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골드만삭스의 계열 세나인베스트먼츠의 진로 법정관리 신청으로 야기된 진로와
골드만삭스의 공방이 나날이 격해지고 있다. “채권자인 골드만삭스가 경영정상화를 방해했다”고 주장하는 진로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맞서고 있다.
진로는 1997년 화의인가 개시 후 국내외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주시장 점유율 56%를 차지했으며, 그 동안 총 2조3,460억원의
채무를 변제해왔고, 현재 많은 채권자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법정관리신청의 진실
지난 3월말까지만 해도 (주)진로(대표이사 김선중)는 봄날이었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추진해 온 2차 외자유치 협상을 마무리 짖고, 본계약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진로는 체결에 앞서 채권자들의 동의를 받기 위한 개별협상에 들어갔고, 이에 국내 금융기관과 외국 투자은행들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1조600억원 규모의 외자를 유치해 채무변제와 함께 화의를 종결짓겠다는 진로의 기대는 골드만삭스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다. 골드만삭스 계열의
세나인베스트먼트가 지난달 3일 서울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의미하는 회사정리 신청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진로는 “골드만삭스가 유리한 채권 회수 조건 확보와 궁극적인 경영권 장악을 노리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며 “이번 사건 외에도 홍콩법인 파산신청,
일본 상표권 가압류, 서울 본사 부지 매각 반대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자사의 구조조정과 경영정상화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진로가 열거한 일련의 조치들이 채권 회수를 위한 합법적 절차”라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진로가 정작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기업가치가 하락해 채권가치가 떨어져, 상환기간도 연장될 수밖에 없어 골드만삭스 행동에 의문이 가는
게 사실.
실제 국내 채권기관들까지 진로의 편에 섰다. 삼성증권 우리은행 등 국내 53개 채권기관들도 지난달 9일 대책회의를 갖고, 골드만삭스의 법정관리
신청 배경 및 향후 대책, 진로의 외자유치 계획과 대응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를 했고, 골드만삭스의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 반대하기로
결론 내렸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 회수 여건이 훨씬 악화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참석자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회수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1조 600억원 규모의 외자가 유치되면 진로 측의 표현대로 긴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에 진로가 “구조조정을 방해했다”며 골드만삭스를 상대로 1,547억원의 손해배상청구권 보전을 위한 채권가압류 신청서를 서울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채권자60% 진로편
진로와 골드만삭스의 격한 공방은 결국 법원에 의해 판가름 난다. 서울지법 파산부(변동걸 부장판사)는 일단 골드만삭스가 제출한 재산 보전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법정관리의 첫 관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기각의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진로와 골드만삭스 양측이 워낙 첨예하게 맞서 있어 법원으로서도 난감한 입장이다. 중요 변수는 국내외 채권단들이 진로 법정관리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진로는 지난달 9일 국내 채권단 회의 때부터 우호 채권자 규합에 전력을 기울여 지난달 말에는 60%(채권액 기준) 정도의 ‘법정관리 반대’
동의를 끌어모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반대편의 골드만삭스도 외국채권자들을 중심으로 25% 정도의 동조 세력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나머지 15%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다급해진 골드만삭스는 전직 고위관리 L씨를 앞세워 채권조정안에 동의하는 채권기관에 압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나 인베스트먼츠사,
‘페이퍼 컴퍼니’ 논쟁
한편, 진로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세나 인베스트먼츠는 골드만삭스가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페이퍼 컴퍼니는 종업원과 사무실 등 인적·물적 실체가 없는 형식상의 서류회사를 일컫는 것으로 채무면탈이나 소송회피 목적에 주로 이용되고
있다.
진로측은 “세나 인베스트먼츠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위치한 법률사무소를 본점 소재지로 설립된 업체로 소속 변호사들이 등기이사로 돼 있고, 실제는
골드만삭스가 운영하는 페이퍼 컴퍼니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진로측은 “골드만삭스가 지난해 11월27일 아일랜드에 세나 인베스트먼츠를 설립한 뒤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3개월 전인 지난 1월7일 세나
인베스트먼츠에 진로 채권 870억원을 양도했다”고 밝혔다.
진로 관계자는 “골드만삭스가 페이퍼 컴퍼니를 내세워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비밀유지계약위반, 손해배상 소송 등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이는
명백한 소송신탁에 해당돼 법정관리신청 또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세나인베스트먼츠는 필요한 자본금과 이사회 등을 갖춘 합법적인 회사로 페이퍼컴퍼니가 아니다”라며 진로측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골드만삭스는 반박자료에서 “국내의 부실채권에 투자하는 해외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아일랜드 등의 법인들을 통해 투자하고
있다”며 “진로측의 주장대로라면 아일랜드 법인들을 통해 투자한 해외투자자들은 국내에서 채권회수를 위한 소송은 전혀 제기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골드만삭스의 딴지
진로와 골드만삭스의 질긴 악연은 IMF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돼 왔다. 1998년 국내 1호 화의기업이 된 진로가 구조조정의 험난한 역경을
뚫고 경영정상화에 나가는 중요한 순간마다 골드만삭스의 방해공작(?)이 있어 왔다.
1998년 이후 자산관리공사 등을 통해 진로 채권을 헐값에 사들여 최대 단일 채권자로 올라선 골드만삭스는 2000년 8월 진로건설과 진로종합식품에
대해 법원에 파산신청을 냈고, 2002년 3월에는 진로 홍콩법인에 대해서도 파산을 신청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또 지난해 5월에는 일본 상표권에 대한 가압류 조치로 일본 내 소주사업매각이 무산됐으며 부동산(본사 사옥) 매각 등 자구노력도 골드만삭스의
반대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진로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채권 회수를 위한 합법적 절차이며, 따라서 이번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채무 변제를 하지 못한 진로 측에 있다는 입장이다.
진로 김영진 상무는 “골드만삭스는 액면가의 15~20% 헐값으로 사들인 진로 채권으로 지난 3년 동안 매년 액면가 기준 7~11%에 해당되는
이자를 챙김으로써 투자비를 다 뽑았다”며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고율의 이자를 계속 챙기기 위해 진로가 빚을 갚기 위한 노력들을
방해하는 전형적인 유태계 사채꾼들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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