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북한에게 전면적인 대화와 경제협력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은 “유감스러운 금강산 피격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전면적 대화와 경제협력에 나서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이 대통령은 “6자회담과 국제협력의 진전에 따라 실질적인 대북 경제협력 프로그램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7월11일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등으로 남북이 악화일로로 치닺고 있으나 금강산 사건과 남북관계 전반을 분리하고 경제협력을 통한 남북대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를 향해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우선 이행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 함께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늦춰지고 있는 것 등으로 인해 남북 관계가 더욱 꼬이고 있다.
‘진실게임’으로 가는 금강산 사건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실용주의에 근거한 대북관계를 주창하고 나섰다.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대한 의미 축소와 함께 실행의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틀에서 남북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보인바 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가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식량지원’을 포함한 어떠한 것도 북으로 보낼 수 없다는 등의 강경노선을 택해 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봉남통미(남한은 봉쇄하고 미국과 통한다)’의 기조속에 남한과의 대화를 외면시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을 계기로 진상조사를 위한 북의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책임규명을 통한 북의 관련자 문책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정부는 이같은 요구가 북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가정보원 등 관련기관을 동원한 진상조사에 착수했으며 그 결과 북한의 명백한 과오를 입증했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군은 8월3일 ‘금강산지구 군부대 대변인 특별담화’를 통해 현장조사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남측 인원 추방 방침을 발표했다. 북한은 담화에서 “현실은 이명박 역도가 동결상태의 북남관계를 파국적 사태로 몰아가고 있으며 이제는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부정에서 그 이행을 완전히 파기하는 행동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의 경우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진상조사와 결과를 내놓고 있어 이번 사건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며“우선 이같은 사건에 대한 북한과의 재발방지 방안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협의와 대화를 실시한 후 진상조사에 착수해도 늦지는 않다”고 말했다. 즉, 북한과의 접촉시 일의 선후 조정이 매우 중요하며 앞뒤 재지않는 감성적 대응보다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이 중요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분리대응’ 정부 기조 무색
정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을 맞은 8월11일 “지난 한 달간 정부는 굉장히 억제되고 신중하게 어떻게든 남북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즉, 금강산 사건과 대북관계의 복원과는 별개문제로 다뤄왔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금강산 사건과 남북관계 전반을 분리하겠다는 것과 일치하고 있으나 정부의 그동안의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대세다. 8월11일 오전 금강산에 체류 중이던 면회소 인원 6명과 한국관광공사 직원 2명이 귀환하면서 북측이 금강산 1차 철수대상으로 적시한 남측 인원이 전원 철수했으며 8월8일 올림픽 개막식에 남북 공동입장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북측 올림픽 관계자는 “남북한 올림픽 공동입장만 주장하지 말고 남측이 먼저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실행하는 의지를 보일 때”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도 금강산 사건 발생 이후 예정돼 있던 대북 자재 지원을 중단키로 결정했으며 대북 식량지원 역시 세계식량계획(WFP)이 대북 지원을 요청할 뜻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론을 이유로 보류하기도 했다. 정부는 또 남북대화가 끊긴 상황에서 민간교류 마저 막고 있다. 정부는 8월8일 “금강산 피격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방북은 안 된다”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방북을 불허했다. 현재 전교조 외에 방북 신청을 한 곳은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를 비롯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민주노동당 등이 대규모 방북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간단체 관계자는 “모호한 기준을 들어 민간 교류마저 제한하는 것은 ‘금강산 사건과 남북관계의 분리대응’이라는 정부 기조를 스스로 지키지 않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특히 “정부가 금강산 사건 발생 직후인 7월15일부터 18일까지 평양 봉수교회 헌당 감사 예배 참석을 위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남선교회전국연합회 157명의 방북을 승인 한 것에 비춰볼 때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기본방향 정립이 중요
북한이 금강산 사건 등을 비롯해 남측 인원 추방 등의 강수를 잇달아 두고 있는 것은 남측의 반응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강산 관광중단 장기화에 따른 ‘외화벌이’ 타격과 남측 여론악화로 인한 대북지원 축소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북한이 현지 군부대 대변인 이름으로 담화를 내놓은 것과 추방대상자들의 축소, 개성공단에 대한 언급자제, 8월12일 동해상에서 북측 선박과 충돌한 남측 선박을 하루 만에 돌려보내는 것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이와함께 미국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지연된 것을 계기로 비핵화 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 등을 놓고 임기 말 부시정부와 협상하는 것보다는 차기 미국 정부와 협상하겠다는 ‘도구’로 활용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북한이 테러지원 해제 조치 지연에 대해 ‘행동 대 행동’ 원칙 위반이라고 강력히 항의하고 나서는 한편으로 북미간 대화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겠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북측이 이처럼 계산적이고 철저한 행보에 속도를 더하는 것과는 달리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까지 미국의 힘을 빌리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아세안지역포럼 의장성명 파동과 한미 정상 공동 성명을 통한 대북 압박 등이 그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이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기본적이고 정확한 기조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남북어선 충돌 등을 계기로 기본 협약서 이행 등 기본방향 정립이 중요하다”며“남측이 이번 사건을 통해 북측에 남북해운협약서의 실행의지를 물을 경우 북측은 분명히 6·15 공동선언 등에 대해 발언할 것이 분명할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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