은 유엔의 승인이 있어야 합법정부로 국제사회의 공인을 얻을 수 있고 세계은행 등 다른 국제기구의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3단계 - 제헌의회(Constituent assembly)
이라크 내부 인사는 물론 해외 망명 반체제 인사를 포괄하는 제헌의회를 구성한다. 최소한 1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구성될 제헌의회는 이라크 국민
전체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대표성을 확보해야하며 헌법을 기초하고 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절차를 마련한다. 제헌의회가 만든 헌법에 따라 자유총선을
실시해 완전한 민주정부를 구성한다.
포스트 후세인은 누구인가? |
사실상 후세인 체제가 종말을 고한 가운데 사담 후세인의 뒤를 잇게 될 ‘포스트 후세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비중있게 거론되고 있는 인물로는 미국과 절친한 망명 반체제 인사인 아마드 찰라비 이라크 국민회의(INC) 의장과 이라크 이슬람혁명 최고회의(SCIRI)를
이끌고 있는 시아파의 망명 종교 지도자 모하마드 바키르 알하킴이다.
찰라비는 미국 MIT와 시카고대에서 공부한 은행가 출신으로 민주주의나 시장경제 등 미국의 가치관을 충실하게 따르는 친서방적인 인물로 통한다.
때문에 딕 체니 부통령 등 미 공화당의 강경파 고위 인사들과 절친해 일단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6일 미 군용기편으로 이라크
남부에 도착, ‘자유 이라크군’이라는 망명 군조직으로 반후세인 민중봉기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친미성향으로 인해 정작 이라크에서는 별
인기가 없을 뿐 아니라 주변 아랍국가에서는 기피인물로 통한다. 찰라비는 요르단에서 금융사기 혐의로 징역 22년형을 언도 받기도 했다.
20년 이상의 이란 망명 생활을 마치고 최근 이라크로 돌아간 알하킴은 이라크 내 종교적 다수파인 시아파의 지도자란 점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란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미국 측이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또 CIA 보고서에 따르면, 알하킴이 이라크-이란 전쟁 당시 이란의 지원 아래 지지자들을 무장시켜 이라크군과 싸우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이라크인의
민심을 얻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 살아 있나 죽었나” |
미ㆍ영 연합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한 가운데 후세인의 생사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후세인의
모습을 보여주던 이라크 국영 TV가 폭격으로 방송이 중단된 이후로는 이라크 관영매체에서도 그의 종적을 찾아볼 수 없다.
미군은 지난 7일 후세인이 우다이, 쿠사이 등 두 아들과 함께 바드다드내에 있다는 첩보에 따라 B-1폭격기를 동원, 바드다드 알-만수르 구역의
한 건물에 통합직격탄(JDAM) 4발을 쏟아 붓는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 이후 후세인의 지휘체계가 급속도로 무너졌다는 점에서 그의 사망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군사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후세인이 살아있으며, 고향인 티크리트로
피신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전망했다. 쿠르드족 반정부 단체인 쿠르드애국동맹(PUK)도 바그다드 전투가 격화되면서 후세인이 이미 두 아들과
함께 티크리트로 피신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티크리트에는 후세인에 충성스런 수니파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또 도시가 산과 사막,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여서 ‘마지막 항전’을 벌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최후의 순간 시리아행 탈출로가 될 수도 있다.
‘후세인 제거’가 이번 전쟁의 목표인 만큼 그의 생사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면 미국이 이라크를 완전 점령하고 과도정부를 수립하더라도 ‘완전한
승리’ 선언은 유보할 것으로 보인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
후세인 정권 약사 |
사담 후세인의 24년 철권통치 미ㆍ영 연합군이 개전 21일 만에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완전 점령함에 따라 ▲1979년 △7월16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혁명지휘위원회(RC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